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진 법무법인(유) 율촌 러시아 변호사(ejcho@yulchon.com)

러시아 사법제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서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일반 민사, 노무, 형사 문제를 다루는 법원과 상사 분쟁을 다루는 법원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상사 분쟁을 심리하기 위한 독립적 법원인 중재법원(арбитражный суд)을 두고 있으며, 연혁적으로 구소련에서 국영기업 간의 경제 분쟁을 처리했던 준사법기관인 국가 중재에 근거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 법원의 명칭은 보통 ‘중재법원’으로 직역되지만,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중재인에 의해서 중재되는 국제중재원과는 달리 상사 분쟁에 대한 관할권을 갖고 있는 러시아 특별 법원이므로 ‘상사법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1992년 러시아 연방 중재(상사)소송법이 제정되면서 국가 중재제도가 폐지되었고, 기존의 중재 권한이 중재(상사)법원으로 이관됨에 따라 1993년 러시아 연방 헌법상 중재(상사)법원은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이처럼 별도의 상사법원을 설치한 것은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도입에 따른 경제 분쟁의 증가와 일반 법원의 전문성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중재법원에서 심리되는 사건에는 러시아연방 중재소송법 제95-FZ호(2002.07.24.제정, 2022.12.05.개정)(이하 “중재소송법”)이 적용된다.

가. 관할

중재(상사)법원은 기업 활동 또는 기타 경제활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부분의 소송을 심리하고 있다. 

민사, 가사, 노무, 주택, 토지, 환경 등에 대한 분쟁[1]을 심리하는 일반법원과 달리 중재(상사)법원은 (i) 법인과 법인 간, (ii) 개인사업자 간, (iii) 외국 또는 러시아 기업 및 개인사업자 간에 발생하는 상업적인 분쟁[2]을 전담하여 심리한다.

나. 심급제도 

러시아 사법체계는 4심제로 원고심(1심), 항소심(2심), 상고심(3심), 감독심(4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1심은 한 명의 판사에 의해 단독심으로 진행되며, 항소심 및 상고심, 감독심은 3명 또는 홀수 구성의 판사가 합의심에 따라 심리하며[3], 합의심으로 사건을 심리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판사의 과반수로 의결한다[4].

러시아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는 원심 결정을 검토하는데, 상고심은 항소심과 달리 사건의 신규 정황을 고려하지 않고 사법행위의 적법성을 확인한다. 즉, 상고법원은 1심이나 2심에서 확정, 결정 또는 기각된 바 없는 사실 관계를 심리하거나, 증거의 증거력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다.[5]

항소심과 상고심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Ø  항소심 – 기존 및 추가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법적 효력이 발생되기 전인 원심 결정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확인하는 절차 

Ø  상고심 – 법적 효력이 발생한 원심 및 항소심 결정의 적법성을 확인하는 절차

중재소송법에 따라 1심 중재법원에서 발급하여 발효된 명령, 1심 중재법원 판결이 항소중재법원 심리 대상이거나 항소심 중재법원이 항소기간 복원을 기각한 경우의 1심 중재법원 판결, 항소심 중재법원 결정은 상고 절차에 따라 이의제기될 수 있다.[6]

상소제도를 3심까지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러시아법은 상고심 재판에 대하여 감독심으로서 러시아연방 최고 재판소(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부여하고 있다.

최고 상고심인 감독심은 2단계로 구성된다: 
(i) 연방최고법원 합의부(Judicial Collegium of the Supreme Court of the Russian Federation)
(ii) 연방대법원 의장단(Presidium of the Supreme Court of the Russian Federation)[7]

상고심 법원의 판결이 실체법 또는 절차법을 중대하게 위반하여 결론에 영향을 미친 경우 상고심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 합의부에 상소할 수 있으며[8], 대법원 합의부의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 대법원 합의부 판결일로부터 3개월 이내 대법원 의장단에 불복할 수 있다[9]. 그러나 실무상 실제 의장단에서의 심리가 허용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법원 의장단 심리 신청은 다음의 경우에만 가능하다[10]:

Ø  대법원 합의부 판결이 연방 헌법, 국제 규범, 국제조약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Ø  대법원 합의부 판결이 불특정 다수 또는 공중의 이익을 해하는 경우; 및

Ø  대법원 합의부 판결이 기존 법원 판례 해석의 통일성을 해하는 경우.

심급별 중재법원의 명칭이 상이하며, 1심을 어디서 심리하였는지에 따라 항소, 상고를 제기할 수 있는 법원이 정해져 있다.

심급별 중재법원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Ø  1심 법원 – 러시아연방주체(공화국, 지방(край), 주, 연방시, 자치주, 자치구) 중재법원(예시, 모스크바주/모스크바시/상트페테르부르크시/연해주 중재(상사)법원)

Ø  2심 법원 – 항소중재법원(예시, 제9항소법원, 제10항소법원, 제13항소법원, 제15항소법원)

Ø  3심 법원 – 연방관구 중재법원(예시, 모스크바관구법원)

Ø  4심 법원 – 대법원

다. 심리제도

소장은 원고가 직접 서면으로 법원에 제출하거나 연방상사법원 사이트[11]를 통하여 전자 형태로 제출할 수 있다[12].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면 법원에서 송달을 실시하는 우리나라 제도와 달리 러시아는 소장 및 소장에 첨부한 서류를 피고와 소송 참가자에게 등기 우편으로 송달할 의무를 원고에게 부여한다[13]. 즉, 원고는 소장 및 관련 서류를 피고에게 송달한 후 송달에 대한 증빙 자료를 소장에 첨부하여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14].

이와 더불어, 소장 제출 시 인지세 납부 영수증도 첨부하여야 한다. 인지세는 소가를 기준으로 산정되며[15], 200만 루블을 초과하는 소가에 대한 인지세는 20만 루블로 상한 조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법으로 최대 인지세가 정해져 있다 보니 러시아 기업들은 국내 기업들과 달리 소 제기에 비교적 거부감이 없다.

법원에 소장이 접수되면 접수일로부터 5일 이내 판사 단독으로 소장을 수리하여 소송 절차를 진행할지 여부를 결정한다[16]. 실무상 3일 이내 재판부 배당이 진행된다. 소장이 수리되면 법원은 별론 준비 절차를 진행하며, 별론 준비 절차에서는 사건의 성격과 쟁점을 정리하고, 당사자의 범위 및 증거 조사 방법 등에 대하여 정한다[17]. 준비 절차가 마무리되면 변론 준비 기일을 지정하며[18], 변론 준비 기일이 종료되면 법원은 결정문을 통해 본 변론의 진행을 선언하고 변론 기일이 지정된다[19]. 실무상 준비/변론 기일 지정까지 대략 1~2개월이 소요된다.

중재법원의 심리기간은 통상적으로 아래와 같으나, 특정사건의 경우 심리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Ø  1심 심리기간 - 6개월(러시아 중재소송법 제152조 제1항);

Ø  항소심 심리기간 - 2개월(러시아 중재소송법 제267조 제1항);

Ø  상고심 심리기간 - 2개월(러시아 중재소송법 제285조 제1항); 및

Ø  감독심 심리기간 - 2개월(러시아 중재소송법 제308.5조 제1항).

각 심급별 불복기간은 아래와 같다:

Ø  항소 기간 – 판결일로부터 1개월(러시아 중재소송법 제259조 제1항);

Ø  상고 기간 – 판결일로부터 2개월(러시아 중재소송법 제276조 제1항); 및

Ø  최종 상고 기간 – 판결일로부터 3개월(러시아 중재소송법 제308.1조 제4항).

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원고는 법원에 집행문 발급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집행문이 발급되면 원고는 연방 사법집행부 집행문에 따른 법원 판결 집행 신청을 할 수 있다. 효력이 발생한 판결문에 대한 강제집행 제도는 있으나,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법원의 직권이나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임시로 강제집행(가집행)을 행하는 제도가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러시아에는 이러한 가집행 제도가 없다.

1심 중재법원의 판결에 대한 항소가 없을 경우 1심 법원 판결일로부터 1개월 경과 후 집행이 가능하며[20], 집행 가능 기간은 판결의 효력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로 제한[21]되어 있으므로 해당 기간 이내 집행 신청을 해야 한다. 1심 법원 판결에 대한 항소가 제기될 경우 1심 판결에 대한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2심 판결의 효력이 발생하면 상고 중이라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집행이 가능하나, 상급심에서 판결이 파기되었을 때 기집행한 금액을 반환 받기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사정에 대하여 집행을 당할 채무자가 소명하는 경우에는 해당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22].

최근 정치적 및 외교적 이슈로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심리기간이 짧아 소송이 신속히 판결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잦은 기일 연기로 소송이 몇 년 동안 진행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소송 과정에서 보전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법인 운영에 직격탄을 받을 수도 있다. 아울러, 판사마다 추가로 요청하는 사항들이 다르기 때문에 사건에 따라 소요되는 기간이 상이하며, 이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소가 제기될 경우 가능한 모든 사건 관련 증거 및 증인을 확보해야 하며, 전문가와의 자문을 통하여 소송 전략, 서면 및 서증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