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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불가리아 시장개척 도전기

  • 외부전문가 기고
  • 불가리아
  • 소피아무역관 정순혁
  • 2013-12-18

 

불가리아 시장 개척 도전기

Choice 사장 박종태

 

 

 

1. 출장에서 만난 1990년대의 불가리아

 

내가 낯선 땅 불가리아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중 첫 출장을 가게 됐는데 그 나라가 바로 불가리아였다. 당시 불가리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개방이 막 시작됐을 무렵이라 사회 전체가 혼란을 겪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생필품이 부족했다. 과거 사회주의 시절에는 국가가 무역과 유통을 관장하고, 모든 상점의 물품공급이나 유통을 국가가 했는데 체제가 바뀌면서 심각한 물자공급난이 시작됐다. 거리의 상점들은 물건을 공급받지 못해서 텅텅 비어있었고, 사람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난리였다. 언제, 어떤 물건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사람들은 항상 비닐봉지(비상용 쇼핑백)를 들고 다녔다. 그렇게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상점 앞에 사람들 줄이 서 있으면 뭔가 살 물건이 있다는 얘기니까 무조건 뒤따라 줄을 서는 상황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물자가 필요한 시장이었기 때문에 지금 한국에 넘쳐나는 물건들을 가져다가 팔면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출장을 끝내고 10월 초에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사표를 내고, 11월에 바로 회사를 차리고 불가리아로 떠났다. 당시 내가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은 600만 원이 전부였다. 한국에서 살던 집 전세금을 뺀 돈이었다. 그 돈으로는 일단 자동차를 샀고, 물건은 한국에 있던 친구가 공급해주었다. 초반에는 식료품, 유아용품, 장남감, 카세트 테이프, 신발, 문구류 등등 다양한 물건을 취급했다. 그러다 시장 상황이나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차차 집중할 품목을 정해나가시 시작했다.

 

그때 내가 팔았던 여러 품목들 중에 비전이 있다고 생각한 게 바로 라면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후 식량문제가 심각했던 1960년대에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준 고마운 식품이 바로 라면이었다. 문제는 당시 불가리아에서 라면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라면의 꼬불꼬불한 면발을 보고 벌레같다고 질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게다가 유럽에는 뜨거운 국물이 있는 요리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들이 먹는 스프나 스튜는 따뜻하거나 미지근한 수준. 그런 사람들에게 뜨거운 국물에 둥둥 떠 있는 전혀 생소한 음식을 소개하려니 뭔가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유명한 호텔에서 5성급 호텔 셰프들을 초청해서 라면 시식회를 열었다.

 

소고기, 닭고기, 야채, 커리 등 6가지 맛의 라면을 준비했고, 따뜻한 국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끓여서 식힌 면에 토마토 소스나 치즈를 얹은 라면도 따로 준비했다. 매운 맛도 거의 없앴다. 드디어 시식이 시작됐다. 한 셰프가 뚱한 표정으로 면발을 쥐똥만큼 자르더니 국물에 살짝 담갔다가 입에 쏙 넣었다. 저래서는 라면의 참맛을 알 수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셰프의 표정이 달라졌다. 맛이 괜찮았는지 이번에는 스파게티 먹듯 면발을 포크로 돌돌돌 말아서 먹었고, 다른 셰프들도 따라서 먹기 시작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셰프들은 입 모아서 '레스노! 꾸스노! 브루조!' 라고 말했다. 간편하고 맛있고 빠르다는 뜻이었다. 지금이야 라면 시식회라는 게 이야깃거리도 안 되지만 그때는 불가리아가 뉴스에 목말랐을 때라 다행히 관심을 가졌고 신문 라디오 국영 TV에서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를 하면서 뉴스에 라면을 알리기 시작했다.

 

2. 위기를 넘다

 

그렇게 차차 라면을 알려 나가면서 대박은 아니지만 꾸준히 상승곡선을 보이면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사업을 다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은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바로 사람들 때문이었다. 동양에서 온 서른 갓 넘은 젊은 사장을 직원들이 무시하기 시작했다. 외상거래처에서 공금횡령을 한다거나 창고에서 물건을 훔쳐가거나 중간에서 거래처를 빼가는 일들까지… 여러가지 일들을 계속 겪으면서 점점 지쳤고, 영어를 잘해서 뽑은 회계사는 알고 보니 알코올중독자여서 나중에는 권총으로 나를 협박하기까지 했다. 결국 문제를 일으킨 직원들은 다 내보내고 여직원 한명이 남았는데 그 직원이 나에게 많이 위로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양말 컨테이너가 와서 하역작업을 하는데, 우연히 지나다가 여직원이 가방에다가 양말을 넣는 장면을 보게 됐고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 믿었던 사람마저 그러는 모습을 보고나니 더 이상 이 나라에서는 회사를 운영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말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가 1994년 11월이었는데, 마지막 라면 컨테이너가 들어왔다는 연락이 왔다. 보통은 인부들이 하역작업을 하는 건데 마지막이니까 그냥 나 혼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조명도 없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다 보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졌고 거의 작업이 끝나갈 무렵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험도 없이 외국에서 사업을 벌일만큼 과감하게 도전한 내가 이 정도 위기를 견디지 못하다니… 지금이 다 포기하고 돌아갈 만큼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음날 다시 정신차리고 직원들을 새로 뽑고 일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불가리아 사회가 혼란기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니라 허술한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과 다르게 관리체계를 확실하게 재정비했고, 직원들과의 유대관계에 신경을 쓰고 그들을 존중한다는 마음을 자꾸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3. 불가리아의 라면왕이 되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라면 시장도 넓혀나갔다. 지금은 불가리아에서 라면은 인기 식품이 됐고, 라면이 불가리아 모든 식품 매장의 90% 이상 들어서 유럽을 비롯해 세계 2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현재, 영국, 프랑스, 이태리에 합자 유통법인을 세우고 서유럽 유통시장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고, 터키, 중국, 미국에 현지 유통법인을 현지 파트너와 함께 설립하는 중이다. 내가 처음 불가리아에 갔을 때를 생각하면 나는 자본도 없었고, 불가리아라는 낯선 시장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도전했고, 지금도 도전하고 있다. 흔히 라면은 중독성이 있는 맛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도전의 맛도 라면처럼 비슷한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있다면 행동하고 도전해 도전의 참맛을 즐기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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