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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프랑스에서는 "내 집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 외부전문가 기고
  • 프랑스
  • 파리무역관 김희경
  • 2014-12-12
  • 출처 : KOTRA

 

프랑스에서는 "내 집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정아 Auchan France

 

 

 

프랑스가 공공장소 및 실내 금연을 법적으로 금한 건 2007년부터이다. 이것은 가정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소유주의 허락없이 흡연을 할 경우 대략 60유로(10만 원 상당)의 벌금을 내게 돼있다. 법으로 금연이기 전부터 프랑스인은 우리집에 오면 반드시 '나 담배펴도 될까?' 하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 친절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일 경우, 그러니까 내가 흡연자의 집으로 갔을 때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내가 비흡연자라고 해서 나에게 '나 담배 좀 필게. 그래도 되지?'라고 묻지 않는다. 내가 설령 초대된 손님이라 할 지라도 결단코 나에게 excuse를 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프랑스인의 뿌리 깊은 이 마인드 때문이다.

 

'Je fais ce que je veux chez moi'

직역을 하면 '내 집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이다.

 

처음 불어를 배울 때는 저 문장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려나 싶었다. 얼핏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이것은 한국과 프랑스의 확연한 문화차이, 사고 방식의 차이를 말한다. 물론 나는 한참 후에야 깨달았지만....

 

일례로, 프랑스인과 결혼한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다. 하루는 온 가족이 시댁에 가서 밥을 먹는데 프랑스인 시어머니가 식사 후 본인 접시를 자기 개에게 주어 핥아먹게 했단다. 그걸 보고 경악을 금치못한 이 분은 시어머니에게 '비위생적이다. 그러지 마라' 라고 했고 프랑스 시어머니는 '우리집에서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건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했단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도 '그릇은 나중에 깨끗하게 닦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되묻자 이 아주머니는 '개랑 사람이랑 어떻게 같은 접시를 쓰냐'며 역정을 내셨다. 별 거 아닌 일로 왜 화를 내실까 싶었지만 몇 년 후 나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면서 위 사례가 단순히 위생 문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전 우리 부부는 도련님 댁에 초대돼 2박 3일 일정으로 Angers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도련님은 대학생이었고 혼자 스튜디오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참고로 나는 프랑스인과 결혼했다.) 그의 작은 스튜디오는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바닥에는 벗어놓은 양말과 속옷, 겉옷이 먼지와 섞여 나뒹굴고 있었고 주방에는 음식 찌꺼기가 말라붙은 식기로 가득차 불쾌한 냄새를 내고 있었다. 욕실 세면대는 면도 크림과 깎은 수염이 엉켜 꽤 오랜 시간 고착돼 있었다. 마땅히 앉을 곳도 없는 이 곳에 들어서면서 덧창을 열고 환기부터 시키고 싶었지만 우리집이 아니란 생각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 순간 왜 우리를 초대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순진하게도 내가 뭘 잘못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일단 우리는 이불을 대충 걷어내고 쇼파에 셋이 나란히 앉았다. 도련님은 컴퓨터를 TV 모니터를 연결한 후 지금까지 본인이 소장하게 된 음악과 영화, 다양한 유틸리티를 하나씩 클릭해 보여주며 남편과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장작 다섯시간 정도가 흘렀다. 그러다 갑자기 도련님이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입을 대고 마신 후 우리에게 그 물을 권했다. 맙소사..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나는 마치 고문 당하는 것 같았다. 그의 수다에 당연히 나는 끼어들 틈도 능력도 없었고 나를 배려한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이 무심한 프랑스인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이럴 거면 남편만 초대하지 왜 나까지 불렀냔 말이다.

 

저녁은 피자를 배달시켜 먹었고 이 후 새벽 1시까지 비속어가 난무하는 Dieudonné의 쇼를 보았다. 외국인인 나는 알아듣기 힘든 개그쇼여서 잠을 일찍 청하고 싶었지만 이들의 웃음소리와 이불에서 나는 꿉꿉한 냄새 때문에 눈만 질끈 감고 있었다. 다음 날도 변한건 없었다. 6월의 아름다운 Angers 시내를 거닐고 싶었지만 이 두 남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도련님은 아침을 안 먹는다고 해서 건너뛰고 점심땐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었다. 도련님이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간 사이 나는 남편을 설득시켜 바닥에 널린 옷을 치우고 먼지를 쓸어 모아 버린 후 간단히 설거지도 해 놓았다. 얼마 안 있어 도련님은 돌아왔고 정리된 방을 보더니 '이럴 필요까진 없는데 뭐 고마워'라고 말하곤 다시 그들만의 컴퓨터 서핑이 시작됐다.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영화 한 편 봐도 될까?'하고 조용히 물었다. 그제서야 컴퓨터를 TV 모니터에서 분리시켜 그들은 컴퓨터를 하고 나는 DVD 한편을 보게 됐다.

 

문제는 바로 이 때 발생했다. 영화에 도저히 몰입할 수 없을 정도로 컴퓨터에서 나는 음악소리와 그들의 수다 소리에는 손톱만큼의 배려란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불쾌지수는 포화상태가 돼갔다. 뒤늦게 나를 의식한 도련님은 '혹시 우리가 방해돼?'라고 물었고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자 도련님은 자리를 박차며 '그럼 내가 우리집에 있으면서 내 맘대로 하지도 못하냐?' 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집을 나가버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남편에게 '내가 뭐 잘 못 말했어?'라고 물었다. 남편이 대답할려는 찰나에 도련님은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화가 잔뜩 났는지 숨이 고르지 않았다. 저렇게 화낼거면 방해되냐고 왜 물어본 것이지? 라는 생각과 이틀 동안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던 내 처지가 한탄스러워 속에 있던 말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 30여 분 동안 도련님과 나는 다퉜고 끝내 그가 한다는 말이 '그래 이제 조금 널 이해하겠어. 하지만 난 잘못한 것 없어'라고 건조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고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쇼파에 앉아 컴퓨터를 하는 것이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남편에게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하고 나와서는 후미진 골목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뒤따라 나온 남편은 한참 동안 나를 다독여 주었다. 내가 조금 진정되자 남편은 자상한 목소리로 어쩌면 우리는 그의 생활방식을 존중해 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해 주었다. 이어서 남편은 '물론 그의 생활방식에는 타인에 대한 눈꼽만치의 배려도 없고 지저분하며 우리와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존중하는 데에 있어 특별한 조건과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삶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 존중되야 한다. 우리가 그를 존중했다면 우리가 초대받았다고 할지언정 우리에 대한 배려가 결여됐다고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도 말해주었다. 남편의 말이 다 맞는데도 나는 타인의 대한 배려와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고 동시에 남편과 도련님은 왜 이렇게도 다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남편은 친동생네 집에 있으면서도 목이 마르다고 냉장고 문을 마음대로 연 적도 없으며 동생의 물건이 어지럽게 놓여있어도 치운다거나 함부로 손대지 않았으며 배가 고파도 먼저 밥 먹자고  말하지 않고 '너는 보통 몇 시에 저녁 먹냐'고 우회적으로 물을 뿐이었다. 내가 배운 것, 아는 것만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참으로 수용하기 힘든 마인드 'Je fais ce que je veux chez moi'이다.

 

(esra21c@hotmail.com)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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