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디지털 루블 도입법 발효 및 디지털 루블 시범 운영 개시

2023년 7월 24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디지털 루블 도입법’으로 불리는 ‘러시아 연방 특정법(은행 및 은행 활동법) 개정안’(연방법 No.340)에 서명하였으며 법안은 8월 1일부 발효됐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020년 디지털 루블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2021년 12월부터 디지털 루블 플랫폼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2022년부터 2023년 2월까지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올해는 디지털 루블 도입법을 제정하고 동 법안을 기반으로 하여 8월부터 디지털 루블 시범 운영(파일럿 테스트)을 진행 중이다.

시범 운영에는 11개 도시의 30개 법인과 600명의 시민, 13개 은행(VTB, Alfa-bank, Dom.RF, Ingosstrakh-bank, Gazprombank, Qiwi-bank, Ak Bars, MTS Bank, Promsvyazbank, Sovcombank, Sinara Bank, Rosbank, TKB)이 참여하며 2023년 8월 15일부터 디지털 루블을 사용한 실제 거래를 시작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시범 운영은 2024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며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완벽하게 작동할 경우 2025~2027년경부터 디지털 루블 시스템을 정식 도입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디지털 루블이란

디지털 루블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전자적 형태라는 점에서는 가상 자산(암호화폐)과 같지만 민간이 발행하고 익명성과 탈중앙화를 주요 특성으로 하며 법정화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가상 자산과는 달리 국가(중앙은행)가 발행, 관리, 통제하며 법정 화폐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디지털 루블은 암호 화폐의 확장을 막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러시아 전역에서 모든 시민이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고 빠르고 편리하며 저렴하게 결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8월 중앙은행이 발표한 디지털 루블 로고 >

[자료: 러시아 중앙은행]

러 중앙은행은 디지털 루블을 현금, 비현금(은행 계좌, 카드에 있는 돈)에 이어 전자 코드(토큰) 형식의 러시아 루블화의 세 번째 형태로 정의하며 세 형태 간 수수료 없이 1:1 비율로 교환이 가능하다.

디지털 루블 시스템에는 크게 3개 주체인 플랫폼 운영자(중앙은행), 플랫폼 참여자(타은행), 플랫폼 사용자(시민, 법인 등)가 참여한다. 플랫폼 운영자가 디지털 루블을 발행하고 이를 플랫폼 참여자에게 전송하면 플랫폼 참여자는 플랫폼 사용자에게 디지털 루블을 제공, 유통하며 이는 플랫폼 사용자의 중앙은행 내 전자 지갑에 저장된다. 인터넷, 모바일앱 등을 통해 전자 지갑에 접근, 자금을 관리할 수 있다.

현재 디지털 루블로 한 달에 30만 루블(약 3170 달러) 한도로 전환이 가능하며 한도는 향후 더 상향될 전망이다. 개인의 경우 디지털 루블을 활용한 결제 및 송금 시 수수료가 없으며 기업의 경우 디지털 루블로 상품 및 서비스 제공 대가를 받는 경우 전체 결제 금액의 0.3%(단, 1만5000루블 이하)를 수수료로 지불한다. 법인간 송금 수수료는 건당 15루블이다. 디지털 루블로 대출은 불가하며 잔액에 대한 이자나 사용에 따른 캐시백 제공도 없다.

러 중앙은행과 언론,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디지털 루블의 주요 장점은 아래와 같다.

< 디지털 루블의 장점 >

[자료: RIA NOVOSTI, 러 중앙은행]

디지털 루블 도입에 따른 주체별 영향 전망

1) 개인

현재 러시아 소매 결제에서 비현금 결제의 비중은 80% 이상으로 디지털 루블 사용이 활성화될 경우, 이 비중이 디지털 루블 결제로 분산될 것이다. 기존 비현금 결제와 마찬가지로 상품 또는 서비스 결제 시 QR코드를 스캔하거나 휴대폰을 단말기에 갖다 대면 된다. 디지털 루블에 대한 안전성을 중앙은행이 책임지기 때문에 은행의 파산 또는 면허 취소에 따른 자금 손실 가능성이 낮다. 송금 수수료가 없어져 거래 비용이 줄어드나 대신 현재 기준으론 이자나 캐시백 서비스를 받을 수 없을 전망이다.

한편, 개인별로 전자 지갑이 발급·관리되기 때문에 모든 디지털 루블에 대한 이전 보유자데이터가 저장돼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얼마를, 무엇을 위해 지불했는지 추적할 수 있으므로 사기 등 금융 범죄 가능성이 낮아진다. 하지만 이에 따른 국가 통제 및 감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 기업

현재 카드 등 비현금 결제 시 기업이 납부하는 수수료는 0.4%~2.5%에 달하며, 디지털 루블 활용 시 수수료가 0.3%로 감소하기 때문에 연간 최소 800억 루블(약 8억4000만 달러)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낮아진 수수료로 고객에게 더 유리한 가격으로 제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며 디지털 루블 결제 유도를 위해 무료 배송 등 기타 혜택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향후에는 기존보다 더욱 안전한 거래 계약(스마트 계약) 및 송금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루블 시스템 내 스마트 계약 및 결제 기능이 구축될 경우 계약의 설정된 조건이 충족되면 결제가 자동으로 이뤄지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과 자동차를 구매할 때 소유권 등록 시점에 판매자의 계좌에 돈이 도착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으며 이는 에스크로 계좌 시스템과 유사하나 더 빠르고 유연한 절차 진행이 가능해진다.

3) 시중은행

수수료 수입 손실뿐만 아니라 잔액에 대한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계좌에서 디지털 루블로의 자금 유출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약 9조 루블(약 950억 달러)이 은행 계좌에서 디지털 루블로 유입될 수 있으며 연간 약 500억 루블(약 5억3000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은행에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예금 자금이 디지털 루블로 급격히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루블 월별 전환 가능 한도, 은행 예금 이자 이점 등으로 디지털 루블 시장의 급격한 확대가 이뤄지긴 어렵다는 시선도 있다.

국가 간 거래에서의 활용 가능성

디지털 화폐는 빠르고 편리하며 신뢰할 수 있는 국경 간 결제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금융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지난 1월 러시아 중앙은행은 국제 결제를 위한 두 가지 모델을 제시했는데 첫 번째 모델은 각국이 보유한 자국 디지털 화폐 플랫폼을 연결하는 것이며 두 번째 모델은 국가 간 단일 플랫폼을 개발·운영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두 가지 모델 모두 유망하며 두 가지 모델 모두를 검토,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디지털 루블을 사용한 국가 간 결제는 디지털 화폐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우호국과 우선 추진될 것으로 전망되며 가능 후보로는 교역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 등이 있다. 이들 세 개 국가는 디지털 화폐를 도입했거나 테스트 중에 있다. 아울러 전 세계 약 60개국이 디지털 화폐를 도입했거나 개발 중에 있어 향후 더 많은 국가와의 거래에서 디지털 화폐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디지털 화폐 자체가 국가 간 결제 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디지털 화폐는 양국 통화간 유동성 부족 등의 단점을 해결하지 못하며 국가 간 근본적인 경제 관계에도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시사점

이번 러시아 디지털 루블 도입법 제정과 디지털 루블 시범 운영 개시로 향후 디지털 루블 정식 운영에 한걸음 더 가까워졌으나 기술적인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디지털 루블이 무엇인지, 어떤 이점이 있는지 일반 대중과 기업에 홍보를 강화하고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7월 중소기업 대표 125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66%의 응답자가 디지털 루블의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4월 시민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8%가 디지털 루블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025년까지 참여 은행과 고객 수를 확대할 계획이며 무리한 정식 운영 개시보다는 국민과 기업이 디지털 루블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따라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향후 3년여 기간 동안 러시아의 디지털 루블 개발 및 운영 동향에 귀추가 주목된다.

자료: 러시아 중앙은행, 크렘린 홈페이지, RIA NOVOSTI, Kommersant, Forbes, RBC, KOTRA 블라디보스톡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