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사이트맵


Book Mark
[전문가 기고] 아프리카에서 에이전트를 무작정 믿지 마세요
  • 외부전문가 기고
  • 김주영
  • 2014-03-25
  • 출처 : KOTRA

 

아프리카에서 에이전트를 무작정 믿지 마세요

 

GS건설 해외플랜트 김용빈 부장

 

 

 

최근 한국이 유럽연합(EU)으로부터 예비 불법조업(IUU: Illegal, Unreported, Unregulated) 국가로 지정됐다. 최종 IUU 국가로 지정될 경우 유럽과 수산물 수출입은 물론 EU 국가와의 어선거래가 모두 금지된다. 주된 이유는 한국 정부가 어선위치추적장치 의무화를 이행하지 않고 어선 경로를 감시하는 조업감시센터를 가동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직접적인 단초는 EU가 한국 어선들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어획한다고 파악한 것이었다. 지난 1월 미국 상무부 산하 해양대기청(NOAA)으로부터는 아예 예비지정 절차도 없이 바로 불법 조업국 지정이 되기도 했다.

 

 

이 사단은 2013년 초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국내 D기업을 불법조업으로 해양자원을 고갈시키는 주범인 것처럼 몰아붙이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2013년 4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발표한 ‘한국원양어선의 불법조업(IUU)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1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8개 한국업체 소속 선박들이 34건의 불법조업을 하다 적발됐다. 불법조업의 3분의 2가량인 22건이 한국과 어업협정조차 맺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부 태평양 섬나라 등에서 발생했다.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해역에서는 D기업, S기업, I기업 등 15개 한국원양업체 소속 원양어선 30여 척이 불법조업 혐의로 적발됐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라이베리아는 2012년 12월 D기업의 참치 어선 2척이 자국 수역에서 위조어업권으로 조업했다며 한국 외교부를 통해 해양수산부에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하여 D기업은 지난 2013년 2월 ‘D산업의 조업활동엔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라이베리아 수산청 직원 명의의 공문을 받아 우리 해양수산부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우리 외교부가 해명하자 라이베리아 정부가 그 공문은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I기업 등 다른 한국 원양어선 5척도 같은 수역에서 위조된 어업권을 사용했다가 적발됐다. 한국 내 굴지의 기업인 D기업이 외국공문을 위조했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일종의 미스터리로 다루었다.

 

이 문제에 대해 국제기구 등에서 제기하는 이슈는 국제규범의 준수, 자원의 지속가능한 개발, 현지법 준수 외에도 우리 국적 조업선에 승선한 현지인들이 처한 취약한 노동환경 등 여러 가지가 중첩되어 있다. 필자가 거기까지 논의할 자격은 없으나, 아프리카 비즈니스에서 벌어진 사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다른 분야에도 필요한 교훈을 얻어볼까 한다. 물론, 사건의 이면에 대한 것은 당사자들이 직접 밝히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것이니만치, ‘최선의 추정’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2012년 말 라이베리아 정부가 우리나라에 처음 불법조업을 통보했을 당시 우리나라 어선들만 적발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결국 우리나라만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그간의 라이베리아 상황을 돌아보건대, 아마도 라이베리아 해역에 입어한 기업들은 국적과 관계없이 현지에서 유력한 특정 에이전트를 통해서 어획쿼터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내부적인 문제로 그 에이전트가 ‘무력화’되고, 그를 통해 발급받은 어획쿼터 역시 무효한 것으로 ‘선언’되었을 것이다. 그러자 스페인을 위시한 유럽 기업들은 재빨리 다시 돈을 내고 새 어획쿼터를 받아 조업을 이어갔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예전의 에이전트에게 해명과 원상복구를 요구했던 것 같다. 압박을 이기지 못한 에이전트가 모종의 공문서를 ‘만들어’ 주었고, 이를 믿은 D기업과 우리 정부는 그 공문서를 라이베리아 정부에 해명차 보냈다가, 상대방 국가의 공문을 위조했다는 기상천외한 오명을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런 추정을 하는 걸까?

 

라이베리아는 최근 10년 동안 정치적으로 급변을 겪었다. 2003년 찰스 테일러라는 최악의 독재자를 축출했고, 2006년에는 엘런 존슨 설리프라는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맞아 부패척결과 거버넌스 확립에 노력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 측근의 부패 문제나 다른 정치적 이슈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과거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취해서 사람들의 손목을 뚝뚝 잘라대던 그런 미치광이 정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다.

 

찰스 테일러 前대통령과 엘런 존슨 설리프 現대통령

 

 

D기업을 비롯한 한국 원양어업 기업들은 미친 정권들 통치 기간에 라이베리아 해역에 진입했다. 국민을 협박하고 약탈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그랬는지 우리나라와 기본적인 어업협정조차 체결되지 않은 상태다. 어떤 나라든 조업을 하려면 우선 국가 간 어업협정이 체결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이 업체들이 개별적으로 어획쿼터를 사서 ‘불안한’ 조업을 해왔다. 바다에서 조업선이 잡은 참치를 바로 운반선에 옮겨 실어 제3국으로 수출하기 때문에 육지의 정세변화 따위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기업들이 바다에서 열심히 참치를 잡던 사이, 육지에 새로 들어선 설리프 정권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첫걸음으로 정부 개혁에 착수했다. 설리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는 하지만 일 처리는 매우 강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부 인원감축을 지시했는데 공무원들이 말을 듣지 않자 경찰을 이끌고 몸소 정부청사에 들어가서 감축인원 수만큼 책상을 들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거버넌스 개선의 여파가 어느덧 수산청에도 들이닥쳤을 테고, 어수선한 틈에 많은 돈을 챙겨왔던 어획쿼터 책임자 (자신이거나 그와 협조하는 에이전트)는 밥줄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발행한 어획쿼터가 무효로 선언되었고, 에이전트가 합법적으로 발급받은 어획쿼터 이상으로 ‘복제생산’한 불법 쿼터가 있었다면 역시 무효화되었을 것이다.

 

기껏 돈 내고 받은 어획쿼터가 갑자기 무효라는 통보를 받았다면, 그때라도 앞뒤 상황을 면밀히 알아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불법조업이라는 비난과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얼토당토않은 오해를 사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이 케이스는 투자자산과 관련 없는 ‘입어권’이라는 일종의 ‘면허’에만 국한되어 있지만, 만약, 광물자원 개발처럼 대규모 투자자산을 장기간 운용하는 사업에 유사한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기업들은 신흥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현지 에이전트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지 법과 제도 자체가 미비한 면이 많기도 하지만, 일일이 조사하고 맞추어 나가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한방에’ 모면할 길을 찾게 된다. 우리 과거상을 떠올리면서 유력한 현지인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 잘 모르는 땅에서 맞닥트리는 힘들고 더럽고 귀찮은 일을 누군가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나쁘지 않으니까. 일단 이런 관행에 길이 들면, 본격적으로 현지 사업을 전개하며 지사까지 설립한 이후에도 계속 에이전트에게 기대는 경우도 많다.

 

에이전트는 보통 현지 ‘마당발’을 소개받아 선임한다. 해당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이기도 하고, 퇴직 공무원일 수도 있다. 또한, 에이전트가 인허가 기관 내부자이거나 그의 대리인인 경우도 있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언뜻 보면 직간접으로 공무원과 거래하니 부패를 조장한다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실제 현장에서 부딪혀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적자원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인데, 어떤 분야건 조금만 세부 분야로 들어가면 정말 깜깜할 정도다. 특히,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직 공무원은 해외유학도 하고 상대적으로 식견도 높은 반면에 민간기업에서 업무를 척척 해결할만한 실무자를 구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이 그 나라에서 유일한 전문가인 경우가 꽤 있다는 얘기다.

 

건설부에서 건축 인허가를 담당하는 과장이 자기가 허가를 내 줄 사업을 위해 인허가 신청서류를 직접 만들어 주는 것도 본 적이 있다. 본인이 신청기업 사무실에 앉아 신청서류를 만들고, 건설부에 있는 자기 사무실에 가져다가 접수 스탬프를 찍고 허가서를 만들어 서명까지 한다. 그리고 완성된 허가서를 신청기업에 가져다 주기까지 한다. 왜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지 물으니,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사례는 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기관 내부자가 에이전트를 하는 경우가 실제로 꽤 있다. 실무적으로 편하기도 하고, 왠지 속지는 않을 것 같은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에이전트 관련한 문제 중에 가장 복잡한 문제는 역시 전형적인 ‘본인-대리인(Principal -Agent)’ 문제다. 사업이 이상 없이 추진될 때는 아무런 문제점도 보이지 않지만, 추진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하거나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에이전트의 역할이 줄어들면 대리인의 이해관계가 본인과 달라질 수 있다. 에이전트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본인 이해에 반하는 짓을 하기도 한다. 이 본인-대리인 문제는 세계 어디서나 나타나는 문제이기는 한데, 아프리카처럼 정보가 부족한 곳, 의사결정과 비즈니스 과정이 불투명한 곳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의 인허가 과정에서 본인(회사의) 중대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었는데, 대리인은 자기 일(이자 곧 수입)이 끊길까 봐 ‘별 문제없다’고, ‘곧 인허가를 받는다’고 말하면서 차일피일 미룰 수 있다. 본인은 왜 지연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결격사유를 수정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사업기회 자체를 잃는 경우도 생긴다. 또,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에이전트가 자기 취향대로 본인을 골라잡으려는 일도 다반사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상황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불감증이다. 변화가 거시적일수록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지만, 아예 변화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무슨 일이 생기든 나하고는, 내 사업하고는 별로 관계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개발도상국일수록 정치와 경제, 제도와 현실이 더욱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최근에는 국내 정치적 변화, 제도 변경뿐 아니라 국제규범의 변화까지도 즉각적으로 기업활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본인이 할 수는 없고, 그래서는 에이전트 선임이 의미가 없다. 하지만 현지 의사결정권자와의 만남이나 중요한 서류의 원본 등은 꼭 본인이 챙겨야 후환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에이전트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일과 본인을 지원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주고, 에이전트가 사업상 정보와 인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작은 리스크에 대한 대처이다.

 

더욱 큰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진출한 혹은 진출하려는 국가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 분야만 잘 알면 된다거나 누구만 믿으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개발도상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아직 충분히 분화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정치적·사회적 변동이 경제활동에 직·간접으로 미치는 영향을 늘 느끼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앞에서 예로 든 D기업 문제는 결국 벌금 200만 달러를 납부하고 새로 어획쿼터를 신청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D기업은 현지 에이전시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라이베리아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무래도 D기업이 상장기업이다 보니 큰 금액의 벌금을 납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물어야 할 입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D기업은 이 사건으로 인해 직접적인 금전 피해만 입은 것이 아니다. 라이베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편의치적 나라라서 D기업이 해운사도 아닌데 선박 소재지를 속여서 외화소득을 해외로 숨겼다는 괜한 오해를 받았다. 이로 인해 본사가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또, 불법조업 회사의 대표격으로 낙인이 찍혀 그린피스 등으로부터 주된 표적이 되고 있다. 에이전트 선임, 관리에 방심한 대가치고는 과도한 대가를 치렀다고 할 수 있다.

 

자원개발 사업은 국가로부터 Concession을 받아야 하고, 불가피하게 환경에 영향을 미치며, 인명사고, 노조파업 등 위험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대규모 자본이 장기간 묶여있기도 하다. 그러니 어느 분야보다도 투자자로서 확신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면서 사업을 둘러싼 위험에 대해 통합적으로 올바른 관점을 갖는 것, 그것이야말로 확신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 원고는 해외자원개발협회 홍보지 "THE EMRD Vol.02"에 실린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 KOTRA & KOTRA 해외시장뉴스>

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KOTRA의 저작물인 ([전문가 기고] 아프리카에서 에이전트를 무작정 믿지 마세요 )의 경우 ‘공공누리 제4 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진, 이미지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

0
로그인 후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 입력
0 /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