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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기고] 일과 삶의 ‘통합’까지 꿈꾸는 빅테크
  • 직원기고
  • 최익근
  • 2024-06-19
  • 출처 : KOTRA

김욱진 KOTRA 경제협력실 차장

기실현’과 ‘행복추구’를 구현할 수 있는 직장 … 앞으로 우리 화두 될 것

질문하는 사람에서 질문받는 사람이 되면 난감하다. 한국에 돌아오고 종종 강연에 나설 때가 있다. 소재는 실리콘밸리다. 주로 돈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유망한 기술이나 곧 떠오를 주식회사는 필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실리콘밸리가 형성된 배경, 창업가들이 품었던 마음, 기술기업이 꿈꾸는 세계에 대해 말한다.

원칙은 현지에서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실체를 담백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어설픈 과장과 안이한 감동은 금물이다. 3년이란 특정한 시간과 한정된 공간을 향유한 경험을 미국 전체로 일반화하려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된다. 달콤한 ‘기술 낙관주의’에 기대 실리콘밸리를 이상화하려는 유혹도 이겨내야 한다. 시각각 변하는 환경에서 이미 과거가 된 자신의 체험을 계속해서 상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연할 때마다 절감한다.

룰루레몬과 자포스의 사례가 의미하는 것

설명이 끝나고 질문을 받을 때면 긴장되면서도 커다란 환희를 느낀다. 얼마 전 빅테크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의 근무환경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마치고 받은 질문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물음을 던진 이는 사회초년생이었다.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워라밸로 일컫는 공과 사의 분리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회사와 자신을 분리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강연을 듣고 나니 실리콘밸리에서 일은 일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개체와 일에 몰입하려는 자아가 있다. 둘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다.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시각을 공유하지만 근거와 권위가 필요할 때는 책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궁리해 볼 만한 생각의 씨앗을 찾았다.

스웨덴 조직이론학자 ‘칼 세데르스트룀’의 ‘행복이라는 환상(The Happiness Fantasy)’은 현시대 자기계발의 허구를 다룬다. 1960년대 후반 전세계 젊은이들은 보전적인 가치관, 부의 축적, 지배와 폭력에 기초한 사회에 맞서서 다른 세상을 꿈꿨다. 지구를 바꾸려 들끓었던 청년들의 궁극적 목표이자 수단은 ‘자기실현’과 ‘행복추구’였다.

반세기가 넘게 지났다. 지금 나타난 현상은 이들의 의도와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대안적 이상(理想)으로 제시된 자기실현과 행복추구는 기업에 흡수되었고 자본의 일부가 되었다는 게 세데르스트룀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기업 사례로 두 개를 든다. 요가 의류를 만드는 ‘룰루레몬(lululemon)’과 신발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Zappos)’가 주인공이다.

2014년 4월, 영국언론 ‘이브닝 스탠더드’는 런던 코벤트가든에 매장을 연 룰루레몬을 취재했다. 인터뷰에 나선 룰루레몬 커뮤니티팀 리더 ‘아만다 카스가르’가 말한다. “우리에게는 매우 강력한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치에 기초한 회사입니다. 룰루레몬의 사명은 세계를 그저 그런 것(mediocrity)에서 위대함으로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룰루레몬에서 판매원의 공식 명칭은 ‘교육자(educator)’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은 교육자의 가르침을 받는 ‘손님(guest)’으로 불린다. 업무상 누군가를 만날 때 ‘미팅’이란 용어는 금기어다. 대신 ‘커넥트(connect)’란 단어를 쓴다. 룰루레몬이 정의한 커넥트의 목적은 ‘상대를 기쁘게 하고 놀라게 만드는 것’이다.

전직원이 10년짜리 목표를 세우고 공개하도록 장려한다는 이들이 내세우는 가치에는 품질 제품만 있는 게 아니다. 통합 균형 재미 위대함 창업가정신이 포함되어 있다. 이브닝 스탠더드가 룰루레몬을 취재하고 뽑은 헤드라인은 ‘영적 자본주의(Spiritual capitalism)?’였다. 물음표가 인상적이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 미국으로 가보자. 2015년 7월, 뉴욕타임스는 ‘자포스’의 라스베이거스 캠퍼스를 방문하고 기사를 낸다. 제목은 ‘자포스, 신발과 비전을 밀다(At Zappos, Pushing Shoes and a Vision)’였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겔레스’가 사무실을 묘사한다. “젊은 인력들이 과할 정도로 문신을 했다. 복장 규정은 공격적일 만큼 캐주얼하다. 사람 키 크기의 봉제 동물이 책상에 어수선하게 놓여있다. 소리 나는 조각품들도 벽면을 따라 줄지어 있다.”

자포스의 공동창업자 토니 셰이는 겔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한다. “많은 기업이 워라밸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일과 삶의 통합(work-life integration)을 추구합니다. 결국 이건 인생에 대한 문제니까요.”나아가 자포스는 자신들의 일터를 웹사이트에 이렇게 표현했다. “여러분 자신이 되어 재밌게 일하세요. 직장 밖에서뿐 아니라 안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세요. 여기서는 별난 기질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환상’에서 세데르스트룀은 자기실현과 행복추구는 미국에서 기업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발현했지만 지금은 기업에 완전히 흡수되었다고 판단한다. 그의 주장에 대부분 공감하지만 이를 경영전략이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만 해석하는 시각은 아쉬웠다.

구글이 환상적 공짜점심을 제공하는 이유

룰루레몬과 자포스처럼 많은 창업가들이 괴짜 같은 의사결정을 한다. 필자는 실리콘밸리 구글캠퍼스 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의아했다. 구글은 왜 최고급 음식을 직원과 방문인 모두에게 공짜로 주는가. 심지어 구글에서 근무하는 많은 이들은 저녁까지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간다고 했다. 2024년 기준, 전세계 직원이 18만명이 넘는다는 구글이 왜 그럴까. 단초는 구글이 초창기부터 구축하려고 했던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1999년, 구글 직원이 45명이던 시절이다.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주방장을 뽑기 위해 25명 이상 면접과 실기시험을 봤다. 퇴짜의 퇴짜 끝에 채용된 이가 훗날 구글의 비공식 문화부장관이라 불린 ‘찰리 아이어스’다. 아이어스는 구글의 56호 직원이다. 그가 입사하고 3년이 지나자 구글은 실리콘밸리에서 환상적인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기업으로 명성을 날린다.

구글 음식이 돈 내고 먹는 주변 식당보다 낫다는 소문이 베이 지역에 널리 퍼졌다. 구글이 왜 일하기 좋은지 묻는 설문조사에서 직원 열의 아홉이 음식을 꼽을 정도였다. 아이어스는 당시 자신의 사명을 정의했다. “매일 직원들이 일하러 오는 게 아니라 크루즈나 리조트에 와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구글이 이상주의에만 기댄 것은 아니다.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을 쓴 ‘조지 길더’는 “직원이 늘면서 구글도 음식값을 받기 위해 단말기 시스템을 구축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스템 자체를 유지하는 데 비용이 발생했다. 보이지 않는 대가도 치러야 했다.

구글은 소중한 자사 인력이 음식값을 지불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오히려 시간을 낭비한다고 봤다. 요금을 부과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포기할 때 카페테리아 운영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길더의 표현에 따르면 “공짜 점심은 더 싸고, 더 쉽고, 더 쿨하게 자본주의를 초월하는(trans-capitalistically cooler) 방식”이었다.

여러번 방문한 실리콘밸리 구글식당은 갈 때마다 붐볐다. 맛있는 음식은 줄도 길었다.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여전히 공짜점심이 더 효율적일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구글은 이 방식을 놓지 않고 있다. 배식을 기다리며 힌트를 얻었다.

창업가는 기업이 성장하며 이상에만 의지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렇다고 철저히 현실에만 기초해 조직을 탈바꿈할 수는 없다. 초기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 괴짜 같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기술기업이 역설적으로 반자본주의적 탈자본주의적 초자본주의적 양태를 보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터에서도 삶의 정수를 구현할 수 있어야

차고 스타트업에서 빅테크가 된 회사일수록 기업문화에서 창업가의 철학이 진하게 묻어난다. 일과 삶을 도식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일터에서도 삶의 정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많은 혁신가의 공통된 입장이다.



세데르스트룀이 반론을 제기한 것처럼 ‘자기실현’과 ‘행복추구’는 환상일는지 모른다. 보다 실용적으로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미국 서부기업의 고민거리가 수년 후 한국 사회에 전파되는 현상이다. 앞으로 우리 화두는 일과 삶의 기계적 균형을 넘어선 ‘일과 삶의 통합’이 될 것이다. 이 사실만은 자명해 보인다.


출처 : 내일신문

https://www.naeil.com/news/read/513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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