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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중심 탈피, ‘룰 메이킹’으로 신시장 개척하는 일본
- 경제·무역
- 일본
- 도쿄무역관 하세가와요시유키
- 2024-10-08
- 출처 : KO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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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법률 국제표준 국제규격 규제 해외진출 시장 개척
전 세계 유명 기업들, 현재 룰 메이킹에 주력 중
법의 사각지대에 맞서 자체 비즈니스를 가속화하는 것이 '룰 메이킹'
“룰 테이커에서 룰 메이커로(From Rule-taker to Rule-maker)” 최근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해외 비즈니스의 규칙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규칙을 주도적으로 만들며 일본의 통상정책과 자사 경영 전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규칙 만들기'와 '표준화'가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는 가운데, 일본 기업들이 이러한 규칙 형성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 사례를 다뤄봤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룰메이커 육성 연수 모집 광고>
[출처: 경제산업성]
룰 메이킹의 '규칙'이란 무엇일까. 규칙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으며, 조약, 협정, 지침, 법률, 고시, 통지, 표준 규격, 가이드라인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규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Standards(표준)와 Regulations(규제)다. 표준과 규제를 결합하면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Standards(표준)는 주로 업계 단체나 기업 등 민간이 주도적으로 제정하는 규칙이다. 반면 Regulations(규제)은 정부나 국제기구가 주도하며, 민간은 로비나 정책 제안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규칙 수립에 관여할 수 있다. 핵심은 이 두 요소의 조합이다. 표준만으로는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므로, 규제와 함께 작용해야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는 사회문제 해결의 관점이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정당성이 없으면 규칙으로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기업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같은 뜻을 가진 동료를 찾아 정치, 행정, 사회 부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 합의 형성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이킹'의 측면에서도 '규칙을 만든다'는 적극적 참여부터, '기존 규칙의 해석을 명확히 한다'거나 '규칙 변경이 검토될 때 저지하거나 궤도 수정을 시도한다'는 소극적 참여까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규칙의 유형>
[출처: Owls Consulting Group]
'룰 메이커로'라는 움직임의 배경에는 일본 기업의 경영 환경 변화가 있다. 전후 일본 기업들은 주로 유럽과 미국이 정한 규칙에 따라 값싸고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며 경쟁력을 갖추고 경제 성장을 이뤄왔다. 그러나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면 반드시 팔린다'는 공식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통하지 않게 되었고, '끊임없는 원가 절감'과 '축소되는 일본 국내 점유율 경쟁'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이 돌파구로 삼고 있는 것은 '규칙을 지키는 쪽에서 만드는 쪽으로의 전환'이다.
또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제품과 혁신적인 서비스가 요구되고 있는 가운데, 룰 메이킹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도 이러한 배경 중 하나이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이라도 규칙에 따라 경영난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생겼다.
참고로, '룰 메이킹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에서는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정책이나 입법에 대해 로비 활동을 하는 '로비스트(lobbyist)'의 활동이 널리 퍼져 있다. 닛케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의 GAFA 4사가 2020년에 지출한 로비 비용은 총 5390만 달러에 달하며, 향후에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영상 게시 앱 'TikTok'의 모기업인 ByteDance는 874만 달러(전년 대비 77% 증가), 패스트 패션 EC 'SHEIN'은 212만 달러(전년 대비 7.6배)를 2023년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에 지출했다(참고로 애플은 990만 달러). 모든 로비 활동이 규칙 제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 중요성이 강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4월, 일본 경제산업성은 '세계 및 업계 공통의 규칙 만들기를 통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일본 기업 10곳'을 발표했다. 이는 일본 기업들에게 '룰 테이커에서 룰 메이커로'라는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룰 메이킹'으로 돈을 잘 버는 일본 기업 10곳과 성공 패턴>
성공패턴 ① 정책형성 및 규제 디자인 리드
각국의 산-관-학 주요 인사들과 적절한 관계를 구축하여 시장 창출에 기여하는
규제 수립/개혁 주도
인프로니아 HD
건설
PFI법에 공공시설 등 운영권 도입을 위한 협의에 참여, 규칙이 미비했던 컨세션 사업의 법제도화를 통해 일본 국내 시장 창출
코니카 미놀타
광학기기
드론 등 장비 사용이 제한되는 '위험구역' 범위 외 검토에 기여하여 옥외 저장탱크 주변에서 스마트 보안을 활용하는 시장 창출
코마츠제작소
건설기계
건설 현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부의 노력으로 드론 측량 및 ICT 건설기계용 공법 등 기준 정비에 기여하여 시공 전반에 ICT를 전면 활용하는 솔루션 시장 창출
시오노기제약
제약
관공서 조사사업 등에 참여하여 규칙 제정을 추진하여 유럽과 미국에 비해 사회 구현이 늦었던 하수역학조사 국내 시장 창출
다이킨공업
공조기기
인도 등에서 안전규제 개정과 에너지절약법 기준 강화를 추진하여 에너지절약 기준 값이 경쟁지표가 되는 에어컨 시장 창출
※HD(Holdings) /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 민간자본을 활용한 사회자본 정비 / Concession : 공공시설 등의 운영권
성공패턴 ② 표준화를 통한 혁신 연계 촉진
표준화/규격 제정 및 기술 개방을 통해 다양한 사업자가 새로운 시장에 쉽게 진입/기여할 수 있는 기술기반 구축
IDEC
FA 제어기기
자체 개발한 스위치 관련 국제표준 제정과 이를 탑재한 로봇 및 그 시스템의 표준 개정을 통해 자사 우위의 국제 시장 창출
가와사키중공업
중장비
기술개발 단계부터 국제 표준화를 통해 타국 제품과의 차별화를 꾀하여 일본 우위의 수소 공급망 관련 기기 시장 창출
세키스이화학공업
화학
관로 재생 공법의 JIS 및 표준 제정에 있어 자사가 공동 개발한 SPR 공법도 준수하도록 포지셔닝하여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 해당 공법 시장 창출
유니참
위생용품
유럽과 미국에서 주류인 종류만을 상정하여 국내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제품에 대응하지 못했던 소변흡수보조기구의 국제표준을 개정하여 해외 시장 창출
※FA(Factory Automation) : 공장 자동화 / SPR 공법(Sewage Pipe Renewal Method) : 노후화된 기존 하수관거를 재생하는 제관공법
성공패턴③ 업계 공감대 형성을 통한 새로운 '모노사시' 개발
의제/문제 의식을 제기하고 다른 기업을 참여시켜 새로운 '가치'를 정의하는 인증 기준 등 수립
야마하
음향기기
음향기기 업계에서의 영향력을 활용한 컨소시엄 설립과 공통 표준 수립을 통해 새로운 통신 기술 “SoundUD”의 시장 창출
[출처: 경제산업성]
일본 경제산업성은 '규제, 표준, 업계 기준 등의 규칙을 스스로 주도/형성하여 시장을 창출하는 힘'을 '시장형성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시장 형성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2022년 3월 발표된 일본 경제산업성 '사회문제 해결형 기업 활동에 관한 의식 조사(링크)'에서도 알 수 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경영계획 등에 규칙 형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상장기업의 30% 미만에 불과하고, 70%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규칙 형성에 힘쓰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 중 특히 선진적인 37개 기업의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 2019년도까지 10년간 연평균 성장률(CAGR)이 약 4%로 일본 기업 평균인 0.8%를 크게 웃돌아 시장 형성력이 높은 기업은 기업 성장의 실현도가 높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규칙 형성을 통한 신시장 창출을 구상하는 기업의 비율 및 시장 형성력 유무에 따른 매출액 차이>
[출처: 경제산업성]
룰메이킹 우수사례1: 다이킨
"높은 기술력을 적극 공개. 현지 기업도 참여시켜 규칙을 만들고 현지 시장을 개척하다"
공조 분야 세계 점유율 1위, 해외 매출 비중 83%, 그룹 직원의 80%가 해외에서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 다이킨. 다이킨은 높은 기술 개발력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능숙한 '로비 활동'이다. 다이킨공업은 이 로비 활동을 '어드보커시(advocacy) 활동' 또는 '정책 제안'이라고 부르며, 이를 중요한 업무로 인식하고 유럽을 중심으로 미국, 중국, 인도 등 주요 거점에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애드보커시 활동의 예로는 EU 회원국에 정보 제공과 정책 제언을 하는 활동이 있다. 현재 다이킨 유럽지사의 임원은 EHPA(유럽 히트펌프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자사 직원들을 유럽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적절한 직책에 배치한 후, 업계 단체와 함께 다양한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다이킨의 애드보커시 활동이 가져온 성공 사례로 높이 평가받는 것은 2008년 히트펌프에 의한 열에너지를 EU가 재생 가능 에너지로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다이킨의 유럽 사례 (히트펌프를 활용한 규칙 형성)>
※COP 수치는 소비전력 1kW당 난방 출력을 나타낸 것
[출처: 다이킨]
이에 따라 지금까지 유럽의 난방 방식의 주류였던 연소식에서 히트펌프식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유럽 그린딜'과 '코로나 부흥 기금'의 지원으로 규제가 강화되고 인센티브가 확대되면서, 다이킨은 2019년 히트펌프식 난방 기기의 EU 점유율 1위(20%)를 차지하게 되었다. 유럽 그린딜은 2019년 폰데어라이엔 유럽의회 의장이 내놓은 화석연료 탈피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목표로 한 정책으로, 2050년 역내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이킨의 이러한 옹호 활동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먼저 규제나 인센티브(동기부여) 등의 규칙을 만들어 그 제품이 팔릴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로비 활동을 진행하면서 환경 보호 등 공익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도 성공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이킨 임원은 “룰 메이킹에는 대의와 동료가 필요하다. 자사 제품만 팔고 싶은 이기심은 통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으며, 이는 해외에서 규칙 형성을 고민하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지역 특성에 맞는 공조기 개발-생산-판매-AS 체제 구축>
*유럽의 혹한기 기후에 대응하는 다이킨의 히트펌프식 난방·온수기 'altherma 3 H HT'(오른쪽)
[출처: 다이킨]
<다이킨의 자체 기술을 시장 형성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 사례>
다이킨의 기술
동기
룰메이킹과 아웃풋
결과
냉매
(R32 [HFC-32])
・가연성을 적절히 구분하여 신냉매의 이용 범위를 확대
・ISO5149, IEC60335-2-40 등 국제표준 개정, UN GHS 가이드라인 개정. 각국에 국내 표준 적용을 촉구하고 기술 지원을 실시
・R32를 사용한 공조기의 세계 누적 판매량은 약 2.8억 대 이상으로 추정(2023년 12월 기준)
・신냉매의 보급을 촉진하여 사회 전체의 환경 부하 저감
・2011년 R32 관련 특허를 신흥국에 개방, 2015년에는 선진국에도 개방. 2019년에는 다이킨에 사전 허가나 계약서가 필요 없는 '무상 개방'을 선언.
에너지 절약
(인버터 기술)
・중국 내 인버터 시장 형성 희망
・2008년 당시 중국은 세계 최대의 CO2 배출국이며 중국 정부는 에너지 절약 기술을 장려하고 있지만, 중국 브랜드의 기술력은 아직 부족
・2008년 중국 최대 공조기 제조업체인 주하이급전기와 제휴하여 인버터 기술을 제공
・이후 중국 정부에 공동으로 노력하여 2010년에 에너지 절약 규제 개정을 실현
・한 자릿수였던 중국 내 인버터 보급률이 현재 70% 초과
・신흥국에서도 인버터 시장을 형성
・인버터를 적절히 평가하는 IEC 규격의 도입과 차별화를 위한 에너지 절약 등급 기준의 도입을 추진
(인도, 아세안, 멕시코, 브라질,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도 실현)・인도, 아세안에서 인버터 시장이 급성장하여 에어컨 점유율 1위로 성장
히트펌프 난방 급탕
・연소 난방에서 전기 난방으로 시장 전환
・EU는 '20-20-20 정책'을 내세웠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아 새로운 대안 모색중
・히트펌프 기술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새로운 재생가능에너지로 정의할 것을 제안
・새로운 에너지 절감과 그 이용 기술을 제안하고, EU 의회, EU 집행위원회에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촉진 지침을 개정하여 WinWin의 규칙 형성을 달성
・2019년 히트펌프식 난방기기 EU 점유율 1위(20%) 달성
[출처: 다이킨]
룰메이킹 우수사례2: 야쿠르트
"자사 제품의 강점이 돋보이는 규칙을 신설하여 시장을 창출하다"
유산균 음료로 유명한 야쿠르트. 최근 수면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내세운 '야쿠르트 1000'이 일본 내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히트상품이 되었지만, 사실 야쿠르트의 실적을 뒷받침하는 것은 해외 사업이다. 현재 야쿠르트는 전 세계 40개국에서 하루 평균 약 4210만 병(국내 약 1080만 병, 해외 약 3130만 병)이 판매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음료는 지역적 선호도가 강해 해외 진출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야쿠르트의 해외 매출 비중은 45%(2022년 기준)로 매우 높아, 보기 드물게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판매 호조 지역 중 하나인 유럽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유럽에는 유산균 음료 시장이 없었고, 인지도가 높지도 않았다. 만약 그대로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면 청량음료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대형 음료 제조업체와 경쟁하면서 상품성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질 우려가 있었다. 이에 따라 야쿠르트는 일본 내 업계 단체를 통해 국제 식품 규격을 제정하는 코덱스 위원회에 접근하였고, 무려 18년에 걸친 협상 끝에 2010년 유산균 음료를 발효유 표준의 네 번째 카테고리로 새롭게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건강식품으로 인정받으면서, 이탈리아에서는 부가가치세가 청량음료에 해당하는 20%에서 10%로 인하되는 등 매출 확대로 이어졌다. 이 사례는 자사 제품의 특징을 돋보이게 하는 규칙을 신설함으로써 자사 제품이 특별한 평가를 받고, 이 특징을 소비자에게 어필하여 인지도를 향상시킴으로써 블루오션을 개척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야쿠르트의 룰메이킹 사례>
※국내 업계 단체는 일반사단법인 전국발효유유산균음료협회이며, 코덱스위원회는 FAO와 WHO가 설치한 정부 간 기구로, 국제 식품규격의 제정을 담당
[출처: 경제산업성]
룰메이킹 우수사례3: IDEC
"국제표준화는 대기업의 특권이 아니다. 거의 내수용에 가까운 제조업체의 노력으로 글로벌 틈새기업으로 도약하다"
FA 제어기기 제조업체인 IDEC(아이덱)은 해당 산업 분야에서 일본발 국제 표준화 및 국제 규칙 제정을 주도해 온 유명 기업이다. 풍부한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IDEC는 일본의 제조업 대기업 도요타를 제치고 올해 6월 핀란드에서 열린 공장 안전 기술 국제 표준을 둘러싼 회의에서 일본 대표단을 이끌었다.
국제 표준화에 주력하게 된 데에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있었는데, 1990년대 초 회사의 주력 제품이었던 산업용 스위치가 IEC(국제전기표준화회의)에서 유럽과 미국 주도로 표준화되면서 자사 표준이 제외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점유율은 급감했고, 2001년도 기준 매출은 제외되기 전과 비교했을 때 40%나 감소했다. IDEC에서 30년간 국제 표준화에 종사해 온 후지타 씨는 “이미 발행된 표준-규격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쪽이 되지 않으면, 계속 뒤처진 채로 세계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Toshihiro Fujita 상무집행임원 또한 이 발언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밝혔다.
이후 IDEC은 다양한 국제 표준화 회의와 국제 표준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성과로 '3-position enable switch'의 IEC 표준화에 성공하였다. 이 제품은 IDEC이 1997년에 개발하였고, 2003년부터 국제표준화 제안을 시작해 2006년에 국제표준 발행을 이뤄냈다. 그 결과 이 제품의 판매는 꾸준히 성장해 2023년 출하량이 71만 대에 달하며, 세계 점유율은 90% 이상에 이르렀다. 국제 표준 발효 전(2005년 출하량 12만 대)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는 CAGR 약 11%, 해외향은 약 18%라는 높은 성장률과 실적을 달성했다.
<IDEC의 enable 스위치 출하량(2000~2023년)>
[출처: IDEC]
<IDEC의 인에이블 스위치와 이를 장착한 장비의 예>
[출처: IDEC]
미국은 지난해 AI, 양자 등 첨단 기술에서 국제 표준화를 주도하는 전략을 발표하였다. 중국 역시 이미 국제 표준화를 통해 자국 기술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통신의 국제 표준을 정하는 유엔 전문기구 사무국에 근무하는 자국 직원을 2009년부터 10년간 3배 이상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춰 일본 정부도 반격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 기업의 표준화 대응 지원책을 담은 새로운 '국가표준전략'을 올해 안에 수립하고, 생물다양성이나 양자-핵융합 등 첨단 분야에 초점을 맞춰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을 용이하게 할 계획이다.
국제 표준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고 민관합동으로 비즈니스 확대를 꾀하는 움직임은 유럽, 미국, 중국 정부를 중심으로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환경-에너지 분야와 경제 안보 등 그 범위도 확대될 것이다. 특히 혁신 영역에서는 첨단 기술과 비즈니스 환경을 잘 아는 민간 기업이 정치인과 관료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함께 규칙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건전한 산업 발전을 위해 기대가 된다.
시사점
주도적으로 적절한 규칙 만들기에 참여함으로써 자사 사업 전개가 용이해지고, 업계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룰메이킹에 임하기 위한 기본 전제로 '룰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룰을 만드는' 적극적인 관여 없이도 현재의 룰로 차질 없이 비즈니스를 수행할 수 있다면 추가적인 비용 지출이 불필요하다. 현행 규칙의 틈새를 파고들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스포츠계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88년 서울올림픽 100m 배영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스즈키 다이치의 바사로 수영법이 그 사례이다. “유익한 룰메이킹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다이킨을 공조업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중흥의 아버지' 이노우에 레이유키 회장은 평소 "일류 전략과 이류 실행력보다 이류 전략과 일류 실행력’이 중요하다"라는 말로 직원들을 독려해 왔다. 룰메이킹은 최단거리에서 스마트하게 큰 성과를 얻는 전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을 반복하며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이는 전략이므로 이를 관통하는 인내와 실행력이 필요하다. 근시안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고, 경영자나 관리층의 용단이 필요하지만, 비즈니스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보인다.
자료:경제산업성, 오울즈 컨설팅 그룹, BBC, 닛케이 신문, 닛케이 아시아, 다이킨, 야쿠르트, IDEC 등의 자료 및 KOTRA 도쿄 무역관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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