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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터키,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인터뷰

  • 외부전문가 기고
  • 터키
  • 이스탄불무역관 김재우
  • 2013-12-16

 

터키,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인터뷰

 

터키 지역전문가 우리은행 과장 이정우

 

 

 

1. 무뚝뚝한 여인, 어색한 첫 대면

 

2013년 9월 27일 오후, 나는 풍문으로만 가득한 터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 소문의 진상은 바로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드러났다. 내 짐을 그 항공사가 싣지 않은 것이다. 나는 공항 도착 후 짐을 1시간 넘게 기다리고 항공사 수하물 클레임 사무실에 가서 짐이 분실된 거 같다고 말하고 관련 서류를 작성했다. 경유도 아닌 직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내게 처음 있는 일이라 많이 당황한 터에 제발 짐의 위치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그 여직원에게 애원했다. 그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알아보고 있으니 저기 뒤편 의자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렇게 두 시간을 기다렸다. 여기서 못 찾은 짐은 본인 잘못이 아니라는 듯 아마도 바르샤바에 있는 것 같다는 대답만을 연거푸 했다. 그리고 몇 번을 나와 눈을 마주치고 멋쩍다는 듯 자리를 비웠다. 낯설고 무뚝뚝한 여인 앞에서 한 동양 남자는 그냥 얼어버린 채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렇게 이 낯선 땅에서 나는 빈손과 지갑 속의 신용카드 몇 장으로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3일 뒤 나는 내 짐을 돌려받았고 그 동안 항공사의 누구에게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 항공사는 다름 아닌 터키항공이었다.

 

2. 엽기적인 그녀, 관광대국 vs 교통소국

 

터키는 역사학자 토인비가 "인류문명의 살아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고 격찬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은 관광대국이다. 하지만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나같은 출장자에게 터키 내에서 업무보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터키는 로마처럼 땅만 파면 유적 천지여서 다리, 도로 건설이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개발이 쉽지 않다. 우선 우리처럼 강북과 강남을 잇는 28개나 되는 한강대교들이 터키에서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2개뿐이다. 정체 시 1.7㎞의 다리만 건너는데 4시간까지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ℓ당 2800원을 오가는, 전 세계에서 기름이 가장 비싼 나라임에도 이스탄불의 좁은 도로 위는 항상 많은 차량으로 북적인다. 외국인이 운전대를 잡는게 녹록하지는 않다. 때문에 이 어려움 사이에서 고민하는 외국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택시기사들이 있다.

 

대학생 친구인 뮤랏은 만날 때마다 이스탄불에서 외국인이 절대 혼자 택시를 타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곤 했다. 하지만 업무차 방문한 일행에게 400년이 넘은 목욕탕 하맘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이스탄불 외곽으로 용기를 내 택시를 탄 적이 있다. 택시 기사 1호는 우리가 타자마자 미터기를 켜고 100m 전방에서 교묘하게 미터기를 껐다. 그 후 미터기에는 ‘150’ 란 숫자만 깜빡 깜빡하고 있다. 50리라(약 2만5000원) 정도까지는 충분히 양보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마음에 150미터기 숫자를 보면서 기사에게 왜 미터기를 껐냐고 물었다. 그 후 1호 기사는 오히려 우리에게 화를 내며 적당한 택시비를 요구할테니 가려면 가고 아니면 여기서 10리라를 내고 내리라고 했다. 우리는 10리라조차 낼 수 없다며 덩치 큰 기사와 큰 언성을 주고받은 후에 겨우 그 택시를 내렸다. 오기가 생긴 우리는 다른 택시를 세우고 차 밖에서 목적지까지 택시비를 흥정하며 승차를 했다. 그 후 2호 택시기사는 이 차는 회사 소속의 택시라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본인이 싼 가격에 이스탄불 투어를 책임지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우리는 흐느낌 섞인 애원의 목소리를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들어야 했다.

 

이스탄불에는 2만 대 이상의 택시가 있다. 이스탄불의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택시 권리금이 어마어마하게 올랐지만, 앞으로도 세 배 이상 오를 거라며 투자를 권유하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살아온 교민 한 분이 웃으며 터키어를 구사해도 가까운 거리를 삥 돌아가는 걸 이해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3. 진보적인 그녀: 유럽과 아시아, 진보와 보수, 아타튀르크와 에르도안

 

터키를 처음 접하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다. 한반도 면적의 3.5배에 해당하는 터키는 1.7㎞ 폭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지역과 나머지 아시아 지역으로 나누어 부른다는 사실이다. 유럽 지역은 현대적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갖춘 브레인 같은 곳이다. 터키 사람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잠을 자고 유럽에 일하러 간다고 말한다.

 

터키 친구 파트마가 소개와 함께 나에게 당황스러운 질문을 했다. 당신은 진보냐? 보수냐? 나는 어리둥절하며 머뭇거렸으나 공직에서 일하는 그는 자신있게 자신은 진보라고 대답했다. 더불어 터키에서의 진보는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가 펼쳤던 진보적인 정책과 정신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아카튀르크는 군인 출신으로 남녀 교육 실시, 여성 선거권 부여, 일부다처제 금지, 터키어의 아랍 문자 표기법 폐기로 집권 15년간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과 비견되는 터키공화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지난 5월 말에 일어났던 탁심광장 반정부 시위에서 보였던 터키 국기 속의 인물이 바로 아타튀르크 대통령이며 지금도 국경일이면 터키 아버지가 그려진 국기를 들고 탁심 광장에 모여들어 한국의 1980년대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인다. 그 지역이 바로 유럽 지역이며 터키인들에게는 자유의 상징이다. 단순화하기 어렵지만, 터키는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현대와 진보, 전통과 보수로 나뉜다. 유심히 보면 유럽에선 아타튀르크 전 대통령의 초상이 아시아에선 에르도안 현 총리의 초상이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나는 왜 터키의 많은 진보 청년들에게서 오래전 대학 시절 동경했던 운동권 선배 모습이 보일까? 자유의 상징인 유럽 지역이 터키 전체 땅덩어리의 3%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

 

4. 매력적인 여인, 유럽은 젊은 터키에 매료될 것이다.

 

30세 미만 인구가 절반에 달하는 젊은 나라 터키는 넓은 아시아를 밟고 서서 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터키의 젊은 노동력은 유럽을 동경한다. EU의 문을 두드리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이슬람제국에 대한 선천적 거부반응을 보이는 유럽이지만, 젊고 값싼 노동력이라는 탁월한 매력을 가진 터키를 마다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터키 무역적자와 터키 리라화의 불안을 터키의 위험요소로 많이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터키는 공화국 탄생 이래 계속 그래 왔다. 서유럽과 미국 자본에 잠식당한 동유럽과 달리 터키는 외국자본의 유입을 자국 제조업 보호와 발전에 적절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쉽게 말해 터키 어딜 가든 어떤 상품에도 터키 브랜드를 꼭 볼 수 있다. 터키의 화폐개혁은 전 세계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의 모범 사례로 꼽을 만큼 터키 정부는 통화관리에도 훌륭한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터키의 탁월한 지리적인 여건과 인구 구조적인 이점, 정부 특유의 아라비아 상술로 터키는 아주 매력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예상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5. 터키의 어머니, 20년 전 젊은 시절 나의 어머니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이스탄불 외곽에 사는 가족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주 전형적인 이스탄불 가정집이다. 친구 뮤랏에게 귀국하기 전에 집에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말을 그냥 편하게 했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나를 초대한 것이다. 그는 가는 길에 집이 누추하다며 계속 미안함을 표현했다. 뮤랏의 어머니는 내 신발을 손수 고이 받아주시고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귀한 터키 전통음식을 하나 둘 내어 오셨다. 영어를 못해 미안하다며 아들을 통해 터키어로 한 마디 한 마디씩 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 가족에 대해서 나의 나라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묻고 나는 성의껏 대답해드렸다. 찻잔이 비워질세라 얼른 채워주셨다. 음식 접시가 비워질세라 새 음식을 계속 가져다주셨다. 어머니는 머리를 단정히 빗어 올리시고 곱게 화장을 한 얼굴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바르게 앉아계신 채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잘 정리된 가족 사진첩을 보여주시며 뮤랏 가족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었다. 빛바랜 어린 뮤랏과 젊은 어머니 모습에서 어린 내 모습과 젊은 시절 내 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난 터키에서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사람 냄새가 나는 이 소박하고 조용한 동네에서 고요함과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터키의 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을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6. 터키, 이 아름다운 여인을 잊을 수 없다.

 

많은 한국 사람은 터키를 처음 접할 때 한국의 10~20년 전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물론 짧은 기간에 빠른 경제성장을 거둔 한국인의 정서상 터키 경제발전 정도가 한국보다 그 정도로 뒤처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탄불이 2000만 명 이상 시민이 거주하는 메머드급 국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공공행정의 단면을 보고 까다롭고 무뚝뚝한 모습으로, 교통시설 기반의 열악한 단편을 엽기적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큰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 터키인이 이 땅에서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으며 다른 한 편에서는 ‘한다면 한다’는 강력한 현 정권과 이 정권을 지지하는 기반들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가 터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런 복합적인 구조가 내부적으로는 새로움을 찾아가려는 강한 모습과 외부 주변국에 경제발전의 강한 의지를 가진 국가의 모습으로도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터키는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어서 행복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느낄 수 있는 시간과 행복감은 비례한다고 했다. 수천 년 된 유적과의 만남으로 오랜 과거와 조우하고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카파도키아 하늘에서의 짜릿함을 체험하게 된다. 이 모든 것 앞에 20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터키, 이 아름다운 여성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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