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사이트맵


Book Mark
Bacardí - Havana Club의 20년에 걸친 상표권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
  • 투자진출
  • 쿠바
  • 아바나무역관 윤예찬
  • 2022-09-23
  • 출처 : KOTRA

법정다툼은 1959년 혁명 이후 미국-쿠바 관계의 복잡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

헬름스버튼 법안에 따른 쿠바 제재는 쿠바와의 거래에 있어 엄청난 불확실성 초래

쿠바의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외국자본의 유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으나 미국의 대쿠바 제재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요소들을 고려한다면 투자처로서 쿠바의 매력도는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세계 최대의 럼주 생산기업인 Bacardí가 쿠바 정부가 소유한 Havana Club 상표권을 상대로 미국의 대쿠바 제재법안인 헬름스-버튼 법안을 통해 제기해 20년 넘게 끌어온 소송을 통해 쿠바투자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아본다.

 

쿠바의 자랑이었던 바카르디(Bacardí), 1959년 혁명과 함께 쿠바에서 쫓겨나

 

바카르디는 1862년 2월 4일, Don Facundo Bacardí Massó가 Santiago de Cuba에 소재한 양조장을 인수하면서 설립된 럼(Rum) 제조기업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Daiquirí, Cuba Libre 등 쿠바 칵테일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바카르디는 1920년대 미국에 금주령이 도입되면서 음주문화를 즐기기 위해 쿠바를 찾는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사업이 급속도로 확장됐고 1959년 혁명이 발발할 당시에서 전세계 최대규모의 럼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60년, 쿠바 정부는 Bacardí 가문의 자산을 몰수해 국유화했고, 같은 날 섬에 있는 Arechabala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아바나 클럽(Havana Club)'이라는 브랜드 역시 몰수했다. 버뮤다로 망명해 브랜드를 계속 유지한 바카르디와 달리 Arechabala 가문은 럼 사업에 더 이상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1977년 쿠바 정부는 Havana Club을 쿠바의 주력 럼주로 결정했다. 즉, Bacardí가 구체제(Ancient Regime) 쿠바의 상징이라면, Havana Club은 Fidel Castro가 재건하는 쿠바의 럼이 되었다.

 

Havana Club의 국제시장 진출로 불거진 바카르디와의 불화, 미국시장을 놓고 한판 승부


1990년대 초반 소련시장의 붕괴와 함께 쿠바산 럼의 수출시장도 함께 붕괴됐다. 쿠바는 기존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물물교환 형태의 무역을 통해 럼주를 팔고 생필품을 수입했으므로 마케팅에 관심이 없었고 서구 국가에 존재하는 유형의 상업적 유통 네트워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구권 붕괴로 쿠바의 무역 네트워크가 붕괴함에 따라 쿠바 생산품 중 그나마 국제경쟁력이 있던 럼을 본격적으로 수출하는 것이 급선무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쿠바 정부는 1993년 9월, 프랑스의 주류업체인 Pernod Ricard와 손을 잡고 Havana Club의 세계시장 진출을 노리게 된다. 쿠바가 생산, Pernod Picard가 판매를 하는 계약이었다. Pernod Ricard가 쿠바 정부와 체결한 계약은 Pernod Picard와 사실상 쿠바 정부가 소유한 Corporación CubaRon S.A.라는 회사가 Havana Club International이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형태였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Forbes는 Pernod Picard가 약 5000만 달러 정도를 투자한 것으로 보도했다. Pernod Picard는 Havana Club의 마케팅 포인트로 “순수한 쿠바 럼(Ron cubano puro)”, “진정한 쿠 럼(Genuino ron cubano)”을 들고 나왔고, 기존에 쿠바럼으로 시장을 선점하던 바카르디는 이에 크게 분노해 이후 30년에 이르는 법적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쿠바 정부와 Pernod Picard의 계약이 발표된 지 1달만인 1993년 10월, 당시 바카르디의 회장인 Manuel Jorge Cutillas는 전 세계 주류업계에 보내 공개서한을 통해 "바카디르는 30년 전 쿠바 정부에 몰수된 자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적이 없으며”, “쿠바 정권이 잠재 거래대상자에게 제공하는 자산에 바카르디의 자산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 Pernod Ricard도 쿠바 정부와의 계약으로 인해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에 계약서에 “쿠바 정부가 Havana Club의 상표권에 대해 어떠한 청구도 없었고 그러한 청구를 야기할 수 있는 이유나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 않음"을 보증하도록 요구했다. Arechabalas 가문은 1953년에 마지막으로 상표를 등록했고, 쿠바법상 그 등록이 만료된 지 오래돼 거래는 진행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바카르디는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나중에 큰 분쟁의 불씨가 된다.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이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 종료를 검토함에 따라 바카르디는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Havana Club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사실 쿠바에서 떠난 이후 30년 이상 동안 미국의 Bacardí 광고는 쿠바에서의 기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는 공산주의와 혁명에 대한 미국 내의 부정적인 인식을 의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갑작스럽게 바뀌면서 미국 내에 쿠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함에 따라 Bacardí 경영진은 Bacardí 고유의 쿠바 유산을 활용한 새로운 홍보계획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서는 Havana Club과의 “진정한 쿠바 럼” 타이틀 소유권에 대한 분쟁은 불가피했다.

 

<Bacardí 와 Havana Club 로고>

        


바카르디사에 날개를 달아준 헬름스-버튼법(Helms-Burton Act) 


1995년 2월  스 노스캐롤라이나주 공화당 상원의원과  튼  바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법’을 상하원에 각각 제출해 1996년 3월 상하 과했. -(Helmes-Burton Act)으   를 이끌어 낸다는 명분하에 쿠바 출신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과거에 소유했다가 쿠바 혁명정부에 의하여 몰수됐 3 국 연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몰수된 재산을 거래하는 제3국인 및 그 가족의 국  (3). 1959 혁명으로 쿠바에 5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억류당한 미국인이나 기업들이 쿠바에 투자한 외국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청구를 허용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Bacardí사는 원래 Helms-Burton 법안의 핵심 지지세력은 아니었으나 이 법안의 효력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법안 제3조는 Pernod Ricard처럼 Bacardí가 이전 쿠바에서 소유한 자산을 거래하는 기업에 대해 강력한 무기가 됐고, Bacardí는 곧 Helms-Burton 법안의 최대 지지자가 되어 비판자들은 Helmes-Burton Act를 비꼬아 ‘Bacardí Claims Act’라고 부르게 됐다.


클린턴 대통령의 제3조 효력 발동 유예조치, 전선의 확대 및 본격적인 소송의 시작


Bacardí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막상 헬름스-버튼법은 Bacardí에게 큰 무기가 되질 못했다. 법 제정이 됨과 동시에 클린턴 대통령이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Waiver)을 통해 제3조의 효력 발동을 유예시켰고, 이후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계속 6개월 단위로 유예를 연장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Pernod Ricard 역시 잠재적인 법적 다툼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Bacardí가 이전에 소유했던 자산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임에 따라 Bacardí는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고, 럼사업을 떠나 스페인에 거주 중이던 Havana Club 브랜드의 원소유주인 아레차발라(Arechabala) 가문을 끌어들이게 된다.


Bacardí의 전략은 Havana Club 상표권을 Arechabala 가문으로부터 인수해 Bacardí의 소유가 됐으므로 이를 미국에서 판매하는 것은 상표권 위반이라는 주장이었다. 비록 1976년 미국 특허청상표청(United States Patent and Trademark Office, USPTO)에서 Havana Club의 상표권을 쿠바 정부에 부여했지만, Bacardí는 Havana Club이 불법적으로 쿠바 정부로 몰수됐기 때문에 1976년의 상표권 부여는 부당하며, 여전히 Havana Club의 브랜드는 아레차발라 가문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는 논리였다. 


1995년 가을, 아직 아레차발라 가문으로부터 상표권 인수협상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Bacardí는 바하마의 Nassau 증류소에서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있는 회사 창고로 Havana Club 레이블이 표시된 16병의 럼주를 배송했다. 다분히 상징적인 이 선적의 목적은 순전히 Havana Club 상표의 "의도적 사용"을 보여주어 Pernod Picard를 소송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즉시효과를 발휘했다. 1996년 12월 Pernod Ricard와 쿠바 정부는 Bacardí의 "Havana Club" 사용이 상표권 침해라고 주장하면서 뉴욕 지방 법원에 Bacardí를 고소했고, 20년이 넘는 법적 대결이 시작된다. 소송이 시작되고 4개월이 지난 1997년 4월, Bacardí는 아레차발라 가문으로부터 Havana Club 상표권 및 쿠바 정부에 몰수당한 자산의 소유권을 단 125만 달러에 인수한다.

 

미국 국내정치에 휘둘리는 소송, 20년을 넘게 끌다


Pernod Picard – 쿠바 정부 측은 자신들이 Havana Club 상표에 대한 법적 권리를 이미 확립했으며 Bacardí는 단지 경쟁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끌 뿐이라 주장했다. 실제 아레차발라 가문은 1953년 마지막 등록한 상표권이 1973년 만료된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쿠바 정부는 아레차발라의 상표권이 만료된 이후에야 Havana Club 상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Pernod Picard – 쿠바 정부 측 입장은 본질적으로 상표권에만 집중한 전략이었다.


반면 Bacardí 처음부터 상표권 문제에서 벗어나 1960년의 자산 몰수를 부각했다. 쿠바 정부가 아레차발레 가문의 Arechabala 가족의 Havana Club 상표를 훔쳤으므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이었다. Bacardí의 문제는 미국 및 국제 상표법 및 협정이 '합법적' 정부와 '불법적' 정부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기존 미국 법률에 따르면 상표권 기존 보유자(아레차발라)가 상표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쿠바 정부가 몰수해 취득한 상표의 등록을 허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Bacardí는 다시 미국 의회에 도움을 구한다.


1999년, 친 Bacardí 의원들은 “통합긴급예산법(Omnibus Consolidated and Emergency Appropriations Act)을 통해 혁명을 통해 몰수된 국유 자산에 사용된 상표 및 상호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도록 했고, 연방 법원은 211조에 근거해 1976년 CubaExport가 등록한 쿠바 브랜드 Havana Club의 미국 등록을 무효로 선언했다. 쿠바 정부와 EU의 항소는 기각됐고, 2001년, 2002년 WTO는 본 조치가 WTO 규정 위반으로 판단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로써 미국에서 Havana Club의 상표는 Bacardí의 소유로 인정받게 된다

 

It Ain’t Over ’til It’s Over, 20년이 넘어가면서 또다른 반전


2006년 Cubaexport는 미국의 대외제재를 책임지는 해외자산통제국(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 OFAC) 에 Havana Club 상표권 갱신을 위해 500달러를 지불하려 시도했다. 이전 판결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Havana Club 상표권 소유에 관한 분쟁을 재점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Havana Club의 수출 허가는 "미국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며 거절했고, 결과적으로 Cubaexport의 등록이 취소, 또는 만료된 것으로 확정됐다.


Cubaexport는 워싱턴 연방법원에서 해외자산국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패소했고, 대법원이 사건 심리를 거부하자 2012년 특허상표청으로 결정이 넘어갔다. 거의 끝난 것처럼 보이던 사건은 2016년 1월, 오바마 행정부의 對쿠바 유화정책의 영향으로 미국 특허청이 CubaExport가 기존 Bacardí의 상표권 기한 10년(2006~2016년)이 만료되면 재등록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당연히 Bacardí는 반발해 2021년 12월 Havana Club의 상표권에 대한 판단을 근거로 특허상표청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2년 4월 버지니아 연방법원은 “상표권 판단은 특허상표청의 절차를 따라야하므로 특허상표청 자체에 소송을 거는 것은 법원의 판단범위를 벗어난다"는 사유로 기각했다. 이에 2022년 현재 기준, Havana Club은 Pernod Picard - 쿠바 정부가 소유한 것으로, 2026년까지 상표권을 확보한 상황이다.


물론 미국의 對쿠바 제재로 인해 Havana Club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으나 애초에 Havana Club 브랜드의 미국시장 소유권을 주장했던 Bacardí 입장에서는 향후 쿠바시장 개방 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인지도가 높아진 'Cuban Run'의 강력한 잠재 경쟁자를 안게 되었다.

 

끝나지 않은 싸움, 쿠바와의 사업은 언제든 진흙탕이 될 수 있다


Bacardí와 Havana Club의 상표권 소송은 쿠바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외국기업들에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억제 신호를 보내는 효과가 있었다. 쿠바법에 따라 외국기업이 쿠바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쿠바 국영기업과 합작투자(JV)를 설립해야 하는 상황에서 쿠바 국영기업이 어떤 형태로든 기존에 혁명정부에 의해 몰수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언제든 기존 자산 소유주로부터 소송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법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하더라도 헬름스-버튼법, 통합긴급예산법 등에서 보이듯 미국 의회가 Bacardí를 지원하는 입법을 하면서까지 지원하고 있고 미국의 對쿠바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도 커 섣불리 쿠바 사업에 나섰다가는 언제든 진흙탕 싸움에 빠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자료원: Bacardi and the Long Fight for Cuba: The Biography of a Cuase, Cubatrade.org, The Havana Club Saga: Threatening More than Just "Cuba Coke"

<저작권자 : ⓒ KOTRA & KOTRA 해외시장뉴스>

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KOTRA의 저작물인 (Bacardí - Havana Club의 20년에 걸친 상표권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의 경우 ‘공공누리 제4 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진, 이미지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국가별 주요산업

댓글

0
로그인 후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 입력
0 /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