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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중동 지도 바꾼 '이슬람국가'(IS) 사태
  • 외부전문가 기고
  • 아랍에미리트
  • 두바이무역관 김경운
  • 2015-01-09
  • 출처 : KOTRA

 

중동 지도 바꾼 '이슬람국가'(IS) 사태

 

강훈상 연합뉴스 두바이특파원 기자

 

 

 

2014년을 마감하면서 중동의 빅 이슈를 꼽으라고 하면 이슬람국가(IS) 사태를 드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단순히 테러조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정치∙경제적 파급력이 간단하지 않았고, 적어도 내년까지는 IS가 중동 방정식의 지배적 변수가 틀림없을 것이어서다.

 

IS가 국가를 참칭할 수 있을 만큼 급성장한 배경에는 수 년간 누적된 이라크 정부의 종파적 편파성 탓이 크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라크를 철권 통치하던 수니파 사담후세인 정권이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축출된 뒤 들어선 친미 시아파 정권은 초기에는 미국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결국 시아파에 모든 권력을 집중했다. 수니파의 소외감과 불만은 자연스럽게 커졌고, 이는 IS가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됐다. 60만으로 알려진 이라크의 정부군과 경찰이 올해 초 기껏해야 수 만으로 추산되는 IS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의아해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는 2006년부터 8년에 걸친 이라크 시아파 정권의 부패상과 종파적 편중을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 기간 정권을 쥔 누리 알말리키 총리는 군과 경찰 요직을 모두 자신의 측근으로 채웠다. 능력보다는 자신과 친소 관계와 종파적 이해를 인사의 기준으로 삼고 자리를 떼어준 것이다. 심지어 임기 말기엔 국방과 치안을 책임지는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을 공석으로 놔두고 자신이 이를 대행하는 어이없는 전횡을 하기도 했다.

 

2003년 수니파 사담 후세인 정권이 퇴출된 뒤 이라크의 상황은 한국의 해방공간과 비슷했다. 미군이 있었고, 종파적(한국은 이데올로기) 극한 갈등이 있었다. 특히 후세인 퇴출 초기엔 군 조직에서 ‘후세인 정권 부역자’를 처단하려고 했는데 이를 모두 배제하고 나니 시아파 중엔 도저히 이 자리를 감당할 만한 인력풀이 부족했다.

 

해방공간에서 미군정이 친일인사를 재기용한 것처럼 이라크의 미군정도 수니파 인사로 군조직을 땜질하게 된다. 이들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시아파 정부에 협조할리 만무하다.(해방 뒤 친일인사는 권력의 주류가 됐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시아파 인사가 아주 없진 않았으나 이들은 후세인 정권 시 탄압을 피해 이란으로 피신했다 돌아온 ‘친이란파’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은 이들이 탐탁지 않았음은 자명하다. 미국은 이란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적대시하지 않았는가.

 

알말리키 총리를 미 군정이 지지한 것도 무능하나 친이란 성향이 상대적으로 옅다는 까닭이었다. 종파적 편파성이 오죽했으면 알말리키 뒤 총리에 오른 하이데르 알아바디에게 미국 정부가 ‘중립적 내각구성’을 끈질기게 요구했다.(결국 새 국방장관은 수니파에 돌아갔고, 미국은 기뻐했다)

 

IS가 태동한 배경은 바로 이랬다. 초기에는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로 출발해 반미·반정부(즉, 반시아파) 테러를 감행하면서 수니파 이라크인의 지지를 넓혀갔다. 수니파 ‘민초’에겐 불행히도 테러단체인 알카에다 이라크지부나 자신을 탄압하는 이라크 정부나 다를 바 없었을 테다. 현재 IS가 장악한 지역이 이라크 수니파가 주로 사는 서북부와 겹친다는 점은 이런 배경의 방증이다.

 

IS가 올해 초부터 중반까지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를 급속히 장악한 데는 그들의 전투력이 ‘천하무적’이었던 게 아니라 IS가 이런 정서를 교묘히 파고 들어간 덕분이다. 게다가 IS가 6월 29일 선언한 ‘칼리파제 국가’는 강력한 지도자와 종교적 안식을 갈구했던 이라크 국민의 바람에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현재 이라크의 정치체제는 ‘이식된 형식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에서 자생한 통치 체제라기보다 미국에 의해 급조된 탓에 이라크 국민 전체를 통합하기엔 부족했다. 정교분리의 세속주의 이슬람 통치가 중동의 트렌드이지만 중동에서 종교를 떼놓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신정일치의 7세기 초기 칼리파가 다스리던 이슬람 사회와 공동체는 무슬림이라면 언젠가 도달해야하는 ‘이상향’이자 ‘요순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IS는 영리하게도 칼리파를 자칭하고 나섰다.

 

IS가 다른 테러조직과 달리 지속가능할 공산이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라고 할 수 있다. 테러조직의 대명사인 알카에다도 운영 자금을 기부 형식으로 수혈하는 데 비해 IS는 터전이 유전지대라 원유 밀수로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여 자급자족하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무장조직이(심지어 알카에다 소속이었던 조직까지) 속속 IS에 충성맹세를 하는 건 IS의 이념과 비전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필시 자금지원 약속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급자족뿐 아니라 다른 무장조직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주머니가 두둑한 셈이다.

 

흔히 중동의 테러단체라고 하면 황무지에서 조악한 AK 소총을 든 허름한 복장의 전투원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공개되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여느 정규군 못지않은 최신 중화기로 무장한데 놀라게 된다. IS는 이런 무장을 ‘약탈’이 아니라 ‘구매’한다.

 

미군은 이들이 원유 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유전시설을 파괴한다거나 판매∙유통망을 차단하는 방법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렇지만 유전시설 파괴는 IS 사태 해결 뒤 이라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 있어 조심스럽고 원유 밀수망을 일망타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IS 사태를 해결하는 마지막 남은 강력한 히든카드는 지상군 투입이다. 미군이 주도할 수밖에 없겠지만 미군은 2003년부터 2011년 12월까지 이라크의 수렁에 빠졌던 상처의 후유증을 여전히 앓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으로 잃은 인적 피해는 물론 경제적 부담의 여파는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다른 한 장의 카드는 이란을 움직이는 방법이다. 이란은 이라크 정부와 같은 시아파이면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이라크에 인접한 국가 중 가장 파괴적인 군사력의 소유자다.(터키는 IS 격퇴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런 역학을 잘 아는 이란은 “IS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지만 미국과 손잡진 않겠다”고 미국의 신경을 거스르곤 한다.

 

미국 역시 “이란과 군사협력할 일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해법도 딱히 없는 처지다. 여러모로 볼 때 IS는 서방 강국이 손에 쥐락펴락 할만한 상대가 아닐뿐더러 퇴치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 ‘팩트’가 됐다. 혹시 퇴치되더라도 이라크 정부의 자체 통치 역량을 고려하면 또 다른 테러∙군사조직이 창궐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신은 이라크에 엄청난 기름과 함께 가혹한 시련을 주셨다.

 

* 참고: 한국 언론은 이제 IS라고 쓰는 게 일반적이 됐지만 미국 정부 관리는 절대 IS라고 말하지 않는다. ISIL 또는 ISIS라는 약칭을 쓰는데 이는 이 조직을 절대 ‘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아랍권 언론은 아랍어 약칭인 ‘다에시’(DAESH)로 부르기도 하고, 이란은 이 명칭조차 아까운지 ‘타크피리’(수니파 극단주의자·이교도)라고 칭한다. IS에 직접 피해를 보는 이라크 현지 언론은 화끈하게 ‘깡패’(gangs)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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