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IT 강국, 루마니아

김병수 Micmarket 대표

루마니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회색빛의 오래된 건물과 정돈되지 않은 거리 풍경에 루마니아의 현 경제수준을 쉽게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곳곳에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HP 등 글로벌 IT 그룹의 빛나는 빌딩을 보면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러한 묘한 대조에 당황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석유화학산업과 자동차산업의 해외 매각으로 뚜렷한 성장 동력이 없는 루마니아에 IT는 효자산업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루마니아는 IT 전문가에 대한 소득세 감면과 글로벌 IT 기업의 유치로 정보 기술(IT) 분야의 인프라를 잘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양질의 IT 기술 인력과 세계 5위권의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유럽의 IT 강국이 되었다. 특히 소프트웨어(SW) 분야는 유럽의 허브가 될 정도로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알약의 엔진인 비트디펜더로 대변되는 루마니아의 보안 솔루션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지난 10년간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인텔, IBM 등 최소 50개의 해외 IT 기업이 루마니아에 진출했고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IT 센터를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블룸버그, 포브스 등 유명 매체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최고 IT 기업도 루마니아 IT 인프라의 우수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을 정도로 루마니아는 IT 분야에서는 매력적인 국가다.

루마니아 IT 인프라의 강점은 외국어에 능통하고 기술력이 뛰어난 저임금의 SW 개발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루마니아는 인도와 많은 비교가 되고 있으며 SW 분야의 대표적인 아웃소싱 국가로 발전했다.

루마니아의 실업률은 7%대이지만 IT 분야의 실업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루마니아 전체 근로자 평균 임금(약 350유로)의 4배에 달하는 임금 수준으로 최고 인기 직업이라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이지만 매년 충분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고 해외 취업 또한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루마니아 청소년의 희망 직업은 상대적으로 임금도 적고 업무의 강도가 높은 의사, 변호사, 공무원보다 잘만 하면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IT 전문가로 몰리고 있다.

루마니아의 IT가 국가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불법 복제와 악성 해킹이라는 두 단어가 존재한다. 루마니아 IT 성장의 원동력은 불법 복제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에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불법 복제물에 대한 단속이나 제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불법 복제물을 통해 양성된 프로그래머는 해커가 되어 세계 각국의 핵심 전산망을 공격하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유명 사건 중 세계 주요 보안 업체를 무력화시킨 해커 ‘우누’뿐만 아니라 부시 일가의 이메일 해킹, 영국 해군 서버 다운, 미국 펜타곤과 NASA 해킹 사건 등에 다수의 루마니아 해커가 연루되어 있었다. 2006년, BBC는 루마니아 해커가 많은 이유는 해외 취업을 위한 목적이 크다는 뉴스를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보다 국가의 지원도 늘어나고 임금도 5배 이상 상승했지만, 현재도 정보 판매를 통한 수익과 해외 취업이 해커의 주요 목적이다.

최근 들어 루마니아의 SW 개발자와 취업 준비생이 더 높은 임금과 함께 행복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서유럽이나 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해외진출 기업에 국가의 지원이 집중되어 제2의 구글과 야후를 꿈꾸는 벤처 창업은 멀게만 느껴지는 시스템의 문제도 크다. 세계의 IT 전문가는 루마니아에 벤처 창업이 활성화되면 더욱 무서운 국가가 되겠지만, 현재의 시스템이 지속되면 언젠가 루마니아의 IT 인프라는 큰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IT 강국으로서 루마니아의 행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