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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현대자동차와 미쓰비시자동차
  • 외부전문가 기고
  • 일본
  • 나고야무역관 유예진
  • 2014-09-30
  • 출처 : KOTRA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경제관계 시리즈 1)

 

현대자동차와 미쓰비시자동차

     

아이치대학 경제학부 이태왕 교수

(itwang@vega.aichi-u.ac.jp)

 

 

기업 간의 국제제휴는 외교관계와 마찬가지로 빈틈없는 이해타산은 물론이거니와 지도자, 즉 최고경영자의 개인적인 속성이 비즈니스에 반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고에서는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그룹이 세계 5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약진하는데 기술적인 토대를 제공했던 미쓰비시 자동차(이하, 미쓰비시 차)의 의사결정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3년 9월 20일, 미쓰비시 차는 현대차와 엔진, 트랜스미션, 엑슬 제조에 관한 기술지원계약을 체결했다. 당시의 미쓰비시 차의 위상은 도요타와 닛산에 비할 정도는 못 됐지만 1967년에 설립돼 포드차를 단순 조립하던 ‘왕초보’ 현대차와는 천양지차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현재, 미쓰비시 차는 세계 순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엔진 등 주요기간 부품을 신흥국 등에 공급하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미쓰비시 그룹으로서는 약100년 전 1918년에 '미쓰비시A형 승용차'를 제조한 바가 있고 이는 도요타 그룹이 1935년에 'A1형 승용차'를 선보인 것과 비교해도 기술적 수준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에 즈음해 1973년에 현대차의 기술지원 요구에 응하게 된 배경과 1998년 무렵부터 현대차가 과거의 '갑과 을'의 관계를 청산(역전)시킬 수 있었던 경위에 대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1970년 4월 미쓰비시 중공업은 자동차사업부를 미쓰비시 차로 분리시키고 해외 판매망을 확보하기 위해 이듬해 9월 크라이슬러와 15% 지분을 받아들여 합작에 들어갔다. 미쓰비시 그룹의 자동차사업 해외진출은 전후(戰後) 1952년에 미쓰비시일본중공업에서 제조한 버스 5대를 태국에 수출하고 대형트럭 1대를 아르헨티나에 수출한 것이 시초였다. 또한, 승용차 부문에서는 1960년 ‘미쓰비시500’을 국내출시와 동시에 수출을 개시했다. 도요타가 최초의 대중승용차 코로라를 출시한 때는 1966년이었는데, 같은 해에 미쓰비시 중공업은 태국에 중형트럭 조립공장을 합작으로 건설했다. 이를 계기로 미쓰비시 차의 해외진출의 기틀이 마련된 셈이었다.

 

당시 한국은 1969년과 1970년에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잇따라 개통되면서 장거리수송 수요가 급증하자, 미쓰비시 버스 187대를 전격 수입했다. 이 수입을 계기로 엔진 내구성이 뛰어난 미쓰비시 차에 대한 국내의 인식이 높아지게 된다. 이는 곧 현대차가 필요로 하던 미쓰비시와의 기술지원 계약의 전격 성사로 이어지게 된다.

 

현대건설은 1972년 12월 가와사키 중공업과 《설계도면공급 및 기술지원 계약》을 체결해 가와사키 중공업, 가와사키 기선과 긴밀한 협조관계로 들어갔다. 사실 현대건설은 1969년 1월부터 미쓰비시 중공업과 조선소 건설에 관한 합작회사 설립을 협의 중에 있었으나 당시 일본 통산성의 반대와 미쓰비시와의 규모를 둘러싼 알력으로 인해 조선소 건설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현대건설 측에서는 지체 없이 기술 제휴 선을 영국 등 유럽으로 바꾸고 1972년 10월에 울산조선소 초대사장으로 덴마크 인을 영입했다. 이에 당황한 미쓰비시 차는 1973년 9월 20일 현대차와의 협상테이블에 앉게 된다.

 

그렇다면 현대차와 미쓰비시 차의 협력관계에 대한 미쓰비시 차 측의 입장에 대해 알아보자. 1993년 판 '미쓰비시자동차 사' 416 쪽을 인용한다.

     

  (전략) 한국 현대자동차와 지금과 같은 깊은 인연의 토대가 된 기술원조계약을 체결한 것이 1973년이었다. ...(중략)... 정주영씨가 관심을 둔 것은, ...(중략)... 일본의 자동차공업을 뒷받침하고 있는 기술이었으며, 생산 노하우였다. 그 가운데 당시 현대그룹이 지향하고 있었던 다각적인 중공업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길러진 미쓰비시 자동차의 기술적인 특성에 친근감과 신뢰를 보여 왔다. 당시 구보 토미오 사장도, '성숙된 기술은 적극적으로 해외에 이전하고 원조하자'는 기본이념을 가지고 이에 화답했다.

     

여기서 '깊은 인연', '다각적인 중공업 기업', 그리고 '성숙된 기술은 적극적으로 해외에 이전하고 원조하자'는 3가지 문구는 바꿔 말하면 (1)최고경영자 사이의 우정, (2)대규모 중공업 비즈니스에 관한 공감, (3)미쓰비시 차의 해외진출전략 등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상기의'성숙된 기술'은 최신기술을 제외시킨 범주였음) 현대차는 기술 자립을 위해 미쓰비시 차와의 계약성사에 와신상담의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성공리에 계약을 성사시켰다.

 

미쓰비시의 구보 회장과 현대의 정주영 회장, 두 명의 각국 산업계 거물이 현대차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구상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 결과로서 돌이켜 볼 때, 두 사람은 일본과 한국 양국의 자동차 산업의 전망에 대해 복잡한 심경으로 계약에 임했을 것이며 과학적 추산이 불가능한 영역에서는 인간적인 배려와 용기로써 일본과 한국의 벽을 허물었음이 분명하다.

 

이 사례에서 보듯, 한국 제조업의 운명은 스스로를 미래의 '갑'으로 설정할 줄 아는 전략적 혜안에서 이미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차와 미쓰비시 차의 생산 판매 추이

주1: 본고는 愛知大学経済学会 Discussion Paper No.15 (2014년 7월)의 내용을 근간으로 해 재구성했음.

주2: 저자 프로필

1982. 2  경북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1995. 3  오사카시립대학교 경제학과 석사 및 박사과정 수료

1994. 9~2000. 3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실 수석연구원 및 삼성중공업/삼성상용차 인사팀 근무

2000. 4~2014. 9  아이치대학교(愛知大學) 경제학부 전임강사, 조교수, 교수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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