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에 따라 국가 차원의 디지털 전환을 강력히 추진 중이다. 핵심 기관인 사우디 데이터 및 인공지능청(SDAIA)은 2040년까지 사우디를 글로벌 데이터·AI 허브로 도약시키겠다는 전략 아래, AI 산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3년 6월, 메카 지역에 ‘Smart Makkah Operations Center(SMART MOC)’가 설립됐다. SDAIA가 주도한 이 센터는 AI 기반 실시간 군중 분석과 위기 대응 시스템을 통합해, 메카 및 성지 전역의 군중 흐름·보안·교통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Baseer(군중 밀집 분석), Sawaher(교통 흐름 모니터링), GeoAI(지리 기반 예측 시스템) 3개의 축으로 설립된 SMART MOC는 사우디아라비아 ‘하지’(Hajj, 이슬람력 12월에 열리는 순례기간이자, 이때 이뤄지는 성지순례를 의미)시기 메카 및 인근지역의 군중 흐름과 교통 통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했다. 각 플랫폼은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전체 순례자 안전망을 실시간으로 관리한다.

<메카 Al-Masjid Al-Haram 내부 모습>

[자료: IRCICA 홈페이지]

군중 안전 혁신 주도하는 3종 플랫폼

1. Baseer – 군중 밀집도 분석

메카는 연중 내내 순례객으로 붐비며, 하지 기간에는 약 200만 명이 몰린다. 이로 인해 대규모 군중 밀집에 따른 안전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5년 알자마라트 다리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는 2000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초래하며, 군중 관리의 필요성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알자마라트 진입로는 구조적으로 병목 현상이 발생하기 쉬운 설계로 인해, 작은 혼란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컸다.

이후 사우디 당국은 알자마라트 지역을 AI 기반 군중 분석 시스템의 우선 적용 지역으로 선정하고, 2022년부터 Baseer의 시범 운용을 본격화했다. 실제로 혼잡도가 높았던 시간과 장소에서 밀집도가 완화됐고, 전문가들은 기술 개입이 압사 사고 위험을 실질적으로 낮췄다고 평가하고 있다.

<알자마라트 다리>

[자료: Arab News 홈페이지]

Baseer는 메카 대모스크와 그 인접 지역의 초밀집 구역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통제하는 데 특화된 플랫폼이다. 스마트 카메라와 머신러닝 기반 영상 분석 기술은 순례자의 이동 방향, 정체 구간, 밀집도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분석 결과는 다섯 단계 색상 체계(다크 레드, 레드, 오렌지, 옐로, 그린)로 시각화되며, 디지털 안내판과 경고등을 통해 순례자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위협 상황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SMART MOC에 경보가 전송되며, 시스템은 즉각적으로 우회 경로 안내, 안내판 전환, 인력 재배치 등의 조치를 취한다. 또한 얼굴 인식 기술을 활용해 실종자를 신속하게 식별하고 위치 정보를 보안 인력과 가족에게 전송함으로써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 Baseer의 핵심 차별성은 초밀집 구역을 고도로 정밀하게 통제하면서 자율형 대응까지 실현했다는 점이다.

<카바 주변 안내판>

[자료: the Islamic information 홈페이지]

2. Sawasher – 교통 흐름 분석

Sawaher는 메카 도심 전역의 교차로, 광장, 진입로 등에서 발생하는 차량과 보행자 흐름을 동시에 감지·제어하는 AI 기반 스마트 교통 시스템이다. 본래 차량 교통 관리를 위해 설계됐으나, 하지 기간 중 보행자 흐름 제어 기능이 추가되며 통합 플랫폼으로 확장됐다.

AI는 경로 분석과 대기시간 예측 알고리즘을 통해 병목 현상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며, 이상 흐름이 포착되면 SMART MOC로 즉시 신호를 전송해 인력 재배치, 경로 변경 등의 명령을 내린다. 약 600명의 관제 인력이 5000여 대의 스마트 카메라를 통해 메카 전역을 모니터링하며, 고밀도 보행 구간에서는 경고 조명, 음성 방송, 우선 경로 유도 시스템이 작동해 사고 예방에 기여한다. Sawaher는 Baseer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다중 교통 요소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둔다.

3. GeoAl  – 지리기반 예측 시스템

GeoAI는 메카, 미나, 아라파트, 무즈달리파 등 순례 주요 구역의 외곽에서 군중의 유입 경로와 분산 가능성을 예측하고, 이에 기반한 전략을 설계하는 데 특화된 플랫폼이다. 위성 이미지, IoT 센서, AI 알고리즘을 융합해 순례자의 이동 경로, 속도, 환경 조건을 종합 분석하고, 혼잡 예상 지점을 식별해 SMART MOC에 전달한다. 이 예측 데이터는 곧바로 폐쇄 구역 설정, 우회 동선 구성, 진입 제한 결정 등 사전적 대응 조치로 연결된다. GeoAI는 전체 군중 흐름 설계의 전초기지로서, 사전 예방에 특화된 시스템이다.

이 세 플랫폼은 단순히 기능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메카 순례 군중 관리의 전체 과정에서 예측 → 감지 → 제어라는 유기적 흐름을 형성한다. GeoAI가 전략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지점을 예측하면, Baseer와 Sawaher는 각각 배정된 구역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SMART MOC는 세 시스템의 데이터를 통합해 즉각적인 통제와 대응을 실행한다. 이를 통해 사우디는 세계 최대 밀집 환경인 메카에서 예방성, 정확성, 신속성을 모두 갖춘 군중 안전 체계를 완성했다.

AI 드론과 디지털 허가증으로 완성된 보안망

매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몰려드는 메카에서는, 행정 처리의 복잡성과 불법 순례자 식별·차단이 지속적인 과제로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사우디 정부는 하지 허가증 발급 체계를 전면 디지털화하고, 중앙 승인 시스템인 ‘Tasreeh 플랫폼’을 통해 모든 허가 정보를 통합 관리하고 있다.

<디지털 하지 허가증 발급 절차>

[자료: KOTRA 리야드 무역관 정리]

현장에서는 보안 인력이 Tawakkalna 앱을 통해 순례자의 디지털 허가증을 실시간으로 검증하며, 하지 참여 자격 여부를 신속히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허가증은 순례자뿐 아니라 행사 운영 인력과 차량에도 적용되며, 현장 통제의 정밀도를 높인다.

특히 2025년부터는 AI 객체 인식 기능을 탑재한 드론이 본격 투입되면서 감시 정확도와 대응 속도가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드론은 허가 정보가 없거나 일치하지 않는 사람·차량을 자동으로 식별해 GPS 좌표와 함께 SMART MOC에 실시간 전송하고, 인근 순찰 인력이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연계된다. 드론은 메카 외곽, 천막촌, 주요 진입 경로 등 감시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24시간 교대로 순찰하며, 기존 인력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웠던 넓은 지역까지 사전 차단 범위를 확대했다. 사우디 정부가 내건 ‘허가 없는 하지는 불가(No Hajj Without a Permit)’ 캠페인은 이처럼 AI 기술의 실시간 작동을 통해 현장 실행력까지 갖춘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우디 공안총국 드론 탐지·추적 영상>

[자료: 사우디 공안총국 공식 X계정(@security_gov), 2025.06.02 게시 영상]

무슬림의 질문에 AI가 답하다, ‘AI 종교 상담’ ‘마나라’

종교 의식에 대한 해석이나 실천 방식에 혼란을 겪는 순례자들을 돕기 위해, 메카 대 모스크에는 AI 기반의 다국어 종교 상담 로봇 ‘마나라 로봇(Manara Robot)’이 도입됐다. 이 로봇은 2025년 3월 라마단 기간에 처음 공개됐으며, 6월에 진행된 하지 시즌을 위해 마나라2 업그레이드 버전도 선보였다. 마나라 로봇은 최소 11개의 언어를 지원하며, 권위 있는 이슬람 율법 자료(fatwa)를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해 종교적 질문에 즉각 응답한다. 사전에 사우디 종교 당국의 검수를 거친 콘텐츠만을 기반으로 작동해, 율법적 해석의 신뢰도와 정통성을 유지한다. 특히, 복잡하거나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선 로봇이 자동으로 이슬람 학자와의 실시간 화상 통화로 연결해 주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기존에는 순례자들이 궁금한 율법적 문제를 현장에 배치된 이슬람 학자에게 직접 문의하거나, 자원봉사자와 통역인을 통해 상담을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언어 장벽, 대기 시간, 상담 내용의 일관성 부족 등 여러 문제가 반복됐다. 마나라 로봇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언제 어디서든 균일하고 신뢰도 높은 종교 상담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나라 로봇 현장 사진>

[자료: Arab News]

이슬람 성지에서 글로벌 혁신 도시로

사우디는 AI와 IT 기술을 통해 순례자 군중 관리라는 고질적 과제를 해결하고 있다. 메카 스마트화 전략은 단순한 디지털 전환을 넘어, ‘디지털 순례 도시’라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매년 수백만 명이 순례를 위해 메카를 찾으며, 이들은 관광·서비스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경제적 원동력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는 비전 2030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인 탈석유 경제 다변화와도 직결된다.

이에 따라 사우디 정부는 메카를 전통적인 순례의 중심지이자 첨단 기술 기반의 혁신 거점으로 육성하고 있다. 순례자 수용 능력도 현재 연간 약 1692만 명에서 2030년까지 3000만 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순례객에게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종교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세계 이슬람권 내에서 메카의 종교적·문화적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는 사우디가 강조하는 ‘이슬람 가치 정립’과 순례 만족도 제고 정책의 구체적 실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혁신은 국제 평가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가 발표한 2024년 스마트시티 지수에서 메카는 전 세계 141개 도시 중 39위를 기록하며 중동 지역 최상위권에 올랐다. 종교 중심 도시라는 한계를 딛고, 메카는 스마트 전환을 실현한 대표 도시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SDAIA(사우디 데이터 및 인공지능청) 관계자는 KOTRA 리야드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SDAIA는 AI 관련 기업 또는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매우 중시합니다. 특히 메카 시스템은 AI 기술이 종교적·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독특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AI 응용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메카 시스템의 스마트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밝혔다.

시사점

메카, 메디나, 지다 등 순례 중심 도시들이 스마트화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은 스마트 관제 및 IoT 기반 군중 관리 인프라 분야에서 기술 수출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SMART MOC는 CCTV, 열 감지 센서, AI 분석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연계하는 복합 인프라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와 유사한 통합관제 시스템과 지능형 교통 제어, 실시간 군중 밀집 대응 기술에 대한 국내 실증 경험은 전략적 강점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하지 및 움라(하지(Hajj)기간 외 메카 순례를 이르는 말) 순례자들을 위한 스마트 관광 플랫폼 개발도 유망 분야다. 순례객 전용 동선 안내, 실시간 경로 추천, 통합 결제, 다국어 서비스 등 기능을 포함한 앱 개발 경험을 보유한 한국의 ICT 및 관광 서비스 기업들은 현지 플랫폼(Nusuk 등)과 연계된 공동 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또한,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축적된 방역 및 응급의료 기술은 하지 현장의 감염병 대응 시스템과 보건 인프라 분야로 수출될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감염병 역학조사 시스템, 실시간 모니터링 플랫폼, QR 기반 출입 통제 시스템, 이동형 음압 진료소 등의 기술은 군중 밀도가 높은 성지 지역에서 높은 적용성을 보인다. 또한 메카에서는 감염병 외에도 열사병, 압사, 사고 부상 등 돌발 상황에 대한 신속한 의료 대응 역량이 요구되는데, 한국은 이러한 재난·응급의료 시스템 운영에서 이미 높은 효율성과 기술력을 입증해 왔다. 실제로 사우디는 하지 기간 중 감염병과 각종 응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AI 분석 기반 응급시스템 도입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관련 기술이 진출할 수 있는 유망 분야로 주목받는다. 한국의 시스템이 이슬람의 성지에서도 발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료: IRCICA, Arab News, SPA, The Islamic Information, Mecca Times 및 KOTRA 리야드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