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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독립 200주년, 경제를 바꾼 20대 사건 (1)
  • 경제·무역
  • 멕시코
  • 멕시코시티무역관 슈퍼관리자
  • 2010-09-29
  • 출처 : KOTRA

 

멕시코 독립 200주년, 경제를 바꾼 20대 사건 (1)

- 멕시코 각종 산업분야에 영향을 미친 사건 -

 

 

 

□ 멕시코 독립 200주년, 20대 경제 이슈

 

 Ο 지난 9월 16일은 멕시코의 독립 200주년이 되는 날이었음. 200년 전 미겔 이달고 신부가 멕시코의 독립을 외치고 독립운동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멕시코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20개의 사건을 경제주간지 CNNExpansion에서 다루었으므로 이를 살펴보겠음.

 

1. Cantarell 유정의 발견

 

 Ο 멕시코만에서 어업활동을 하던 Rubesindo Cantarell Jimenez는 1961년 100m가량의 기름띠를 발견했음. 그 발견은 10년이 지난 뒤 멕시코 국영 석유회사(PEMEX)에 발표됐으며, 이 유정에서 1979년에 원유생산을 시작한 첫해 원유생산량은 일일 평균 4290배럴이었음. 이 유정은 당시 전 세계 2번째로 원유 매장량이 많은 유정이었으며, 지금은 전세계 3번째로 원유매장량이 많은 유정임. 이 유정의 이름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Cantarell 유정이라고 명명됨.

 

 Ο Cantarell 유정의 발견은 멕시코 경제에 큰 변화를 주게 됐음. PEMEX의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 국내의 원유 생산량은 60년대에 일일 평균 33만 배럴이며, 이는 국내 수요를 감당하는데 그쳤으나, 80년대에는 일일 평균 300만 배럴을 생산하게 됐으며, 이 중 Cantatell 유정에서 생산된 원유가 일일 평균 약 100만 배럴로 36.7%를 차지해 멕시코를 원유수출국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음.

 

 Ο 멕시코의 원유 수출은 단순히 원유 수출로 인한 외화 획득에 머물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1976년 이후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국제수지 적자를 타개하고 국내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재원이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사건임.

 

2. 멕시코 혁명

 

 Ο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시작과 뒤이어 발생한 내전은 그 동안 지속돼오던 멕시코 경제를 파탄에 빠뜨렸음. 혁명기간 기업가들은 각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혁명정부에 사유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천문학적 액수의 세금을 내야했으며, 각종 생산공장은 혁명군들이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바뀌게 됐음. 이 내전은  약 7년간 지속됐으며 내전이 종식되기까지 멕시코 경제는 뒷걸음치게 됨.

 

 Ο 멕시코 혁명이 끝나고 난 뒤, 1917년 새롭게 제정된 헌법에는 천연자원의 국유화, 토지개혁 및 노동자의 권리보장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 헌법에 의해 멕시코 경제는 공공부문의 팽창과 정부의 경제개입의 확대를 가져왔으며, 민간부문의 경제참여가 제한받게 됐음. 이후 1980년대의 정부재정악화와 외환위기를 통해 민영화를 실시하기 전까지 정부의 경제개입은 더욱 심화됐음.

 

3. 새로운 에네껭 방적기계의 발명

 

 Ο 1855년 Jose E. Solis는 새로운 에네껭(Henequen) 방적기계를 발명했음.(에네껭은 한국말로 ‘어저귀’ 또는 ‘용설란’으로 불리며 어른 키 정도의 선인장인데, 섬유의 원료가 되는 식물임.) 이 기계는 6300개의 에네껭 잎을 24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었으며, 이 기계의 발명으로 유카탄주의 수출액은 50%가량 상승시켰음. 이로 인해 에네껭 섬유업은 유카탄주 경제의 근간이 됐으며, 당시 에네껭을 ‘녹색 황금’으로 부르기까지 했음.

 

에네껭 방적기계

자료원 : CNNExpansion

 

 Ο 또한 당시 국제적인 섬유수요 증가와 함께 에네껭 섬유 생산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특히 미국의 섬유 및 원사 수입수요로 인해 연간 생산량은 20%씩 증가하게 됐음. 1916년에는 당시 금액으로 8000만 페소의 수출액을 기록했음. 이러한 에네껭 섬유의 수요증가는 한국과도 깊은 관련있는데, 이와 같은 에네껭의 수요증가는 에네껭 농장에서 더욱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됐고, 멕시코의 한국인 이민 첫 세대는 이러한 농장에 취업해 멕시코 땅에 정착하게 된 경우임.

 

4. 깐꾼 관광개발

 

 Ο 1971년 8월에 발표된 연방관보는 깐꾼과 인근 섬의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음. 이 조치를 통해 아까뿔꼬 관광개발의 성공에 이어 멕시코 정부는 깐꾼을 국제적인 관광지로 변화시키려는 계획을 시행하게 됨. 이 계획에 정부는 2150만 달러를 투자해 공항, 호텔 및 위생설비의 건축, 유적지 개발 등을 수행했으며, 이러한 투자에 힘입어 1976년에는 15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했음.

 

 Ο 이 계획은 1968년 발표된 관광센터 통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내국인 관광객 유치뿐만 아니라 해외관광객유치를 목적으로 깐꾼 관광자원의 경제성을 높이 평가해 동 계획이 진행됐음. 멕시코 정부의 이 같은 관광자원개발로 인해 현재 멕시코의 관광산업은 원유수출에 이어 2번째로 큰 외화수입원이며, 깐꾼은 각종 숙박 및 위락시설, 도로, 항만, 국제 컨벤션센터 등이 위치한 국제적인 관광 명소로 발돋움하게 됐음.

 

5. 외국계 자본의 은행 인수·합병

 

 Ο 2001년 당시 멕시코 시중은행 중 자산규모 2위에 해당하는 Banamex가 미국 Citi Group에 인수 당했음. 이로 인해 Bancomer, Santander, Scotia Bank 등의 외국자본의 은행들이 멕시코의 금융권 대부분을 장악하게 됐으며, 유일하게 Banorte만이 예금보험기금(Fobaproa)에 인수돼 멕시코 자본으로 운영되게 됨.

 

 Ο 멕시코의 민간은행은 1864년 The Bank of London가 처음 설립된 이후 외국계 자본에 의해서 대부분 운영됐으나, 1932년 외국계 은행에 대해서 입금 및 공제업무 외에는 영업을 허용하지 않는 규제가 시행되면서 대부분의 은행은 멕시코 국내자본에 의해 운영됐음. 그러나 1980년 초반 유가가 급락하면서 외채위기에 직면한 멕시코 정부는 1982년 60개 시중은행을 국유화하고, 1986년에는 이를 18개로 통폐합하는 금융개혁을 시도했음.

 

 Ο 이후 1995년 재발한 외환위기로 인한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예금보험기금은 부실한 민영은행 18개 중 10개를 외국인에게 매각하거나 다른 은행에 흡수 또는 정부 은행화했음. 이러한 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멕시코 정부의 과도한 공적자금 부담, 은행 부실, 외채급증 등으로 1998년에는 대형은행에 대해서도 해외 매각을 허용하게 됨.

 

 Ο 이로 인해 현재 멕시코의 은행 중 상위 7개 은행 중 5개가 외국계 자본으로 운영되는데, 이는 전체의 68.05%에 달함.

 

멕시코 은행 시장 현황(2010년 6월)

순위

은행명

자산규모 (백만 페소)

지점수

ATM수

1

BBVA Bancomer (스페인)

1,120,196.7

1,797

6,442

2

Banamex (미국)

1,091,232.6

1,668

5,774

3

Santander (스페인)

639,220.4

1,065

4,279

4

Mercantil del Norte (멕시코)

565,975.3

1,102

4,685

5

HSBC (영국)

426,926.6

1,186

6,479

6

Inbursa (멕시코)

228,909.5

230

704

7

Scotiabank (캐나다)

193,957.5

617

1,472

 

기타

835,033.5

3,337

4,941

 

Total

5,101,452.1

11,002

34,776

자료원 : 멕시코 증권금융 위원회(CN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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