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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구의 사람도 아닌 총리 — 이라크 알-자이디 지명과 5개월의 타협
- 외부전문가 기고
- 이라크
- 바그다드무역관 조동준
- 2026-05-28
- 출처 : KO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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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간의 교착 상태 끝에 무소속 사업가 출신 알리 알-자이디가 이라크 신임 총리로 지명됨
미국과 이란의 이례적인 동시 환영 속 의회를 통과했으나, 핵심 안보 부처가 공석인 절반의 내각으로 출범함
향후 친이란계 PMF 조직 통제 및 경제성장률 △6.8%에 달하는 경제 위기 극복이 핵심 과제로 대두됨
주이라크 대한민국 대사관 박철현 책임
(KOTRA 글로벌 지역전문가)
baghdadpark@gmail.com
누구의 사람도 아닌 총리 — 이라크 알-자이디 지명과 5개월의 타협
- 본 기고는 알-아이디 총리의 의회 신임투표 통과(2026.5.14.) 시점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26년 4월 27일, 바그다드의 정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5개월 넘게 이어진 정부 구성 교착이 마침내 풀린 날이다. 이라크에서 실질적인 정부수반 역할을 하는 총리는 의회 다수파를 형성한 시아파 정치 세력의 합의를 거쳐 결정된다. 그 합의를 도출하는 시아파 정파들의 협의체가 바로 '시아조정기구(CF, Coordination Framework)'다. 이날 시아조정기구(CF)가 마침내 단일 후보에 합의하자, 니자르 아메디 신임 대통령은 그 합의에 따라 알리 팔레흐 알-자이디(Ali Falih al-Zaidi)를 차기 총리로 지명했다.
알-자이디는 40세, 정당 소속도 의원 경력도 없는 사업가 출신이다. 2003년 이후 가장 젊고, 가장 의외의 총리 지명자였다. 그럼에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동시에 환영 메시지를 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인물의 정치적 좌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약 2주 후인 5월 14일, 알-자이디는 의회 신임투표*를 통과하며 정식 총리로 취임했다.
* 신임투표(vote of confidence) : 의회 329명 중 167표 이상의 찬성으로 신규 총리 및 내각을 공식 인준하는 절차로, 총리 취임의 마지막 관문임. 동 의회 표결 통과시, 총리는 '지명자' 신분을 벗고 정식 총리로서 군 통수권 및 정책 집행권을 행사
이 타협이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질지, 또 다른 위기로 번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답을 찾으려면 먼저 이라크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하사사 — 이라크 정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헌법
이라크 정치를 이해하는 첫 번째 관문은 헌법 조문이 아니라 '무하사사 타이피야(종파 할당제)‘라는 비공식 관행이다. 흔히 줄여서 ‘무하사사'로 불리는 이 체계는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직후 미군정과 정파 지도자들이 합의한 종파·민족 권력분점 체계로서,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 대통령은 쿠르드족, 총리는 시아파, 의회 의장은 수니파가 맡는다는 3대 요직의 종파 배분이 그 골격이며, 22개 부처는 시아파 약 54%, 수니파 24%, 쿠르드족 18%, 소수민족 4%의 비율로 나눠진다.
이 체계는 종파·민족 간 내전을 막는 안전장치였지만, 동시에 효율적 통치보다 지분 배분에 최적화된 구조를 낳았다. 정부 구성은 선거가 아니라 정파 간 협상에 의해 결정되며, 어떤 정파가 어떤 부처를 가져갈지가 정책 방향보다 우선한다. 2010년 정부 구성에 8개월, 2021~22년에는 11개월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헌법상 의회 1차 회기 후 15일 내 의회 의장 선출, 30일 내 대통령 선출, 다시 30일내 내각 신임투표라는 시한이 명시되어 있지만, 이라크 정치사에서 이 시한이 지켜진 적은 전무하다.
따라서 2025년 11월 총선 직후부터 시작된 5개월간의 교착도, 표면적으로는 이례적이지만 구조적으로는 이라크 정치의 평균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이라크 정치 제도와 정부 구조>

[자료: 현지 자료 바탕으로 기고자 작성]
총선에서 교착까지 — 5개월간의 정치 드라마
2025년 11월 11일 치러진 제6대 의회 총선은 56.07%라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2021년 41.05%)을 기록했다. 결과는 어느 정파도 단독 과반에 미치지 못한 분열 양상이었다. 당시 알-수다니 총리의 ‘재건과 개발연합’이 46석으로 1위를 차지했고, 진보당(타카둠) 36석, 법치연합(말리키) 29석, 사디쿤(AAH)* 27석, 쿠르디스탄 민주당(KDP) 26석 순이었다. 시아파 전체는 약 187석을 확보했으나 내부는 최소 4개 진영으로 갈라져 있었다.
* 사디쿤(Sadiqoun) : 미국이 테러 단체로 지정한 친이란계 PMF 조직 아사이브 아흘 알-하크(AAH)의 정치분파
※ PMF(Popular Mobilization Forces_인민동원군) : 2014년 ISIS 테러조직 격퇴를 위해 결성되어 2016년 이라크군 지휘체계에 통합된 준군사 조직. PMF의 약 60여개 조직 중 절반 이상이 친이란계로 분류됨.
문제의 핵심은 시아파 내부 균열이었다. 시아조정기구(CF)는 알-수다니의 연임을 지지하는 쪽과, 2006~2014년 총리를 지낸 누리 알-말리키의 복귀를 원하는 쪽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어느 쪽도 합의 임계점을 넘지 못한 채 두 달이 흘러갔다.
여기에 외부 변수가 결정적으로 개입했다. 2026년 1월 24일 시아파 연합이 결국 알-말리키를 총리 후보로 지명하자, 사흘 만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에 "말리키가 다시 집권하면 미국은 이라크를 더 이상 돕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 단순한 트윗이 아니었다. 미국은 곧 이라크에 대한 달러 송금을 부분 중단했고, 친이란계 PMF 조직 지휘관들을 추가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라크 원유 수입금이 뉴욕 연준(NY Fed)에 보관된다는 사실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이라크 재정을 언제든 마비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트럼프의 경고는 빈말이 아니었다.
이어 2026년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이라크의 정치 시계를 흔들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이라크 원유 수출은 사실상 마비됐고, 정부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원유 매출이 무너졌다. IMF는 2026년 이라크 경제가 6.8%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치적 공백을 더 끌 여유가 누구에게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대통령 선거도 3개월 가까이 지연된 끝에 4월 11일에야 PUK 소속의 니자르 아메디가 결선 투표 227대 15로 당선됐다. KDP는 절차 위법성을 주장하며 보이콧했다가 5월 7일에야 의회에 복귀했다.
결국 4월 27일, 시아파 연합 막판 회의에서 알-수다니와 알-말리키 양 거물이 모두 후보직을 자진 사퇴하면서, 누구의 사람도 아닌 인물 '정치 신인 알리 알-자이디'에게 길을 열어주는 타협안이 도출됐다. 5개월간의 교착이 비로소 끝나는 순간이었다.
알리 알-자이디 — 정치 신인이라는 이름의 타협
알-자이디는 1986년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이라크 남부 디카르(Dhi Qar) 주에 연고를 둔 시아파 가문이며, 그는 법학과 금융학을 공부해 금융·은행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정치가 아닌 사업에 집중돼 있다. 알-와타니아 홀딩그룹 회장, 디즐라 TV 소유주 겸 CEO, 그리고 식품·건설·인쇄·보안 등 15개 자회사를 거느린 알-우와이즈 그룹 소유주가 그의 공식 이력이다. 사적으로는 알-수다니와 알-말리키 양 진영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정당 기반과 정치 경력이 없다는 점이 모두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컨센서스 후보로서는 강점이지만, 일단 출범한 후 강경 정파를 통제할 정치적 자본은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잠재적 부담은 그가 2019년 사임할 때까지 이사회 의장을 지낸 알-자누브 이슬람 은행이 2024년 미 재무부의 우려로 이라크 중앙은행으로부터 달러 거래 차단 조치를 받은 8개 은행 중 하나라는 점이다. 다만 알-자이디 본인이나 그의 기업이 미국의 공식 제재 대상에 오른 적은 없으며, 독립 조사에서도 본인의 직접적 자금세탁 연루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이력은 향후 미국과의 금융 협상에서 잠재적 마찰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알-자이디는 지명 직후 "이라크를 지역적·국제적으로 균형 잡힌 국가로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고,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는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 간 중재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까지 제안했다. 5월 7일 의회에 제출된 시정 강령에서는 사업가 출신답게 투자 환경 개선, 전력난 해소, 원유 부문 개혁 등 경제 재건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개혁의 추동력이 정치적 기반 부재라는 본질적 취약성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과 이란 — 보기 드문 동시 환영
알-자이디 지명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반응은, 이 인물의 정치적 좌표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서다. 두 적대국이 동시에 환영 의사를 표명한 것은 최근 이라크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30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알-자이디가 차기 총리로 지명된 것을 축하한다. 양국 간 강하고 생산적인 새로운 관계를 기대한다"는 글을 올렸고, 같은 날 직접 전화를 걸어 워싱턴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 다만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익명 인터뷰에서 "친이란계 PMF 조직 문제에 대한 구체적 행동"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환영은 했으나 조건부였다는 의미다.
이란의 반응도 신속했다. 압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5월 1일 X에 환영 성명을 게재했고,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5월 5일 알-자이디와 전화 통화를 가졌다. 다만 페제시키안은 이 통화에서 "이슬람 공화국은 결코 강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견제 메시지를 함께 전달했다. 알-자이디 지명을 환영하면서도, 그가 미국 쪽으로 너무 기울지 말라는 경고를 사실상 곁들인 셈이다.
결국 알-자이디 지명은 미국이 친이란 성향의 알-말리키를 거부하고, 이란 역시 미국이 선호하는 인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도출된 양측의 최소공통분모였다. 두 강대국 모두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상대편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한 것이다.
신정부 조직 구성 — 절반의 출범
알-자이디 정부는 5월 14일 의회 신임투표를 통과하며 공식 출범했다. 의원 266명의 찬성으로 알-자이디는 같은 날 헌법 선서를 마치고 정식 총리로 취임했다. 5개월 넘게 이어진 정부 구성 교착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마침표는 미완성 문장의 끝에 찍혔다.
이라크 내각은 통상 22~23개 부처로 구성되지만, 이번에 의회 승인을 받은 장관은 14명뿐이었다. 나머지 9개 부처와 부총리 4인 자리는 정파 간 합의 불발로 공석으로 남았다. 이라크 헌법이 제안된 부처의 '절반 이상' 승인만으로 신임투표 통과를 인정하기 때문에, 알-자이디 정부는 이 최소 요건을 가까스로 충족한 채 출범한 셈이다.
승인된 14명 가운데 외교부 장관에는 쿠르드 KDP 출신 푸아드 후세인이 유임됐고, 정부 수입의 90%를 책임지는 석유부 장관에는 바심 모하메드 쿠다이르, 재무부 장관에는 팔레 알-사리가 새로 임명됐다. 가장 결정적인 공백은 국방부와 내무부다. 이라크의 군대와 경찰을 각각 관할하는 두 핵심 안보 부처가 모두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사법부, 교육부 등 나머지 7개 부처도 비어 있는 상태로 출범했다.
승인된 인선의 또 다른 특징은 친이란계 PMF 조직과 연계된 정치 세력의 인사가 단 한 명도 입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작용한 결과다. 의회 27석을 확보한 친이란 정파 사디쿤(AAH)은 입각을 요구해왔으나 결국 배제됐다. 반면 신임투표 며칠 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 이스마일 카아니(2020년 미군 드론 공격으로 암살된 카셈 솔레이마니의 후임)가 바그다드를 방문해 시아파 정파들에 "미국의 무장 해제 요구에 굴복하지 말라"고 종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알-자이디는 '절반의 정부'로 출발하게 됐다. 미국이 요구한 친이란계 PMF 조직 인사의 장관 입각 절대 불가 원칙은 지켜냈지만, 그 대가로 시아파 강경파의 반발을 사면서 핵심 안보 부처 인선이 멈춰버린 형국이다. 미국을 달래자니 시아파 강경파가 반발하고, 강경파를 수용하자니 미국이 달러 송금 재개를 보류하는 진퇴양난이 부처 공석이라는 가장 가시적 형태로 현실화된 셈이다. 여기에 양대 쿠르드 정당 KDP와 PUK 사이의 권력분점 협정마저 KDP의 총선 압승으로 흔들리고 있어, 알-자이디가 향후 비어 있는 9개 자리를 채우기 위해 협상해야 할 변수는 시아파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망 — '약한 총리'의 어려운 균형
신임투표 자체는 부분 내각이라는 형태로나마 통과됐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정치적 공백을 더 끌 여유가 누구에게도 없었고, 알-수다니와 알-말리키 양 거물이 자진 사퇴하며 정치적 배수진을 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이 동시에 환영한 후보가 의회에서 좌초된다면, 그 정치적 비용은 모든 정파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만 신임투표 통과가 안정적 통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9개 부처가 공석으로 남은 채 출발했다는 사실 자체가 알-자이디 정부가 마주할 시험대를 미리 보여주는 신호다. 알-자이디 정부 앞에는 세 가지 거대한 시험대가 놓여 있다.
첫째는 친이란계 PMF 조직의 통제다. 약 23만 명에 달하는 인력과 연 35억 달러 예산을 운영하는 이 조직은 명목상 이라크군의 일부로 통합되었지만 실제로는 정부 통제 밖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알-자이디는 시정 강령에서 "무기는 국가에만 속해야 한다"고 약속했으나, 구체적 일정이나 강제 수단은 제시하지 못했다. PMF 소속 인사 입각이 미국 압박으로 무산된 만큼 시아파 강경파의 반발은 더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균형 외교다. 알-자이디는 이라크가 두 나라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카타르가 해온 그런 중재가 이라크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이라크 영토 안에 친이란계 PMF 조직이 자리 잡고 있고 미국의 압박은 일방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균형보다는 한쪽으로 끌려갈 위험이 크다.
셋째는 경제 위기 관리다. 6월부터 본격적인 자금난이 예상되는 가운데, IMF의 구제 프로그램이 거론되지만 이는 미국의 정치적 협조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미국의 협조를 받으려면 친이란계 PMF 조직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 문제를 건드리면 시아파 강경파가 반발하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순환 구조다.
결론적으로 알-자이디 정부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은 '총리는 되지만 통치는 약한'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 부처 절반이 비어 있는 채로 출범했고, 미국과 친이란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다 6개월 안에 작은 정치 위기를 한두 차례 겪을 가능성이 높다. 사업가 출신의 신선한 경제 비전이 정치적 현실의 벽을 어디까지 넘어설 수 있을지, 그리고 호르무즈 정상화 시점과 미·이란 휴전 유지 여부라는 외부 변수가 얼마나 우호적으로 작용할지가 향후 1년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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