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미국 거리에서는 큼직한 로고가 들어간 후드티나 과감한 스트리트 패션이 눈에 띄곤 했다. 옷차림만 봐도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카페나 캠퍼스, 마트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조금 다르다. 크림색 니트에 편한 팬츠, 가벼운 아웃도어 재킷처럼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깔끔한 옷차림이 일상이 됐다. 튀지 않지만 편안하고,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패션 키워드가 바로 ‘바닐라걸’과 ‘그래놀라걸’이다.

미국 MZ 패션 키워드, “꾸미지 않은 듯 꾸민다”

‘바닐라걸(Vanilla Girl)’ 룩은 크림·베이지·오프화이트 등 부드러운 색감을 중심으로 한 미니멀 스타일을 의미한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과 단정한 분위기가 특징으로, 기본 티셔츠나 니트, 심플한 팬츠처럼 일상에서 활용도가 높은 아이템이 중심이 된다. 미국 시장에서는 미니멀 감성을 강조하는 캐주얼·컨템퍼러리 브랜드들이 이러한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반면 ‘그래놀라걸(Granola Girl)’은 자연과 아웃도어 감성을 반영한 스타일이다. 플리스 재킷, 루즈한 팬츠, 기능성 소재 의류 등 활동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아이템이 특징으로, 친환경 이미지와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강조하는 아웃도어·캐주얼 브랜드들이 이 흐름을 이끌고 있다. 두 트렌드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공통된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다.

<생성형 AI (chat GPT)로 보는 바닐라걸, 그래놀라걸 이미지>

[자료: Chat GPT]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미국 MZ세대의 소비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이들은 옷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소비를 선호한다. 특히 지속가능성, 윤리적 생산, 오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 여부가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지 패션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젊은 소비자들은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라며 '디자인뿐 아니라 소재와 브랜드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분석한다. 

미국 패션 시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Y2K, 스트리트 패션 등 강한 트렌드가 반복됐으나, 최근에는 다시 기본 아이템 중심의 안정적인 수요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깔끔한 데님, 애슬레저 제품, 미니멀한 상의류는 트렌드 변화와 관계없이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이와 함께 친환경 소재, 재활용 원단, 단순한 디자인을 강조한 제품들이 주목받으며, ‘유행을 타지 않는 옷’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빠른 회전보다 브랜드 신뢰와 완성도를 중시하는 소비 흐름으로 해석된다. 스포츠 의류 매장 담당자도 KOTRA 달라스무역관과 인터뷰에서 '최근에는 Patagonia, Freepeople Movement 등 웰니스·환경 등을 키워드로 하는 브랜드들의 제품의 매출이 오르고 있다'라고 답했다. 

시사점 

미국 MZ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바닐라걸·그래놀라걸 트렌드는 한국 패션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 전략을 재점검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우선, 화려한 디자인이나 단기 유행을 반영한 제품보다는 미니멀한 색감과 실루엣, 착용감을 중시한 기본 아이템이 미국 소비자에게 보다 안정적인 선택지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이 강점을 지닌 봉제 품질과 소재 완성도를 앞세워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그래놀라걸 트렌드에서 나타나듯, 아웃도어·애슬레저 요소를 일상복에 자연스럽게 접목한 제품군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활동성과 실용성을 갖추면서도 과도하게 기능성을 강조하지 않은 디자인은 미국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잘 부합한다. 특히 자연·웰니스·여가와 연결된 콘셉트는 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할 가능성도 보여준다.

아울러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부가적인 마케팅 요소가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기본적인 신뢰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친환경 소재 사용, 윤리적 생산 공정, 장기 착용을 전제로 한 디자인 등은 브랜드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를 브랜드 스토리와 함께 일관되게 전달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여기에 TikTok, Pinterest 등 SNS를 활용해 스타일과 일상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더해질 경우, 한국 기업의 제품 경쟁력은 더 부각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료: Vogue Business, Cosmopolitan,Elle, Pinterest, TikTok, KOTRA 달라스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