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질 불안이 일상이 된 이라크, 정수기가 필수가 되다

이라크에서 정수기는 더 이상 물 맛을 개선하는 보조 가전이 아니라, 가정과 생활 공간에서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설비로 인식되고 있다. 이라크 전역에서는 상수도 수질이 연방 기준을 안정적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으며, 노후화된 배관과 지역별 수질 편차, 염분 및 미생물 오염 문제가 일상적인 생활 리스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으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고착화되었고, 가정 단위에서 직접 음용수를 관리하려는 수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과거에는 물을 끓이거나 생수를 구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비용과 편의성, 장기적 안전성을 고려해 정수기를 선택하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바그다드, 바스라, 에르빌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산층 소비 여력이 회복되면서 정수기는 냉장고나 에어컨과 유사한 생활 필수 설비로 인식되는 추세다.

수입 통계로 본 시장 흐름

이라크 정수기 시장을 계량적으로 살펴보면 단기적인 변동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물 여과·정화 장치(HS Code 8421.21) 기준 수입액은 2022년 1억 달러를 상회하며 정점을 기록한 이후 2023년과 2024년 감소세를 보였다. 이는 팬데믹 이후 위생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며 일시적으로 확대됐던 수입 물량이 정상화되는 과정과 환율 변동 및 수입 규제 강화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다만 이러한 수치는 정수기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는 의미로 단정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조정 국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해당 HS 코드 통계에는 산업·상업용 설비까지 포함돼 있으나, 이라크의 유통 구조와 소비자 접점 기준으로는 가정 및 생활 공간에서 사용되는 정수기가 수입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수입 규모의 등락과 별개로 정수기에 대한 생활 밀착형 수요 기반은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시장의 성격이 단순한 규모 확대 국면에서 구조적 수요 변화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라크의 연도별 정수기(HS 8421.21) 수입액 및 주요 공급국>

(단위: USD 천)

	2020년 수입액	2021년 수입액	2022년 수입액	2023년 수입액	2024년 수입액	2025년 수입액 (1~3분기)
총계	70,478	55,923	104,490	83,810	63,273	N/A
중국	28,424	16,354	20,730	17,812	21,101	13065
튀르키예	8,410	10,265	10,800	16,298	13,012	9309
독일	1,968	1,396	1,538	1,197	903	1452
대한민국	2,599	628	1,313	1,507	243	425
대만	1,466	908	498	424	314	526
헝가리	28	294	4,160	1,098	583	457
프랑스	197	87	1,110	520	151	65
말레이시아	20	64	0	77	29	29
영국	1,585	398	471	155	725	54
스페인	157	931	77	75	661	11

[자료: ITC Trade Map, KOTRA 바그다드무역관 정리]

현지 관계자가 말하는 체감 수요의 변화

시장 통계만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변화는 현지 유통 현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라크 수처리 및 환경 솔루션 분야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현지 유통업체 관계자 알 샴마리(Al-Shammari) 씨는 바그다드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정수기 시장은 수입 규모만 보면 불안정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수기를 찾는 수요가 사라진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여름철에는 수질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정수기 문의와 설치 수요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현지 유통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가격이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지만, 최근에는 필터 성능과 사후관리 여부를 먼저 묻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며 “정수기가 단순 가전이 아니라 가족 건강과 직결된 설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이는 이라크 정수기 시장이 저가 제품 중심의 일회성 구매 시장에서 신뢰성과 지속 사용을 중시하는 소비 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RO·UV 중심으로 재편되는 제품·기술 수요

현재 이라크 시장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수기 유형은 역삼투압(RO) 방식 제품이다. 염분과 중금속 제거에 효과적인 RO 방식은 특히 남부 지역과 대도시 가구에서 선호도가 높다. 여기에 세균과 바이러스 제거를 위한 자외선(UV) 살균 기능이 결합된 RO+UV 복합형 제품의 비중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중력식 정수기가 사용되고 있으나, 전체적인 수요는 성능과 안전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필터 교체 주기 알림이나 수질 상태 표시 기능을 갖춘 제품도 점진적으로 도입되며, 정수기가 단순한 가전기기를 넘어 생활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시장의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수입 의존 구조 속 경쟁 환경

이라크 정수기 시장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구조를 보인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최대 공급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튀르키예는 지리적 근접성과 중간 가격대 제품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독일산 제품은 물량은 제한적이지만 상업용 및 고급 시장을 중심으로 꾸준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산 정수기는 코웨이(Coway)를 중심으로 기술력과 품질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나,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중국·튀르키예 제품과의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브랜드 신뢰도와 사후관리 역량을 중시하는 소비층을 중심으로 일정한 수요 기반이 유지되고 있다. 한편 Alhafidh Group, KONWT 등 현지 기업들은 자체 브랜드 또는 해외 브랜드와의 제휴를 통해 유통·설치·유지보수를 포함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 내 주요 정수기/수처리 관련 브랜드>

Coway (코웨이)	Alhafidh (알하피드)	KONWT / Kontec (콘우트 / 콘텍)
- 한국 대표 정수기 브랜드, 공식 딜러를 두고 사업 운영 - 프리미엄 정수기 (RO/종합 정수기) - 고급 가정용 시장	- 바그다드 기반, 쇼핑몰에서 판매 - 생활가전 정수기 리테일 - 중저가/현지 소비자용	- 여과 필터·수처리 부품+설치 서비스 제공 - SNS를 통한 홍보 및 고객 접점 확보 - 부품·시스템 공급형

[자료: Coway Iraq, Alhafidh, KONWT 홈페이지]

규제와 시사점

이라크로 정수기를 수출할 경우 6.5% 수준의 관세가 적용되며, 선적 전 이라크 표준품질관리기구(COSQC)가 발행하는 적합성 인증(CoC)을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 또한 2025년 12월부터는 사전 통관 신고 제도가 본격 시행되어 수입자는 ASYCUDA 전자 시스템을 통해 물품 정보를 사전에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품질 관리와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규제 대응 역량이 부족한 기업에게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라크 정수기 시장은 단기적인 수입 규모 변동과 관계없이 수질 불안이라는 구조적 요인에 기반해 수요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가격 경쟁보다는 품질 신뢰성, 인증 대응 능력, 현지 유통·사후관리 체계를 갖춘 기업이 향후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것이다.

자료: ITC Trade Map, Coway Iraq, Alhafidh Group, KONWT, 이라크 표준품질관리기구(COSQC), 이라크 관세청, 현지 유통업체 인터뷰, KOTRA 바그다드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