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은 대표, YOUN Consulting & Communication(스위스 전문 컨설팅, swisskorean.ch)

스위스에서는 기존 법규를 개정하기 전에 상원의원과 26개 칸톤(주)의 대표인 하원의원, 각 정당 대표들, 관련 주요 당국, 다양한 관련 산업체, 민간단체 및 협회 대표로부터 의견을 청취한다. 이를 수렴하여 개정안을 조정하고, 필요 시 의견 청취 및 조정 과정을 다시금 반복하는 것이 스위스 법치주의 원칙에 상응하는 법 개정 절차이다. 이에 따라 스위스 법 개정은 통상적으로 약 4년 이상(평균 51개월), 길게는 10년에 걸쳐서 이루어질 정도로 속도가 더딘 편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개정된 법은 대변인들의 입장과 논점을 최대한 받아들여 면밀한 협의와 조정을 거친 결과물이므로 비판과 논란의 여지가 적다.

이렇게 변화가 느린 스위스 법에서 유난히 잦은 개정과 비판을 감수해내는 격동적인 분야가 있다. 바로 외국인법이다. 1931년 처음으로 마련되었던 스위스연방 외국인의 체류와 장기허가증에 관한 법(약칭 ANAG)이 2005년에 대대적으로 개정(약칭 AUG)된 데에 이어, 종전까지 외국인법에 속해 있던 망명자 관련 법규는 2006년에 난민법이라는 명칭 아래 분립되었다. 유럽연합과 발 맞추랴, 연이은 국민투표에 따른 이민자 관련 헌법개정에 상응하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최근에도 스위스연방 외국인사회통합법(Ausländer- und Integrationsgesetz, 약칭 AIG)이 2019년 1월 1일 발효되고 2020년 4월 1일 최종 개정을 마쳤으나 관련 주요 하위법규인 외국인의 사회통합에 관한 법(Verordnung über die Integration von Ausländer, 약칭 VIntA)은 2019년 5월 1일에, 승인·체류·취업에 관한 법(Verordnung über Zulassung, Aufenthalt und Erwerbstätigkeit, 약칭 VZAE)과 입국·비자발급법(Verordnung über die Einreise und die Visumerteilung, 약칭 VEV)은 2021년 1월 1일에 되어서야 겨우 최종 개정을 마쳤다. 2021년 5월 26일 스위스 연방 정부가 유럽연합(EU)과의 양자협정 중 유럽 노동자의 자유이동권(영: Free Movement of Persons, 독: Personenfreizügigkeit)을 비롯한 다섯 가지 협정을 다루는 협상이 결렬됐음을 밝히며, 스위스 연방 이민법의 미래는 또 다시 불투명해졌다.

다만, 한국인에게 적용되는 법규의 경우 향후 논의될 EU 양자협정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본 기고문에서는 B Permit(Initial Residence Permit) 또는 C Permit(Permanent Residence Permit)으로 스위스에 취업해 이주하는 한국인이 고려해야 할 이민자 관련 개정법과 가족 동반 시 유의할 점을 조명하고, 새로 도입된 ‘강등제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KOTRA 스위스 국가정보에 포함된 기본 비자 정보와 스위스 국민과 결혼해 입국하는 한국인에 적용되는 규정은 배제했다.

AIG: 스위스 사회에 통합되는 외국인에 한해 체류증 발급

2019년 1월 1일 발효된 AIG은 ‘외국인의 스위스 사회통합’에 보다 명확한 주안점을 두고 있다. 개정 전에도 현지인과 외국인의 화목한 공존을 목표로 국가와 관할당국, 외국인이 모두 협력하여야 한다는 것은 지당한 사항이었으나, AIG 제 58a조에서는 더 나아가 ‘스위스 사회에 통합된 외국인’의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이는 체류증 발급 또는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지표가 되며, 이를 토대로 종전에는 없던 ‘강등제도(Rückstufung)’까지 도입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외국인의 체류증 등급을 낮추거나 아예 취소시키는 일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외국인이 스위스 사회에 ‘통합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관할 관청이 내리는데, a. 스위스의 공공 안전과 규범을 해치지 않는지, b. 연방 헌법을 준수하는지, c. 현지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d. 경제활동 또는 교육에 참여하는지가 주요 기준이 된다. 장애 및 질병, 또는 심각한 개인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고려하여 판단하며, 특정 체류증 발급과 연장에 필요한 현지어 구사 능력 수준은 각 관할 관청이 아닌 연방각의가 결정한다(AIG 제 58a조).

스위스 이민자에 시행법을 살펴볼 때에는 해당 법규가 외국인의 ‘권리’를 다루고 있는지, 아니면 관할 당국의 자율적 판단을 위한 ‘재량’을 다루는 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스위스인과 결혼한 외국인의 경우 위장결혼이 의심되지 않는 한 체류증을 발급받을 ‘권리’가 있지만(AIG 제 42조 1항), 이민자의 동반 가족인 경우에는 체류증 발급은 이들의 ‘권리’가 아닌 관할 당국의 ‘재량’에 해당된다(AIG 제 44조). 후자의 경우 담당 행정기관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한국인 취업이민자의 동반가족 체류증 신청 시 유의 사항

AIG 제44조는 ‘스위스 체류 외국인의 배우자와 자녀가 a. 함께 사는 경우, b. 적당한 (크기의) 거주지를 마련한 경우, c. 기초생활보장지원금에 의존하지 않는 경우, d. 거주할 지역의 언어를 이해하는 경우(미성년 자녀에게는 해당되지 않음), e. 배우자가 이주함으로 인해 그 외 스위스 사회보험금을 신청할 위험이 없는 경우에 한 해 관할 당국이 체류증을 발급할 수 있다’라고 명시한다.

스위스에 취업 또는 사업 목적으로 이민한 한국인의 경우 일명 ‘엘리트 이민자’로 불리우는 전문인력으로 고용주가 현지의 대체인력이 없음을 증명하고, 현지의 인건비에 상응하는 임금 등을 보장해야하므로 이민 초창기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 기초생활보장지원금 및 사회보험금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사업을 전개할 목적으로 오는 한국인 사업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국립국어원의 신조어로 등록될 만큼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은 ‘기러기 아빠’와 같이 별거 생활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경우를 비롯해(VZAE 제76조, 77조), 스위스에서 먼저 ‘자리를 잡는다’는 이유로 동반가족의 이민시기를 장기간 늦추는 경우에는 체류증이 발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AIG 제47조는 스위스 체류 외국인의 가족동반이민의 신청기한을 명시하고 있다. 만 12세 미만의 자녀인 경우 최대 5년 내에, 만 12세 이상의 자녀인 경우에는 1년 내에 체류신청을 해야 한다.

거주지 언어 실력을 증명할 때, 시험증명서 대신 정부에서 인정하는 어학 코스에 등록한 것으로 대체될 수 있으나 이는 증명서 제출 기한을 늦춘 임시방편일 뿐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기존 체류증을 연장하고자 할 때 여전히 현지 어학실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체류증 재발급이 거부되며(AIG 제58b조), 어학실력을 허위로 신고한 것이 밝혀질 시에는 형사 법 처벌, 기초생활보장지원금 장기수급 시와 마찬가지로 이미 발급 받은 체류증이 취소되거나 하위 등급(C Permit→ B Permit)으로 강등될 수도 있다(AIG 제62조, 제63조 제2항). 이로써 취업이민자와 가족의 C Permit을 더 이상 ‘영주권’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위의 사항들은 매번 체류증을 연장할 때마다 적용된다. 연장은 이전에 발급받은 체류증이 만료되기 전 최대 3개월 전, 늦어도 14일 전에 연장신청을 할 것이 권고된다.

스위스에서 3년의 체류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부부가 이혼하고, 더욱이 AIG의 ‘사회통합’ 기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배우자 체류증이 취소될 가망성이 크다. 다만, 가정폭력이나 배우자의 죽음 등과 같은 피치못할 상황에는 예외가 적용된다(AIG, 제50조). 또한, 10년 가까이 장기체류한 경우에도 심각한 형사법 위반이나 고질적인 기초생활보장지원금 의존 이력이 없는 한, 해당 외국인의 체류증 연장거부는 곧 사생활보호법 (스위스연방헌법 제 8조) 침해라는 연방법원의 판례(BGE 144 I 266)가 있다.

체류증 연장 시에 고려돼야 할 국제법

미성년 동반 자녀가 현지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경우에는 아동보호법(스위스연방헌법 제11조) 저촉 여부도 고려해야 한다. 스위스는 1997년 이래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의 협약국으로서 아동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안에서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서 아동이라 함은 만 18세 미만의 모든 이를 칭한다. 즉, 학령기 아동이 있는 가족의 체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체류증 연장거부가 부당하다고 판단될 가망성이 커진다. 

위와 같이 동반가족 체류증 발급여부가 아무리 관할 당국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진다 하더라도, 해당 관청은 이 모든 결정을 스위스연방헌법 제35조(헌법에 맞는 기본권 보장 의무)에 의거하여 스위스연방헌법 제 8조 (차별금지법), 제9조(국가횡포금지법), 제11조(아동보호법)과 제13조(사생활, 가족생활보호법) 등과 같은 인간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 유럽인권조약(ECHR),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같은 국제법도 고려하면서 내려야 한다.

더불어, 스위스에서는 각 칸톤의 관할 당국마다 다소 확연한 관행의 차이를 보이므로, 부당하게 체류증 발급 또는 연장을 거부당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전문 변호사와 논의해봐야 할 것이다.

시사점

나날이 엄격해지는 스위스의 외국인 진입장벽규제를 두고 단순히 ‘외국인에 폐쇄적인 국민성’이라고 치부하기는 섣부르다. 1941년 당시 총 인구의 4.1%에 그쳤던 스위스 내 최소 1년 이상 꾸준히 거주한 외국국적 인구 비율이 2018년 말 25.1%에 이를 정도로 이민자 증가율이 급상승하였다. 이와 함께 불거져 나온 집값 상승, 인건비 하락(Lohn Dumping), 외국인의 높은 범죄율과 기초생활보장지원금 의존율 등 다양한 사회 이슈에 위협을 느끼는 스위스 유권자들의 불안을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는 것이다.

더욱이 25.1%라는 수치는 스위스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외국인 인구의 비율로, 이중국적자, 스위스국적 취득 이민자, 단기 체류자, 인근국 거주 외국인 통근자의 수(티치노 칸톤에만 약 6만 명)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문가들은 스위스 내 실질적인 이민자 출신 인구 비율이 4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특히 특정 도심지역에서 도드라진다. 예를 들어, 취리히 시 거주 어린이 두 명 중 한 명은 부모 중 외국인 국적이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다만, 지난 2014년과 2018년 사이 외국인 취업인구 비율 중 EU/EFTA국가 출신은 43.5%인데 비해 한국과 같은 제3국가 출신은 4.0%로 매우 적은 수치인 점을 고려할 때 최근의 개정법이 제3국가 출신 이민자들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엄격해졌다는 비판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논쟁은 결국 유럽 노동자의 자유이동권(FZA) 협상의 걸림돌이 됐으며, EU의 확장과 EU인들의 스위스 사회보장제도 남용에 대한 불안은 결국 해당 협상의 결렬을 초래하였다.  

위에 설명한 ‘강등제도’는 취업을 목적으로 스위스에 이주한 이민자는 물론 이들의 동반 가족에게까지 새로이 적용되는데, 이는 특정 문화권 여성의 저조한 사회참여율과 고질적인 의사소통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강제성을 동반한 방편으로 마련됐다. 스위스 정부는 개정안이 외국인에게 ‘사회통합’을 위한 동기부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연방정부와 칸톤정부 차원에서 각 부처의 예산을 많게는 3배까지 확충해 이민자들을 위한 다양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결국 이처럼 까다로워진 외국인 법규에 대응해 스위스 이민을 희망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법규에서 명시한대로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피치못할 질병, 사고 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어 스위스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현지 언어를 배우는 일은 체류증 문제를 떠나 삶의 질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사항이니 당장의 생활이 바쁘더라도 꾸준히 어학 실력을 키우고 제 때 관련 증명서를 따 놓는 것이 권장된다. 거주지의 관할 당국 홈페이지나 관청을 방문해 이민자 통합 프로그램과 이민자 대상 컨설팅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