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신애 이탈리아 프리랜서 주얼리 디자이너

이탈리아에서 학업과 취업

저는 이탈리아에서 프리랜서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채신애라고 합니다. 이탈리아는 한국에서도 명품의 나라로 유명하고 Made in Italy는 높은 품질과 멋진 디자인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명품시장을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저는 2010년 초, 단순히 이탈리아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이탈리아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6개월의 짧은 언어 코스를 밟은 뒤, 2010년에서 2012년까지 IED(Istituto Europeo di Design)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하였고 이곳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하기 위한 세분화된 전문 지식(보석학/ 세공/ 주얼리 제작과정 학습)과 디자인을 표현하기 위한 핸드/디지털 렌더링(포토샵/일러스트/라이노 체로스)기술들을 배웠습니다.

IED 시절  학생작/ Object, Sapore rosso collection

2012년 IED 졸업 후에 Reminiscence paris라는 작은 프랑스 패션 주얼리 회사와 7개월의 인턴을 마쳐갈 때쯤 이후 패션 주얼리에서 일하고 싶은지, 아니면 하이 주얼리와 같은 럭셔리 주얼리 쪽을 더 공부할지 고민하던 하던 찰나 2014년, 리치몬트 그룹에서 운영하는 Creative Academy라는 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Creative Academy는 매해 20명의 학생을 선출하여 소수정예로 코스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였고 포트폴리오 심사/ 인터뷰를 거쳐 학생들을 선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IED에서 학습했던 것들이 Creative Academy를 지원할 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운이 좋게도 20명 중 1명의 학생으로 선정되어 코스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Creative Academy는 리치몬트 그룹 내에서 세운 디자인 마스터 코스 과정으로, 학생들에게 럭셔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워크샵·전람회 견학·장인공방 방문 등 럭셔리 제품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홍보되는지 등의 경험을 제공하였습니다. 코스의 10개월의 교육과정 중 7개월은 리치몬트 그룹 내의 럭셔리 메죵(maison)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주었고 이 프로젝트 과정 안에선 각 브랜드의 마케팅팀, 디자이너팀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아가며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과정 마지막 3개월은 저의 꿈의 회사였던 리치몬트 그룹내의 브랜드인 카르티에(Cartier)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카르티에의 파리 디자인 스튜디오 팀에서 실무 경험을 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작지만 몇 가지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면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배워나갔습니다. 카르티에에서는 새로운 제품을 제작하기에 앞서 마케팅 팀으로부터 디자인 브리프(정보)를 세밀하게 전달받았고 디자이너들은 마케팅팀에서 준 브리프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발전시켰습니다. 특별한 점은 모든 디자이너들이 파이널 디자인을 위해 하이주얼리의 전통 재료인, 과슈라는 물감으로 채색 마무리를 하여 작업을 완성하였습니다. (과슈 컬러링은 특별히 프랑스 파인주얼리, 하이주얼리 회사들이 요구하는 작업) 그렇게 디자인팀, 제품개발팀, 홍보팀들은 각자 맡은 영역에서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는데에 매우 분업화되고 체계적인 환경에서 작업하였습니다.

값진 3개월의 카르티에에서의 인턴 경험 후, 저는 밀라노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새로운 회사를 찾던 중에 IED 시절 한 교수님께서 저를 이탈리아 명품 주얼리 브랜드인 Damiani(다미아니)에 추천해 주셔서 다미아니와의 면접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2015년 7월 다미아니와 첫 계약을 시작으로 6년 조금 넘은 시간을 다미아니의 exclusive(독점적인)디자이너로서 일하며 다미아니의 컬렉션 디자인, VVIP 고객들을 위한 스페셜 오더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이탈리아 주얼리 기업 Damiani에서 근무하며

이탈리아 회사들은 프랑스와 조금 다른 경영환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르티에에서 근무한 지는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정확한 비교를 하긴 어렵겠지만 카르티에는 각자의 역할에서 역할분담이 매우 확실했고 조직화 되었기에 저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어가 불편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기업인 다미아니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발렌차라는 도시에서 가족기업으로 시작한 다미아니는 현재도 모든 주얼리 생산공정을 발렌차(Valenza)에 있는 다미아니 자체 공장에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다미아니는 가족 기업이다보니 대형 프랑스 브랜드에 비해 유연하고 열린 환경 속에서, 더 직접적으로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자 가족인 부회장 조르조 다미아니씨는 제품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셨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주얼리로 본 기업문화

안타깝게도 최근 프랑스의 명품시장이 자본을 무기로 많은 이탈리아 브랜드를 인수하였습니다. 이탈리아 유력 브랜드 중 하나였던 Buccellati도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되는 등 프랑스의 거대 명품 자본의 이탈리아 진출은 활발한 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프랑스 명품 그룹들이 이탈리아의 특유의 창의성과 장인정신의 가치를 알고 있으며 이탈리아 브랜드의 정체성 보존을 위해 디자인, 생산 과정, 현지 공장 등을 인정해 기존의 업무 환경을 유지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주얼리 브랜드들은 Made in Italy라는 일반 시장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제품을 출시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주얼리 회사들에 비해 제작 속도가 빠르며 대체로 신속하게 시장환경에 대처하는 편입니다. 여러 나라 부티크에서 오는 피드백을 적절히 수용하여 어느 특정 국가의 고객들이 특별히 요구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들의 기호의 맞게, 그러나 브랜드의 DNA를 유지하는 선에서 시장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비교적 생산하기도 합니다.

디자인, 주얼리 업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디자인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첫째로, 업무에 문제없는 의사소통 언어 능력입니다. 유럽의 주요 패션회사들은 영어로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주얼리 회사들은 패션회사들에 비해 더 보수적인 부분이 있고 특히 언어에 있어서 해당 국가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르티에에서도 언어로 인해 업무의 제한은 분명 있었으며, 이탈리아에서 근무한 다미아니도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하면 디자인 회의 참여가 어려운 환경임은 분명했습니다. 주얼리 제품 제작 및 디자인 특성상 기획에서 디자인, 제작에 이르기까지 아이디어를 일관되게 공유해야 하는 점이 있다 보니 언어능력은 늘 중요했습니다.

둘째로, 프레젠테이션 능력입니다. 이탈리아는 얼마나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하고 그것을 통해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이는 실제 업무환경에서도 회사 팀원들이나 클라이언트들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디자인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스토리텔링 할 수 있고, 또한 당신이 받은 브리프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을 언어적인 방법과 비언어적인 방법을 총 동원해 보여주세요. 

마지막으로, 본인의 디자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성 있고 상황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주세요. 특별히 주얼리 업계는 훌륭한 핸드 드로잉 스킬을 선호하니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여주세요. 그럼 이 글이 이탈리아 디자인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과 소비재 및 명품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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