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치뤄진 선거에서 영국 노동당은 40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하며 1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이 같은 결과는 지속되는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에 따른 경제 위기와 공공 의료 악화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은 경제성장과 안보에 초점을 맞춘 중도화 전략을 펼치며 지지층을 넓혔고, 412석의 압도적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영국 총선 결과 요약>

*주: 영국은 각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그 선거구의 대표로 선출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어 의석수와 득표율이 비례하지 않음

[자료: BBC(7.6.)]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7월 17일 국왕 연설(King’s speech)을 통해 새로 출범한 정부가 경제 성장 및 재정 안정, 노동자의 생활 수준 향상에 초점을 두고 국정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왕 연설은 정부가 새 의회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할 입법안을 발표하는 것으로, 정부가 연설문을 작성하고 국왕이 이를 발표한다. 총 39개의 입법 계획이 발표됐는데, 이 중 ‘경제 안정과 성장’ 관련 법안만 15개가 포함됐다. 투자 촉진을 위한 국부펀드 조성, 주택 공급 가속화 등의 법안이 속해 있으며, 이 외에도 피고용인 보호 강화를 위한 ‘제로아워 계약’ 폐지 및 녹색 성장을 위한 국영 청정에너지 기업인 GB 에너지 신설 등의 정책이 추진될 예정이다. 제로아워 계약은 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으로 계약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계약을 뜻한다. 

<영국 국내 총생산(GDP) 전년 대비 증가율(2000년~2028년)>

[자료: 영국 통계청(Office of National Statistics)]

노동당이 추진하려는 경제, 통상, 노동, 이민, 공공 분야의 정책은 각각 다음과 같다.

1) 경제정책

노동당은 G7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6가지 핵심 경제 성장 계획을 발표했다.

① 투자 확대

노동당은 국부 펀드(National Wealth Fund)를 조성해 자동차 산업, 제조업, 철강 산업, 녹색 기술 등 주요 산업에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는 영국 인프라 은행에 73억 파운드 규모의 펀드를 할당할 예정이며, 해당 펀드는 공공투자 1파운드 당 민간에서 3파운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산업 전반에 투자가 가속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안보 및 넷제로 부(Department for Energy Security and Net Zero) 장관 에드 밀리밴드(Ed Miliband)는 해당 펀드를 통해 수천 개의 청정 에너지 일자리를 창출하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 영국의 에너지 부분과 경제를 혁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② 주택 공급 및 인프라 구축

노동당은 경제 성장 촉진을 위해 주택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향후 5년간 150만 채의 신규 주택을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지방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정부에서는 지역사회 및 지방에 주택을 건설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런던의 올해 신규 주택 건설 목표치는 10만 개에서 8만 개로 감소하기도 했다.

노동당 정부는 보다 나은 주택 공급과 함께 지역 경제 성장을 위해 지방분권 법안(English Devolution Bill)을 도입하겠다 발표했는데, 해당 법안은 지역 시장들에게 ‘지역 성장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새로운 권한을 부여한다. 이에 더해 4억5000만 파운드의 지방 자치 단체 주택 기금이 지방의회에 전달돼 2000가구 신규 주택 건설에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그린벨트 재검토를 통해 주택공급을 늘리고 주택 가격을 낮춰 경제 성장을 촉진할 계획이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영국이 필요로 하는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린벨트로 분류된 일부 토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보존 가치가 낮은 그린벨트를 그레이 벨트로 변경, 해당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 내 그린벨트 현황(2023.3월 기준)>

[자료: GOV.UK]

더불어, 노동당 정부에서는 철도, 도로 등 주요 인프라 또한 개선할 예정으로, 이를 위한 국가 인프라 및 서비스 혁신 기관 (National Infrastructure and Service Transformation Authority) 설립도 함께 계획하고 있다.

2) 통상정책

① EU 와의 관계 개선

노동당 정부는 브렉시트로 인한 교역량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EU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해외 투자 감소 및 경제 침체 위기를 겪은 만큼, 새 정부는 EU와 정치적, 경제적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 성장에 나설 예정이다. 노동당은 집권기간 중 단일시장이나 관세동맹 재가입 등 EU로 복귀할 계획이 없음을 확실시 했으나, EU와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EU-영국 간 안보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불필요한 국경 검사 및 식품 가격 상승을 방지하기 위한 수의검역(veterinary) 협정을 추진할 방침으로 알려져 있다.

2024년 7월 18일, 스타머 총리는 취임 2주 만에 유럽 지도자 약 50명이 참석하는 유럽정치공동체정상회의(EPC)를 개최해 EU회원국과의 관계 개선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해당 회의에서 영국은 AI, 에너지 안보, 불법 이주민, 우크라이나 지원 등의 핵심 문제와 관련해 EU와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등 향후 EU와 활발한 협력을 시사했다. 조셉 보렐(Joseph Borrell)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우리는 영국 정부의 새로운 기조를 환영하며, 외교 안보 정책 협력을 강화할 준비가 됐다”고 화답했다. 금년 11월 헝가리에서 개최될 유럽정치공동체정상회의에서는 영국에서 진행된 정상회의를 기반으로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즈에 의하면, 영국 정부는 추후에도 EU 회원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몇 개월에 걸친 양자 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과 키어 스타머 총리는 수 주 안에 다시 만날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② 한국, 걸프협력이사회(GCC), 인도,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과 무역협상 추진 예정

노동당 정부는 한국, 걸프협력이사회(GCC), 인도, 이스라엘, 튀르키예 국가들과의 무역 협상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조너선 레이놀즈(Jonathan Reynolds) 영국 기업통상부 장관은 한국, 걸프협력이사회(GCC), 인도, 이스라엘, 한국, 스위스를 시작으로 국제 협력국과 무역 협상에 나서, 영국 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 일자리 증진에 도움이 되는 무역 협상을 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의 첫 협상은 가을에 이뤄질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월 14일에는 한-영 자유 무역협정(FTA) 개선 협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양국의 산업부 장관이 참여하는 화상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영국 기업통상부 장관으로 새로 취임한 조너선 레이놀즈 장관이 참여한 회의로, 앞선 대통령 국빈 방문 계기로 채택된 ‘다우닝가 합의’ 협력 과제 이행을 통해 양국 간 포괄적 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양국 기업의 활발한 투자와 기술 협력 등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양국 경제협력관계 강화를 위한 긴밀한 소통이 기대된다. 다우닝가 합의 협력 과제는 △국방, 방산 등 안보협력 강화, △과학 기술, 무역, 투자 등 경제 안보 협력 강화, △에너지 및 기후분야 협력 및 공동 대응을 통한 지속가능한 미래 구축 등이다.

3) 이민정책

노동당 정부는 이민 정책과 관련해서 외국인 대상 비자 정책 강화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이민자 강제 이주 정책(르완다 정책)은 즉시 폐지하고 이를 대체해 국가안보사령부를 신설할 것으로 밝혔다.

① 외국인 대상 비자 정책 강화를 통한 순이민 감축 정책

영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순 이민자 수 30만 명 축소를 목표로 학생, 숙련 노동자, 가족 비자 발급 규정을 강화했는데, 2024년 1월부터 대학원 연구과정, 정부 지원 과정을 제외한 유학생의 가족 동반 비자 발급이 중단됐으며, 숙련 노동자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일반 급여 요건은 2만6200파운드에서 3만8700파운드로까지 상승했다. 이에 올해 1~7월 숙련 노동자 비자와 보건/돌봄 노동자 비자, 학생 비자 신청 건수가 급감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5% 감소한 35만3300건을 기록했다. 옥스퍼드대 이민관측소에서는 이민 순유입 규모가 향후 5년간 급감해 2030년에는 35만명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대학 수입 감소, 일부 부문 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노동당에서는 학업, 취업 등으로 인한 이민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순이민 감축 정책 기조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이고 있다. 다만, 보건 및 돌봄 서비스 관련 이민자의 가족 동반 비자는 유지하는 등 영국이 일자리 부족을 겪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② 강제 이주 정책(르완다 정책) 폐지

키어 스타머 총리는 기존 보수당의 이민자 강제 이주 정책(르완다 이송법)*을 즉시 폐기하는 대신 해당 예산으로 국경보안사령부(Border Security Command)를 신설해 국가 보안을 강화할 예정이다. 르완다 이송법은 영국 정부가 소형 보트 등을 타고 영국 해협을 넘어온 불법 이민자들을 르완다로 강제로 이송해 망명 신청 처리 및 사후관리를 위탁하는 협약인데, 키어 스타머 총리는 총리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해당 정책이 불법 이민에 대한 억제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발언하며 이를 즉시 폐기할 것이라 밝혔다. 대신해 불법이민을 지원하는 갱단을 소탕할 국경보안사령부(Border Security Command)를 신설, 기존 르완다 이송법을 위해 사용됐던 예산으로 해당 부서를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국경 보안과 관련해 EU와의 협력도 보다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4) 노동정책

노동당은 노동자 인권 정책(Employment Rights Bill)을 통해 노동자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이에 ‘착취적인’ 제로 아워 계약 제한 강화, 고용 첫 날부터 노동자의 기본 권리 도입, 병가 수당 인상 등의 정책이 도입된다. 또한, 저임금위원회(Low Pay Commission)를 통해 최저임금이 실제로 생활 가능한 최저 금액이 될 수 있도록 조정할 예정이다. 국왕 연설에서 정책들의 자세한 기준이 제시되지는 않은 만큼, 앞으로 발표될 노동 정책에 귀추가 주목된다.

5) 공공정책

보수당 정부부터 지속돼 왔던 NHS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도 눈에 띈다. 노동당에서는 대기 시간을 줄이고, 사후 치료에 앞서 질병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공공의료서비스를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근무시간 외 추가 진료 인센티브 제공으로 NHS 의료 인력의 진료 시간을 확대하고, 매주 4만건 이상 추가 진료로 진료 대기시간을 줄일 계획이다. 또한, 병원들 간 대기자 공유 시스템을 구축해 보다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새 정부는 예방에 중점을 둔 의료시스템 구축을 통해 NHS 서비스 수요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 중이다. 2009년생 이후 출생한 사람이 평생 담배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연법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지속 시행될 예정이다.

시사점

그간 인플레이션 및 경제 성장 둔화로 고생하던 영국은 2024년 상반기 드디어 G7 국가 중 최고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물가상승률 둔화, 고용 증가, 건전한 성장이 동시에 나타나는 ‘골디락스 경제(경제가 높은 성장을 이루고 있더라도 물가상승이 없는 상태)’에 진입했다. 이러한 영국의 급격한 성장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한편, 노동당 집권으로 영국 경제 회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키어 스타머 총리의 매년 2.5%의 GDP 성장 목표와 정부의 야심찬 투자 정책을 통한 공급 측면의 개혁으로 영국의 성장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영국 경제학자 소날리 푼하니(Sonali Punhani)는 “노동당의 승리로 성장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지속될 수 있으며, 이는 단기적인 것만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당 정부에서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춰 투자를 확대하려는 기조를 보이고 있는 만큼, 자동차 산업, 제조업, 철강 산업, 녹색 기술 등 주요 산업의 성장이 전망된다. 이에 해당 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좋은 비즈니스 기회를 잡아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규 주택 공급이 노동당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강조되고 있는 만큼, 건설업의 성장도 예상되고 있어 관련 제품 및 기술을 공급하는 국내 기업의 영국 진출 기회 또한 열려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외국인 대상 비자 정책 강화 기조는 유지되는 한편, 노동당 정부에서 피고용인을 보호하고 권리를 증진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한국 진출 기업의 인사관리가 까다로워 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 정부가 비자 신청 비용 인상 및 비자 취득 소득 기준 인상 등 까다로운 현행 비자 정책을 유지함에 따라, 기존 진출 기업의 한국인 인재 채용에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출처: 노동당 Manifesto, 영국 정부 웹사이트, 영국 통계청(ONS), 한국은행 보고서, 국내외 언론 매체 등 KOTRA 런던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