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타트업 시장 동향

러시아 연방 차원의 스타트업 규모에 대한 공식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주요 혁신 거점인 모스크바시의 경우 최근 3년간 약 1만 5000개의 스타트업이 새로 설립된 것으로 파악된다. 모스크바시 혁신청은 현재 모스크바 내 스타트업 수를 약 5만 6000개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평균 업력은 4.6년, 인력은 17명 수준이다.

러시아 스타트업 생태계는 국제 제재와 거시경제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2024년 들어 안정적인 수익이 기대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AI, 제약, 로봇공학, 의료기술, 에너지, 정보 보안 등 국가 전략과 연계된 산업이 최근 유망 분야이며, 현실적인 수요, 투자자 관심도, 산업 트렌드와의 부합 여부 등이 투자 판단의 핵심으로 꼽힌다.

<2019~2024년 러시아 벤처 캐피탈 투자 규모>

(단위: US$ 백만)

[자료: Kommersant.ru, Moscow Innovation Agency]

2024년 기준 러시아 벤처 캐피탈 시장 규모는 약 1억7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46% 증가하며 2년간의 침체기를 벗어났다. 다만 2021년 정점이었던 26억1600만 달러와 비교하면 여전히 15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투자 금액은 증가했으나 거래 건수는 전년 대비 14% 감소한 165건에 머물렀다. 업계는 러시아 벤처투자 시장의 본격적인 회복 시점을 2027년 이후로 보고 있으며, 이는 전체 거시경제의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분야별로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가 총 14건(약 1845만 달러)으로 가장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이어 소비재·서비스 분야는 9건(총 1621만 달러)을 기록했으며, 특히 데이팅 앱 Twinby는 2024년 말 기준 48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투자 방향

2025년 러시아 스타트업 시장은 AI, 로봇기술, 정보보안 등 기술 집약적 분야에 대한 투자 집중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Softline Venture Partners에 따르면, AI 기반 솔루션은 기업의 효율성 개선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투자자들 역시 수익성과 적용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 또한 산업 전략과 연계한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2025~2027년 산업용 로봇 산업 발전 전략에 따라 최대 530억 루블 규모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며, 산업용 로봇 9만 4000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로봇 부품과 제어 소프트웨어 분야 스타트업의 투자 매력도도 상승 중이다.

시장 분석기관 Dsight는 의료, 산업 자동화, 인사관리(HR), 관광 분야의 AI 솔루션이 중장기적으로 높은 수요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기술 스타트업 중에서도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과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춘 프로젝트가 투자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이버보안 분야도 빠르게 부상 중이다. 러시아 보안기업 Solar가 운영하는 창업 프로그램 CyberStage에 따르면, 정보보안 스타트업의 시장 점유율은 최근 2년간 1.5배 확대돼 전체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중소형 프로젝트 수는 전년 대비 8% 증가했으며, 신규 보안 벤더의 성장률은 기존 상위 30대 기업 대비 2~3배에 이른다. 관련 시장은 2027년까지 연평균 2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러시아 IT 스타트업 성공사례>

* 환율: USD 1 = RUB 80(루블) 기준

[자료: Skolkovo resident, CyberStage Matrix, Spark-Interfax]

최근 러시아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대규모 투자 유치와 인수합병(M&A)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IT, 헬스케어, 핀테크 분야의 기업들은 매출 성장과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높은 시장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표 사례인 Beri Zaryad는 도심 내 보조배터리 대여 인프라를 구축하고 모바일 앱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한 기업으로, 2024년 12월 Yandex에 인수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24년 기준 매출은 4453만 달러, 직원 수는 213명에 달한다.

보안 솔루션 전문 스타트업 Securitm은 러시아 디지털개발부(MinCifra)의 공식 인증을 받은 기업으로, 스콜코보 혁신센터 입주사이기도 하다. 보안통제, 자산관리, 자동화 기능을 통합한 플랫폼을 제공하며, 정부 인증과 생태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빠르게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의료기기 기반 스타트업 Neiry, 헬스케어 플랫폼 Zdorovie.ru, 산업설비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Pragmacore 등도 분야별 매출 성장과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유망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러시아 내 스타트업 수요가 단순한 기술력보다는 실질적 수익 구조와 시장성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며, 정부 정책, 인프라, 대기업 협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시사한다.

스타트업 지원기관: 스콜코보 혁신센터

스콜코보 혁신센터(Skolkovo Innovation Center)는 모스크바 외곽 남서쪽에 위치한 러시아 대표 과학기술 복합단지로, 첨단 R&D와 신기술 창출을 지원하는 전략적 플랫폼이다. 스타트업과 기술기업을 위한 생태계를 조성해 연구 성과의 상용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러시아 경제 현대화의 리트머스 시험지'라 불리며 국가 차원의 기술혁신을 이끄는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센터 입주 기업은 사무공간 및 인프라 지원 외에도 R&D 단계별 재정 지원, 컨설팅, 맞춤형 액셀러레이션, 멘토링, 투자 연계 등 종합적인 성장을 지원받는다. 실험실, 프로토타입 제작소, 인증 서비스 등 원스톱 인프라도 갖춰 기술 창업 허브로서 역할을 수행 중이다.

한편, 스콜코보 외에도 러시아 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다양한 국가 기관들이 협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기술이니셔티브(NTI)는 유망 기술 분야의 로드맵 수립과 기술 실증, 법제 개선을 지원하며, 스타트업의 조기 시장 안착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등 국영 투자기관은 민간 펀드 및 외국 투자자와의 공동 출자를 통해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대한 자본 공급을 강화하고 있다.

<스콜코보 혁신센터 전경>

[자료: mos.ru]

스콜코보는 과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와도 활발히 교류했다. 2017년 한국 스타트업 4개사를 대상으로 소프트랜딩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2019년에는 한국 지자체·공공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공동 연구 추진과 의향서를 체결했다. 2020년 7월에는 양국 기관 간 협업으로 온·오프라인 비즈니스 미션이 개최돼 스콜코보 소속 스타트업들이 기술 피칭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8월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며 양국 간 스타트업 교류는 사실상 중단됐으며, 향후 협력 재개 여부는 제재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스콜코보 혁신센터의 최근 활동

2024년 스콜코보 입주기업들의 총 매출은 7043억 루블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이 중 77%가 실질 매출을 기록했으며, 특히 생명공학·의료기술 분야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2025년 기준 입주 기업 수는 약 5000개사이며, 이 중 산업기술 및 제조 분야에 특화된 기업이 약 2000개사, 디지털·IT분야 약 2000개사, 바이오·의료 분야 약 800개사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2024년 11월에는 스타트업의 초기 연구개발과 상용화를 지원하는 보조금(Microgrant)제도가 도입됐다. 해당 제도는 최대 150만 루블까지 지원하며, 사후 정산·선급 지급·협력업체 계좌 이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이 지원된다.

현재 스콜코보는 Startup Village, INNOPROM 등 대형 전시회와 기술 컨퍼런스를 중심으로 자국 기술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BRICS, SCO(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 및 기타 우호국과의 기술 파트너십 확대를 통해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2025년 5월 스콜코보 혁신센터에서 개최된 스타트업 컨퍼런스 Startup Village에는 30개국에서 스타트업 약 100개사가 참가했으며, 중국·인도 외에도 MENA(중동·북아프리카 국가) 및 동남아 시장과의 기술협력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STARTUP VILLAGE 2025 배너>

[자료: Startup village 공식 홈페이지]

시사점

러시아 스타트업 시장은 2024년 이후 구조적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경기 불확실성과 국제 제재로 위축됐던 투자 환경은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시장 구조는 내수 중심, 그리고 산업 전략 분야 중심의 자본 집약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단기 수익성보다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과 정책 연계성을 중시하는 투자 기조가 확산되면서, 기술력뿐 아니라 실질 수요와 상업화 가능성이 뚜렷한 스타트업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사이버보안, 의료기술, 산업용 소프트웨어 및 로봇 부품과 같은 기술 집약형 분야가 투자 우선순위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들 산업은 러시아 정부의 수입대체 전략 및 기술 자립 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이러한 러시아 스타트업 생태계의 변화는 투자 유망분야 파악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 정부가 생산 현지화와 러시아 기업과의 합작을 강조하는 가운데, 전략산업 분야 스타트업과의 기술협력, 공동사업, 연구개발 등 다양한 협력모델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대외환경 변화에 대비해 장기적 관점에서의 진출 전략을 사전에 수립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료: Kommersant, Tass, rb.ru, forbes.ru, atlanty.ru, sberbusiness, cyberstage.ru, 스콜코보 혁신센터 및 스타트업 빌리지 홈페이지, KOTRA 모스크바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