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2026년 일본은 '고생 취소' 트렌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라는 속담은 젊을 때의 어려움을 값진 경험으로 삼으라는 의미로 오랫동안 회자돼 왔다. 어려운 일을 겪는 이들에게 힘이 돼주거나 격려하는 의미로도 사용됐다. 그러나 2026년 일본 사회에서는 이 오래된 통념이 점차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2026년 일본의 소비 트렌드는 ‘고생을 줄이는 데 돈을 쓴다’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이른바 '고생 취소'(苦労キャンセル, 고생캔슬)로 불리는 현상이다. 불필요한 노력을 없애고 최소한의 수고로 높은 효율과 만족을 얻으려는 소비 성향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2022년 유행한 타이파(タイパ, Time Performance)* 개념과 유사하지만, 단순히 시간 대비 효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수고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질적 경험을 누리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고생을 줄이면서도 품질을 유지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차세대 소비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 시간 대비 성능(Time Performance, タイムパフォーマンス)을 의미하는 일본의 신조어

SNS 피로가 만든 새로운 행복관,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현대인의 행복관은 "노력해서 성취한다"에서 "노력하지 않아도 채워진다"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전환의 배경에는 SNS를 통한 타인과의 비교 문화와 정보 과잉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감이 자리한다. 끊임없이 타인의 성취를 목격하며 자신을 압박하는 환경 속에서 마음의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욕구가 커진 것이다. 이에 불필요한 고생을 줄이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고생 취소'라는 개념은 일본의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며, 목욕 취소(風呂キャンセル), 잔업 취소(残業キャンセル), 청소 취소(掃除キャンセル) 등 특정 행동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주체적 결정으로 받아들여지며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업무로 지쳐 집 안 청소를 할 여력이 없을 때 자신을 자책하기보다 로봇청소기에 전적으로 맡기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선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과도해지면 성장의 기회를 놓치거나 해야 할 일조차 회피하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디지털 기술 및 생성형 AI의 발전, '고생 취소'의 동력이 되다

이러한 '고생 취소'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단연 디지털화와 생성형 AI이다. AI가 일상생활에 전면적으로 침투하면서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는 툴 또한 급속도로 증가했다. 업무로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사, 쇼핑, 식사 등 매일 반복해야 하지만 큰 노력을 투입하기는 힘든 분야에서 이러한 소비 성향이 자주 관찰된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과거의 구매 이력이 쌓이고 이를 바탕으로 쇼핑몰이 고객의 취향이나 성향, 패턴을 분석해 최적인 상품을 자동으로 추천해 주는 기능이 보편화됐다. 또한 정기 배송 서비스와 같이 "재고가 떨어질 무렵에 새로운 것이 도착한다"라는 개념은 사는 수고를 덜어줄 뿐 아니라 생각하는 수고까지 덜어준다. 다른 일로 쇼핑 등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것에 시간을 투입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AI와 기술의 발전이 진화할수록 소비자는 어떤 고생을 취소하고 어떤 고생은 자기 몫으로 남겨둘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실시간 번역부터 외식용 패스트패스까지… 일상에 스며드는 '고생 취소'

닛케이크로스트렌드는 최근 발표한 「2026년 히트 예측 베스트 30」에서 1위로 다국어 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선정했다. 이는 불필요한 노력을 줄이는 '고생 취소' 트렌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예컨대 애플이 출시한 에어팟 프로3 제품에는 실시간 번역 기능이 탑재돼 있다. 이 기능은 외국어 학습을 위해 방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던 과정을 사실상 없애준다. 생성형 AI의 발전과 함께 음성 번역의 정확도와 자연스러움이 높아지면서 활자 번역으로는 담기 어려운 뉘앙스까지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수천 개의 단어를 암기하던 외국어 학습 방식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26년 히트 예측 베스트 10*>

* 주: 닛케이 트렌디가 매년 11월 발표하며, 다음 해 시장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 조짐, 신규 여부, 사회적 영향력 등 관점에서 선정하는 목록

[자료: 닛케이크로스트렌드]

'고생 취소'의 흐름은 외식·여행 등 일상생활 전반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테마파크나 인기 음식점의 대기 시간을 줄여주는 패스트패스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외식용 패스트패스 애플리케이션 SuiSui는 스마트폰으로 사전 입장권을 구매하면 대기 줄에 서지 않고 우선 입장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현재 일본 전국 약 50개 점포에 도입됐으며 이용자는 약 3만 명에 달한다. “여행 중에도 계획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긴 대기 시간을 줄여 체력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라는 평가가 이어지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에 KOTRA 도쿄무역관은 Suisui를 도입한 현지의 M 레스토랑을 방문해 레스토랑 운영자를 직접 인터뷰했다. 그는 해당 서비스 덕분에 "관광객을 포함해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답하며 "비용을 조금 더 내더라도 고생을 덜어주는 생활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음식점용 패스트패스 플랫폼>

[자료: SuiSui 홈페이지]

시사점

'고생 취소'는 단순한 시간 절약을 넘어 수고를 줄이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인력 부족과 장시간 노동, 고령화로 피로감이 누적된 일본 사회에서 고생을 피하는 것이 곧 현명한 삶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효율성과 편의성을 중시한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는 2026년에도 꾸준히 확대될 전망이다. 

이제는 시간을 '사는' 시대이다. 이에 우리 기업은 단순히 기능만을 향상하기보다 소비자의 판단과 노력을 줄여주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 자동화 가전, AI 추천형 서비스, 간편식 정기배송 등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를 지원하는 솔루션이 두드러진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성과 65세 이상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증가하면서 업무 외 생활 피로도가 높아지는 계층을 중심으로 관련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생을 줄여주는 기술은 일본 시장에서 새로운 프리미엄이자 한국 기업에는 유망한 진출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료: 닛케이크로스트렌드, PR타임즈, SuiSui, KOTRA 도쿄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