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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나라경제기고] 중국 사업 오답노트
  • 직원기고
  • 중국
  • 하얼빈무역관
  • 2024-06-01
  • 출처 : KOTRA

허성무 무역관장, KOTRA 하얼빈 무역관장


“쪼들려도, 나서 자란 자기 고향에서 쪼들리던 옛날이, 삼년 전의 그 옛날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것도 한 꿈이었다. 그 꿈이 실현되기에는 그네의 경제적인 기초가 너무나도 없었다.” 『홍염』(최서해, 1927)

100여 년 전 최서해는 단편소설 『홍염』에서 간도(현재 중국의 동북 3성 일대)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비참한 삶과 애환을 그려냈다. 최근 중국 내 한국 기업의 상황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중국 내 주문량이 감소하는 한편, 중국 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져 중국에 투자한 한국 공장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실정이다. 

내수 부진과 경쟁 심화로 설 자리 좁아진 한국 기업들,
정확한 시장 파악과 중장기적 상생전략 필요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품목의 80%가량이 산업재인데, 중국은 산업재를 포함한 중간재 국산화 및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우리의 산업재 수출 물량을 보면 중국 로컬 기업 또는 중국 내 글로벌 기업으로의 수출보다는 한국 기업의 중국 자회사 및 공장으로의 수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만 32년이 돼가는 현시점에서, 한국 기업의 수직분업에 따른 기업 내 부품-완성품 교역 성과도 의미가 있지만 순수 중국 기업으로의 납품 실적을 높이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다.

소비재도 마찬가지다. 아웃도어 의류, 여성복 및 캐주얼 의류, 화장품, 스낵류 분야에서 일부 고급 브랜드가 선전하고는 있으나, 백화점 등 중국 내 고급 소비시장에서 접할 수 있는 한국 제품은 소수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이후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내수 소비시장은 중소기업의 시장진입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하얼빈 최고급 유통상점에 입점한 고급의류 브랜드 매장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매출실적이 2023년 1분기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고 코로나19 이전의 활력을 찾지 못한 채 소비자들의 닫힌 지갑 속 자금은 은행예금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고급 유통상점의 임차료 부담과 원활치 않은 대금결제 문제로 매장 위치를 중저가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내구재 소비는 더욱 얼어붙어 매출이 전년 동기의 3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생산을 잠시 중단한 기업도 적지 않다. 그나마 이뤄지는 소비는 주로 온라인에서 발생하고 오프라인 매장은 제품을 직접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되는 정도다.

이처럼 여건이 녹록지 않은 중국 산업재·소비재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입지를 넓혀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가격 측면에서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들의 예속과 문물은 서방 오랑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 우리는 그들과 겨루어 한 치도 잘난 것이 없는데도 오직 조막만 한 작은 상투 하나를 가지고 천하에 자신을 뽐내려 한다.” 『열하일기』(박지원, 1780)

연암 박지원이 240여 년 전 중국을 방문하고 쓴 『열하일기』의 한 내용이다. 현재 중국시장 진출을 꾀하는 우리 기업들 사이에는 한국산 제품이니 당연히 비싸도 된다는 생각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품질이 우수한 한국 제품이 많다. 그러나 중국 기업은 타깃 시장에 적합한 판매가격을 먼저 설정하고, 그 가격에 맞게 생산비용을 책정하며 품질을 맞춘다. 중국 소비자들은 우수하지만 비싼 제품보다는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값싼 제품을 구입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고객용 선물 구입에 매년 1억 원 이상을 지출하는 하얼빈 소재한 중국 기업의 사장은 “잘 모르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물로 받는 사람의 기분도 고려해 달라.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비싸기까지 하면 내 입장에서도 선뜻 구입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기관에서는 평소 야근은 물론 주말근무까지 하면서 중국 기업 육성과 가격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정비에 한창이다. 가격경쟁력이 있는 중국산 로봇청소기는 한국시장에서도 영업이나 홍보가 필요 없을 만큼 불티나게 판매된다.

둘째,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 제조기업들이 어떻게 여전히 중국시장에서 이익을 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의 제품경쟁력을 평가하려면 해당 산업에서 핵심경쟁력 또는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핵심 부품·기술·제조설비는 선진국에 의존한 채 주변 기술에 기반한 조립 역할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한 철저한 자기분석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생산비 절감을 위한 조립 및 생산 기지로서 중국과의 협력은 활발하게 했지만, 핵심경쟁력 확보를 통한 중국과의 중장기적 상생발전 전략은 간과했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평가다.

셋째, 방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를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이 특히 인정받는 분야가 서비스업이다. 특히 피부관리 및 미용 서비스의 경우 중국 현지에서 동일한 제품으로 서비스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 항공편으로 와서 며칠 머물며 한국 의사에게 시술받는 것이 오히려 더 저렴해 삼삼오오 한국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중국 소비자들이 전해왔다. 이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 중 한국의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홍보 효과를 노리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엔저로 일본행 중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는 지금, 이들이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위치한 한국에도 들를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국내 소비를 진작하고 한국 문화도 더 잘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의 문화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의료기기·가공식품 기술 협력으로 제3국 진출해
우리 기업은 로열티 수입 확보, 중국 기업은 정부 지원 수혜


넷째, 전문화(專), 정밀화(精), 특성화(特), 혁신성(新)을 갖춘 강소기업을 가리키는 전정특신(專精特新) 기업들의 공급망에 참여함으로써 산업재 수출을 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코트라 하얼빈무역관이 발굴한 하얼빈 소재 중간체 제조기업은 2년째 한국 기업들과 소통하고 있다. 식품 및 의약품 제조에 필요한 중간체를 중국 기업으로부터 수입하고, 이 중국 기업이 만드는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보건식품 등 완성품을 우리가 제조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모델이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 중국의 우수 제조기업에 우리의 특허 및 기술을 접목해 제3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료기기, 가공식품 등에서 협업이 가능하며, 우리 기업은 중국 기업이 우리 특허를 사용하는 데 따른 로열티 수입을 확보할 수 있고 중국 기업은 해외 수출에 따른 자국 정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생협력 모델이다. 이에 중국 제조기업의 협업 요청이 늘고 있다. 

농림산품 주요 산지인 동북 지역은 가공식품 등 식품 제조기업이 많은 곳으로, 산뜻한 디자인의 포장을 원하는 기업들이 한국디자이너를 많이 찾는다. 한국인이 디자인한 포장 덕분에 매장에서 유리한 진열대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일본 및 한국으로의 수출도 늘었다고 이 지역 두유 제조기업은 밝혔다. 

한편 중국 기업과 현지 투자가 필요한 협업을 고려할 경우에는 시장이 존재하고 투자환경이 양호한 지역을 엄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미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대우가 어떤지, 유통매장 입점 시 매출 실적에 따른 이익은 제대로 분배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현지에 오래 상주해 온 한국 및 중국 기업의 경험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투자 유치를 위한 미사여구가 현지의 실상과 부합하는지도 냉정히 검토해야 한다.

“중국을 잘 안다는 과도한 자기확신이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라고 일본 외교관 미치가미 히사시가 조언한 바 있다. 중국 현지의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중국시장에서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합리적인 방향과 역할을 재설정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 KDI나라경제

https://eiec.kdi.re.kr/publish/columnView.do?cidx=14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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