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화로 인해 ESG 경영 도입이 눈앞에 닥친 EU 회원국

ESG는 2004년 UN 글로벌콤팩트(UNGC)가 발표한 보고서 ‘Who Cares Win’에서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에서 이슈를 관리해야 한다는 Triple Bottom Line 개념으로 처음 언급됐다. ESG는 유럽에서 기후 위기 가속화와 공급망 실사법 도입으로 인해 구체화되고 있으며, 종전에는 권고사항이었으나, 법제화 이후 점차 기업의 법적 의무로 강제화되고 있다.

EU는 『금융서비스 부문의 지속가능성 관련 공개 의무에 관한 EU지침』을 제정했고(‘19년), 뒤이어 『EU택소노미』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분류해(‘20년), 녹색 투자 대상 산업을 지정한 바 있다. 한편, 공급망 관련 활동 수행 시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존재하는지를 진단하기 위해 기업을 제도적으로 실사하겠다는 EU의 목표에 따라 독일은 『공급망 실사법』을 도입해(‘23년) ESG 경영의 범위를 확대했다. 동 법에 따르면, EU 내에서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간재를 납품하는 협력사까지 ESG 경영에 대한 실사를 받아야 하고, 미흡한 경우 시정조치는 물론 벌금과 행정제재가 부과된다. 공급망 실사 대상을 확대하는 등 한층 엄격한 규제를 담고 있는 『EU 공급망실사법』은 2024년부터 유럽연합 전체에 적용될 예정이다.

Siemens가 ESG 경영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부패 스캔들

오토메이션, 원자로, 의료기기, 반도체, PC, 심지어 핸드폰까지... 전통의 독일 대표 엔지니어링 기업 Siemens(지멘스)가 생산했거나 생산 중인 제품은 매우 다양하다. 이런 지멘스가 ESG 경영을 전격 도입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2번의 부패 스캔들이었다. 지멘스는 ESG 경영을 도입하며 사내 분위기를 혁신하고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미래 기업으로 도약하는 단초를 놓게 된 것이다.

2008년 지멘스 뇌물 수수 사건

지멘스가 ESG 경영을 도입하게 된 계기는 2008년 뇌물 스캔들이었다. 1894년 설립, 독일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지멘스는 2006년 말 분식회계, 공금횡령, 뇌물제공 등 부패 스캔들로 위기를 맞았다. 횡령 액수는 1억 유로를 상회했고, 경영진의 비밀계좌에서는 수천만 유로의 비자금이 발견됐다. 이는 뇌물 비용을 은닉한 것으로, 총액은 7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지멘스는 2008년 11월 24일 뉘른베르크 상급법원에서 100억 유로에 달하는 벌금 판결을 받았으며, 기업 이미지가 급격히 실추되고 이후 공공 조달계약 해지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

이러한 시련을 겪고 지멘스는 사내 규정과 지침을 전면 개편하고, 행동강령의 준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인식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새롭게 ESG 경영 기준을 엄격히 설정했고, 경영진의 규정 준수 의무가 단순히 수동적인 법률 준수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 의거해 지멘스는 ESG 경영을 한층 더 개편하고자 했다.

2013년 지멘스 재무이사의 ESG 경영 규정 위반 인지여 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지멘스는 재무 담당 임원이 ESG 경영 규정 위반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와 처벌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2월 10일 뮌헨 지방법원은 해당 임원에 대해 회사가 사실상 구동하는 준법 경영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시 이를 구축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을 이유로 1500만 유로의 손해배상을 할 것을 판결했다. 동 판결로 인해 기업과 경영진이 법적 위반 및 잠재적 책임을 사전에 방지하고, 필요시 책임자가 개입할 수 있는 ESG 경영 시스템을 구축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두 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도약을 위해 변신한 지멘스

첫 번째 사건을 겪으며 지멘스는 대대적인 혁신에 착수했다. 2008년 부패 스캔들로 추락했던 지멘스가 ESG 경영에 대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는 기업 경영진의 준법 경영 업무에 명확한 책임 규정을 만든 2013년의 판결에서도 다시금 드러난다. 준법 프로세스를 기초부터 재점검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규정하며, 전담 준법감시인 제도를 도입하는 등 체질 개선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절치부심 끝에 지멘스는 CDP 기후변화 부문 A-등급을 획득(‘22년)하고,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산업 대기업 부문 선도기업에 선정(‘22년)되는 한편, 에코바디스 70점을 획득해 전체 평가대상 기업 중 2% 내에 드는 ESG 경영의 선두기업으로 우뚝 섰다.

<지멘스 지속가능성 관련 평가>

[자료: 지멘스 홈페이지]

지멘스의 ESG 경영: ‘DEGREE(탈탄소, 기업윤리, 거버넌스, 자원효율, 평등, 고용안정)’

지멘스가 유엔 의제 2030의 일환으로 설정한 장기 ESG 목표는 빈곤을 종식시키고, 지구를 보호하며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핵심에는 탈탄소화가 있다. 지멘스는 2030년까지 ‘전 사업장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선언한 최초의 글로벌 기업으로, 에너지 효율성 프로젝트에 2022~2030년 6억5000만 유로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22년 이미 전 세계 사업장 소비전력 중 약 77%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으며, 2019년 대비 약 46%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했다. 해당 연도에 지멘스 기술로 고객사가 감축한 탄소 배출량은 약 1억5000만 톤에 달한다.

지멘스의 ESG 경영을 위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Business to Society(B2S) 방법론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기술개발 및 인프라 구축, 삶의 질 향상 및 사회적 혁신으로 확장된다. 지멘스의 '기업에 이로운 것이 사람과 지구에 이로운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경영철학은 DEGREE(탈탄소화, 기업윤리, 거버넌스, 자원 효율, 평등, 고용 안정성) 프레임워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멘스의 지속가능성 프레임워크(DEGREE)>

[자료: 2022년 지멘스 지속가능성 보고서]

지멘스 공급망의 ESG 사례: 행동강령 제정, 지속가능성 감사, 신고체계 도입

최근의 ESG 경영 규제 중 가장 큰 규제인 공급망 실사법 도입에 따라 공급망과 관련한 ESG 경영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급망실사법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 기업은 비즈니스 파트너의 행동에 대해 법적 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에는 상당한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지멘스는 약 145개국의 약 6만5000개 공급업체와 협력한다. 2020년 지멘스는 약 270억 유로의 물자와 서비스를 구매했으며, 이는 매출의 절반에 해당한다. 위험 요소의 소재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멘스는 파트너 발굴 시 행동강령 준수를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는 한편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전체 프로세스를 대상으로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행동강령 제정: 부패, 부당경쟁, 이해충돌 방지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ESG 경영을 통합하는 것은 ESG 경영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지멘스의 '공급업체 및 중개 비즈니스 파트너를 위한 행동강령'은 전 세계 지멘스 사업장에서 환경, 규정 준수, 노동 표준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과 의무를 규정한다. 해당 행동강령은 UN 글로벌 콤팩트의 10대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부패 방지 원칙과 부당경쟁 방지법 위반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 등을 중점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공급업체 및 중개 비즈니스 파트너를 위한 지멘스그룹 행동강령>

[자료: 공급업체 및 중개 비즈니스 파트너를 위한 지멘스그룹 행동강령 발췌]

지속가능성 감사: 자체평가, 품질감사, 외부감사

글로벌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는 지멘스가 모든 공급업체에 대한 동일한 방식으로 감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급망의 잠재적 위험을 체계적으로 식별, 분석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 감사 체계'를 고안했다. 이에 따르면 지멘스 지속가능성 감사는 지속가능성 자체 평가(4912건),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포함된 공급업체에 대한 품질감사(321건) 및 외부 독립 기관에 의한 지속가능성 감사(426건)로 구분된다. 해당 감사시스템은 공급업체와 납품 거래 진행 시 잠재적인 위험을 체계적으로 식별해, 이들이 지멘스 행동강령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지멘스 지속가능성 감사 체계>

[자료: 지멘스 홈페이지]

ESG 경영 위반 신고 채널: ‘Tell Us‘, 옴부즈만 제도

지멘스의 ESG 경영 위반에 대해서는 지멘스 직원 여부와 무관하게 신고할 수 있는 채널이 운영 중이다. 인트라넷을 이용하는 ‘Tell Us' 제도와 익명 신고가 가능한 옴부즈만 제도를 이용해, 지멘스 직원과 외부 이해관계자는 위반 사례를 비밀리에 신고할 수 있다. 지속 가능성 자체 평가 또는 감사 중 요구사항 위반이 확인된 경우 관련 공급업체는 적절한 기간 내에 이를 시정해야 한다. 이 경우 외부 독립기관이 수행하는 후속적인 감사가 진행될 수 있으며 지멘스는 감사 중 결정된 시정조치에 대한 이행을 촉구할 수 있다. 또한 중대한 위반이 있는 경우에는 공급업체 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

<3단계 내부고발 및 신고 채널 운영>

[자료: 지멘스 홈페이지]

지멘스는 공급망 관련 행동강령을 비즈니스 프로세스로 포함해 공급업체가 지속가능성 원칙을 준수할 의무를 부여하고, 준수 여부에 대해 자체평가, 현장 감사 및 외부감사를 진행한다. 공급업체 선정 시에는 감사결과를 반영할 뿐 아니라, 위반사항이 발견될 경우에는 공급계약 취소가 가능하다. 이러한 체계적인 공급망 관리시스템으로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ESG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내‧외부 고발 및 신고 시스템을 활용해 보충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ESG 경영

‘기업의 사회적 논란 및 이슈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이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는 81.9%로, 기업의 사회적 논란 및 이슈를 인지한 이후에는 즉시 불매를 한다는 응답이 21.9%, 즉시 불매는 안 하나 소비 자체는 자제한다는 응답이 69.1%에 달해, 신경 안 쓰고 소비(6.8%)하거나 잘 모른다는(2.6%) 답변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사회 전반적으로 ESG 경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돼 있는 것이다.

<'기업’과 ‘공인’의 사회적 논란 및 이슈에 대한 관심도>

(단위: %)

[자료: 마크로밀 트렌드모니터]

반면 ESG 경영에 힘쓰는 기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응답자의 86.9%가 ESG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ESG 경영’ 실천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 소비 의향>

[자료: 마크로밀 트렌드모니터]

EU의 ESG 경영 법제화 움직임이 일견 기업 운영상 제약요건으로 인식할 수도 있으나, 소비자와 투자자, 직원 및 기타 이해 관계자가 환경 및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더 많은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는 현재, ESG 경영은 오히려 효율적인 경영전략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독일 사회와 경제를, 무엇보다도 회사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부패 스캔들을 딛고,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워 변신에 성공한 지멘스의 ESG 경영 도입사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자료: 지멘스, 마크로밀 트렌드모니터 및 KOTRA 뮌헨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