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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함이 사라진 실리콘밸리, AI 스타트업 현장의 고강도 업무 문화
- 트렌드
- 미국
- 실리콘밸리무역관 이지현
- 2026-02-09
- 출처 : KO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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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경쟁 압력,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을 재편하는 중
현지 AI 스타트업과의 협업에서 빠른 판단과 대응 속도에 대한 기대치 차이를 고려해야
금요일 저녁,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무실은 더 이상 시끌벅적하지 않다. 팬데믹 이전까지 스타트업 사무실을 상징하던 맥주 탭과 캐주얼한 분위기의 네트워킹 파티는 사라졌다. 대신 밤 9시를 넘어도 꺼지지 않는 사무실 불이 일상이 됐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분위기 전환이 아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Work hard, play hard”로 대표되던 스타트업 문화가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자유로운 복장, 유연 근무, 사내 파티가 혁신 문화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내느냐가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바로 ‘996’이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를 뜻하는 이 용어는 원래 중국 IT 업계에서 사용되던 표현이지만, 최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현장을 설명하는 용어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공식적인 근무 규칙으로 명시되지는 않더라도, 밤과 주말까지 이어지는 업무 몰입이 사실상 기본값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를 뒷받침하듯, Forbes는 2026년 1월 보도에서 “실리콘밸리에서 ‘Work hard, play hard’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play 없는 work’가 남았다”고 평가했다. 화려한 복지나 조직 문화보다, 극단적인 속도와 집중력이 요구되는 환경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AI를 둘러싼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강도 높은 업무 분위기를 표현하는 ‘996’ 문화가 실리콘밸리에 등장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기사들>

[자료: NPR, Forbes]
왜 다시 ‘하드 워크’인가? AI 경쟁이 만든 시간 압박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중심으로 한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사업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짧은 시간 단위로 재편되고 있다. 기술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시장 선점 여부가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 스타트업에게 시간은 곧 자본이다. 대규모 연산 비용과 인프라 투자 부담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일정 시점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제시하지 못하면 추가 투자 유치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포브스는 다수의 창업자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짧아진 성과 검증 주기가 조직 전체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AI 기술의 특성 또한 업무 강도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AI 모델의 성능이 개선되려면 실험과 조정을 반복해야 하고, 경쟁사의 업데이트 속도를 지속적으로 따라잡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WIRED는 최근 보도에서 “현재의 AI 경쟁은 누가 더 오래 준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게 실험을 반복하고 결과를 시장에 반영하느냐의 싸움”이라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개발과 검증, 배포 주기는 자연스럽게 촘촘해지고, 업무 집중도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투자 환경 변화도 이러한 흐름을 가속하고 있다. 2022년 3월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고금리 환경이 장기간 유지되면서, 벤처캐피털은 기술 가능성만으로는 투자를 결정하지 않고, 실제 매출이나 고객 확보, 기술 적용 사례를 빠르게 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 내부에서는 제한된 자원과 시간 안에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특정 프로젝트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이는 곧 조직 운영 전반에서 몰입과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하는 배경이 됐다.
속도와 몰입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는 실리콘밸리 AI 스타트업의 현장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벤처캐피탈 기업 A사의 한 심사역은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이 지역 초기단계의 AI 스타트업들이 근래 들어 근무 시간 자체를 세밀하게 관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 대신 업무 일정과 목표를 결과 중심으로 설정하며 개인별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주 70~80시간 수준의 업무가 더 이상 이례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업무 강도가 가장 높아지는 시점은 모델 업데이트나 외부 공개 일정이 잡혔을 때다. 생성형 AI 스타트업의 경우 모델 성능 조정과 검증이 짧은 주기로 반복되므로, 낮에 수정한 내용을 밤에 다시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다음 날 바로 반영하는 식으로 일정이 촘촘하게 이어지다 보니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일상이라는 것이다.
채용 과정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에 기반한 AI 스타트업 Corgi Insurance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Y Combinator 출신 기업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보험 인수와 운영 전반을 자동화하는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이 기업의 업무 문화는 채용 공고에 제시된 인재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Corgi Insurance는 링크드인과 공식 채용 페이지에서 “move fast and own outcomes(빠르게 움직이고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높은 자율성과 실행력을 갖춘 인재를 찾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기업이 근무 시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원자가 빠른 의사결정과 결과 중심의 업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빠르게 움직이는 인재상을 원하는 실리콘밸리 한 스타트업 기업의 채용공고>

[자료: Corgi Insurance]
성과인가 소모인가, 실리콘밸리 내부의 시선은?
AI 경쟁 속에서 고강도 업무가 확산되는 현상에 대해 실리콘밸리 내부의 시선은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빠른 실행과 몰입이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장시간 몰입이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성과 중심의 해석은 AI 경쟁 환경을 근거로 한다.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선점 효과가 큰 현재의 시장 구조에서 단기간에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시각에서는 현재의 업무 강도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고, 장기적인 문화로 고착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Financial Times는 2026년 1월 기사에서 실리콘밸리 일부 AI 스타트업 엔지니어들이 36시간 이상 연속 근무한 사례를 온라인에 공유하는 모습을 소개하며, 전문가 의견을 인용해서 과로가 생산성 향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업계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유사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링크드인에서는 일부 AI 스타트업이 중국식 ‘996’에 가까운 근무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 다수 언급되며, 업무 시간이 길어지는 것과 실제 성과 사이의 관계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의견이 공유되고 있다. 무조건적인 장시간 근무가 조직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AI 경쟁이 이어지는 한 이러한 논쟁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점
AI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거나 실리콘밸리 AI 스타트업과 협업을 추진할 경우, 업무 속도와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기대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현지의 AI 스타트업들은 짧은 주기로 결과를 확인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데 익숙해, 협업 상대에게도 비교적 빠른 피드백과 판단을 전제로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관찰되는 고강도 업무 환경은 AI 산업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단순히 조직 문화의 차이로 보거나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현지 파트너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어떤 방식의 의사결정을 기대하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접근이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자사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협업 방식과 역할 분담을 설계하는 것이, 미국 시장 진출이나 현지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보다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료: Forbes, NPR, WIRED, Financial Times, Linkedin, Corgi Insurance, Y combinator,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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