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압박, 2024년에도 이어질 전망

장기간 지속되는 고물가 현상으로 인해 스페인 소비자들의 지갑 사정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러-우 사태, 글로벌 공급망 경색, 에너지 비용 상승 등에 따라 2022년 스페인 물가 상승률은 전년대비 8.4% 급증한 바 있으며 2023년 1~8월 중에는 앞서 언급된 문제가 다소 개선돼 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3.0% 상승하는 데에 그쳤다. 그러나 현지 경제 전문가들은 재상승 중인 국제유가와 스페인을 덮친 가뭄 등으로 인해 물가가 다시 오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스페인 저축은행연구소(FUNCAS)는 2023년 4분기에는 월별 물가가 상승 추세로 전환돼 12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5.0%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분위기는 2024년에도 이어져 물가가 더욱 상승하거나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페인 물가상승률 추이>

(단위: %)

[자료: 스페인 통계청]

스페인의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품목은 식품·비알코올음료이다. 해당 품목 가격은 2022년 전년 대비 11.6% 증가했으며, 2023년 중에도 월별 물가상승률이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밖에 2023년 8월 기준 알코올음료·담배, 레저, 식당·호텔 부문의 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각각 7.6%, 7.0%, 6.4% 순으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글로벌 에너지난으로 인해 2022년 가격이 15.5% 오른 주거·수도·전기·가스 항목의 물가는 2023년 들어 큰 폭으로 감소해 스페인 전체 물가 급등을 억제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스페인 월별/품목별 물가상승률 추이>

(단위: %)

[자료: 스페인 통계청]

고물가가 불러온 스페인 소비형태 변화

고물가 시대에 스페인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기업들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선, 스페인 소비자들의 PB상품 구매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스페인은 이미 유럽 주요 국가보다 PB제품 시장이 활성화된 국가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서카나(Circana)에 따르면, 스페인 소비재 시장에서 PB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47%로 조사 대상 국가(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스페인 소비자들의 PB제품 구매 선호 현상은 2023년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기관인 칸타(Kantar)에 따르면, 신선제품을 제외한 스페인 소비재 시장에서 PB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38.3%에서 2022년 41.3%로 늘어났으며, 2023년 1~8월에는 43.5%로 2.2%p 증가했다. 

스페인 소비자들이 PB제품 구매를 늘려가는 이유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서카나의 조사에 따르면, PB제품은 유럽 시장에서 약 40년간 판매되며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우수한 품질도 갖추게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카나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60%는 PB제품과 기존 NB제품(제조업체 브랜드)와 비교할 시 혁신, 품질, 지속가능성, 브랜드 이미지 면에서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스페인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장을 보기 위해 여러 매장에서 소량을 구매하는 방식을 늘려가고 있다. 칸타의 조사에 따르면,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장을 볼 때 3개 이상의 매장을 방문하는 소비자의 비중이 2021년 42.4%에서 2022년 44.4%로 늘어났으며, 2023년 1~8월 중에는 45.1%로 확대됐다. 또한, 대량으로 장을 보는 대신 당장 사용할 생필품만 구매하는 비중이 2021년 31.1%에서 2023년 1~8월 34.4%로 증가했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한 곳에서 장을 보지 않고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여러 매장을 방문함에 따라 현지 소매유통기업들은 각종 할인 행사를 더욱 확대해 소비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망 및 시사점

스페인 전체 소비재 판매 중 PB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7%로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초대형 시장으로 성장했다. 스페인 1위 슈퍼마켓 체인기업으로 16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인 메르카도나(Mercadona)의 경우 판매 제품 중 PB제품 비중이 73%에 달한다. 그만큼 스페인 소비자들은 생필품 구매에 있어 자신들이 선호하는 소매유통기업에서 직접 출시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함으로써 지출을 줄여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스페인 PB제품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이 시장은 초기 시장 진출이 까다로운 편이다. 특히, PB제품은 일반 NB제품보다 통상 20~30% 낮은 가격에 공급해야 하므로 가격만으로는 스페인 현지 기업이나 기타 개발도상국에서 공급하는 저가 상품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지 소비자들은 가격뿐만 아니라 혁신성, 품질 여부 등을 종합해 PB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에 현지 유통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을 수 있는 PB제품 개발을 위해 다양한 공급선을 적극 개발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실례로 메르카도나의 경우 알로에음료나 김스낵과 같이 우리 기업이 가격 대비 품질 경쟁력이 우수한 식품을 한국서 수입해 판매한 바 있다. 특히, 최근엔 한국서 화장품을 수입해 PB제품으로 취급하려는 현지 유통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스페인 내에서 한국 프리미엄 화장품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S사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최근 약 3년간 한국 프리미엄 화장품을 수입해 판매하며 기업이 급성장했고, 더 많은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서 중저가 화장품을 수입해 자사 PB제품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준비 중임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현지 유통기업들은 고물가 시대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적극 유치함으로써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연말 대형 할인행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칸타의 전망에 따르면, 스페인 소비자들의 지출이 크게 늘어나는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현지 유통기업들이 대대적인 가격 할인행사를 준비 중이다. 따라서, 현재 스페인에 수출 중이거나 수출을 준비 중인 우리 기업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거래 중인 현지 유통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기획해 시장 점유율과 인지도를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료: 스페인, 써카나, 칸타, 현지언론종합, 화장품 유통기업 S사 인터뷰 및 KOTRA 마드리드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