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계약서의 ‘작은 글씨’도 규제한다… 러시아의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 외부전문가 기고
- 러시아연방
- 모스크바무역관
- 2026-11-03
- 출처 : KOTRA
-
러시아 대법원, 지나치게 작은 계약서 글씨 문제 삼아… 형식적 정보제공의 한계 지적
2026년 7월 소액금융회사에 글씨 크기·색상 등 구체적인 표시 기준 도입
조은진 러시아변호사
법무법인(유) 율촌
모스크바 사무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찾아간다. 가난에 몰린 그는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린다. 조건은 가혹하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얼굴은 보인다. 얼마를 받는지, 무엇을 맡기는지, 누구와 거래하는지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21세기의 대출은 훨씬 편리해졌다. 사람을 직접 만날 필요 없이 스마트폰 화면에서 ‘다음’, ‘동의’, ‘신청’ 버튼을 몇 번 누르면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거래가 간편해진 만큼 소비자가 자신이 동의한 내용을 충분히 확인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낮은 금리나 수수료 면제 등 유리한 조건은 크게 표시되는 반면, 실제 적용조건이나 추가비용은 작은 글씨로 표시되는 경우가 있다. 보험이나 유료 부가서비스에 대한 동의 항목이 미리 선택되어 있기도 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회사는 관련 내용이 계약서에 모두 기재되어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서에 필요한 정보를 기재했다는 사실만으로 정보제공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최근 러시아는 계약조건의 내용뿐 아니라 정보의 표시 방식과 소비자의 동의 절차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규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러시아, 금융상품의 표시 방식과 동의 절차까지 규제
2026년 7월 1일부터 러시아 소액금융회사(Microfinance Organization, MFO·микрофинансовая организация)에 새로운 소비자보호 기본표준이 적용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승인한 이 표준은 금융서비스 이용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정보제공 방식과 유료 부가서비스 가입 절차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MFO는 글씨 크기와 색상, 명암 대비, 줄간격, 자간 등 시각적 요소를 이용해 소비자의 주의를 특정 조건으로 유도하거나, 부가서비스의 불리한 조건과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소비자에게 유리한 조건은 크고 굵은 글씨로 강조하면서 추가비용이나 불리한 조건은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글씨로 표시하는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작은 글씨의 사용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정보의 표시 방식을 통해 소비자의 판단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제한하려는 취지다.
유료 부가서비스에 대한 동의 절차도 규제 대상이다. MFO는 보험이나 기타 유료서비스의 가입 항목을 미리 선택해 놓고 소비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직접 해제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서비스의 내용과 제공자, 이용 거절 가능 여부 및 대출조건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동의 원칙은 러시아 「소비자신용(대출)에 관한 연방법」 제353-FZ호 제7조 제2항에도 반영되어 있다. 해당 조항은 대출과 함께 제공되는 별도의 유료서비스에 대해 소비자가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금융회사가 소비자를 대신하여 동의 표시를 하거나 사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결국 금융회사는 계약조건을 형식적으로 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확인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계약의 내용뿐 아니라 이를 표시하는 방식과 동의를 얻는 절차까지 소비자보호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러시아 대법원도 문제 삼은 계약서의 ‘작은 글씨’
이러한 접근은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 대법원은 이미 약 10년 전 계약서의 글씨가 지나치게 작아 소비자가 내용을 제대로 읽기 어려운 경우 정보제공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당시 Bank of Moscow는 소비자대출계약의 개별조건을 지나치게 작은 글씨로 기재하였다. 이에 러시아 소비자권익보호감독청(Rospotrebnadzor)은 소비자의 정보제공권이 침해되었다고 판단하여 은행에 행정제재를 부과하였다. 은행은 법적으로 필요한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취지로 다투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 대법원은 2016년 3월 25일 결정(№ 304-АД16-1458, 사건 № А27-14213/2015)에서 하급심 판단을 유지하였다. 지나치게 작은 글씨는 계약내용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어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 사건에서는 러시아 「소비자권리보호법」 제8조 및 제10조에 따른 소비자의 정보제공권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이 판결은 계약서에 관련 내용이 형식적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보제공 의무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종이계약서의 글씨 크기가 문제였다면, 오늘날에는 스마트폰과 온라인 플랫폼의 화면 구성 자체가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리한 조건은 첫 화면에 강조하면서 불리한 조건은 여러 화면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2016년 대법원 판결과 2026년 시행된 MFO 소비자보호 기본표준은 공통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실제로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금융거래로 확대되는 소비자보호 규제
한국에서도 온라인 쇼핑이나 서비스 가입 과정에서 소비자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거나 특정 선택을 유도하는 이른바 ‘다크패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선택하도록 유도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눈에 띄지 않게 배치하고, 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새로운 MFO 소비자보호 기본표준 역시 이러한 규제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 특히 글씨 크기와 색상, 줄간격, 자간 등 구체적인 시각적 요소를 규제 기준에 명시하여 소비자가 계약조건을 인식하는 방식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러시아에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계약서와 약관에 필요한 내용을 기재하는 것뿐 아니라 계약조건과 추가비용의 표시 방식, 유료 부가서비스 가입 절차, 소비자의 동의 확인 방식 등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새로운 기본표준은 MFO를 대상으로 하므로, 다른 금융기관이나 일반 온라인 사업자에 대해서는 각각의 적용 법령을 구분하여 검토해야 한다.
러시아의 최근 규제와 판례는 소비자보호의 기준이 계약조건의 형식적인 고지에서 실질적인 정보 접근과 선택권 보장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계약서나 약관의 법적 적정성뿐 아니라 실제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정보가 전달되고 동의를 받는 방식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법률상 요구되는 정보를 계약서에 기재했다는 사실만으로 관련 의무의 이행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으며, 정보의 가독성과 전달 방식 역시 법적 분쟁의 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약서의 문구를 점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라인 가입 화면과 계약 체결 절차 전반에 걸쳐 소비자의 정보 접근성과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해당 원고는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 KOTRA & KOTRA 해외시장뉴스>
KOTRA의 저작물인 ([기고] 계약서의 ‘작은 글씨’도 규제한다… 러시아의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의 경우 ‘공공누리 제4 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진, 이미지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
1
2026 러시아 시베리아 보건의료 국제 전시회 참관기
러시아연방 2026-11-02
-
2
[기고] 중국 11월 1일부터 사회보험료 납부 규제 강화… 세금처럼 관리한다
중국 2026-11-02
-
3
헝가리 2027년 예산안 의회 제출… 재정적자 GDP 대비 4.9% 목표, 대기업 법인세 15% 인상 추진
헝가리 2026-11-02
-
4
외국기업, 중국 투자 무게중심 생산에서 R&D로
중국 2026-11-02
-
5
중국 저장성 지역 소비시장 확대 속 항저우 K-소비재 판촉전 참관기
중국 2026-11-02
-
6
2026 중국 라이센싱 전시회(CLE) 참관기
중국 2026-11-02
- 이전글
-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