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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폴란드에 자리 잡은 한인사회
  • 외부전문가 기고
  • 폴란드
  • 바르샤바무역관 박민
  • 2014-12-04
  • 출처 : KOTRA

 

폴란드에 자리 잡은 한인사회

          

    권영관 폴란드 한인회장

 

 

 

폴란드 남부 타트라 산맥 기슭에는 비스와(Wisła)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곳을 시작으로 주요 도시를 거쳐 북쪽 발트해로 흐르는 비스와 강은 폴란드의 젖줄이기도 하다. 이 강은 1027㎞의 장엄함과 유연함을 갖추고 있는데 부침과 회생을 반복한 폴란드 1000년의 역사와 함께한 폴란드의 원류라 하겠다.

 

폴란드는 북쪽 평야지역의 Polan족과 남쪽의 Krak족의 병합으로 'Polska'란 들판 민족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살기 좋은 남쪽 Kraków에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렇다면 현대화,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내며 이제는 강성국으로 도약하는 폴란드에서 한인은 어떤 역사를 갖고 있을까?

 

문헌상으로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 회의에 참석한 고종황제 밀사의 폴란드 방문이 첫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문헌상 한인의 발자취는 있어도 이는 일시적인 것 뿐이었다. 사회주의 시절 북한과의 긴밀한 관계를 제외하면 우리와의 외교관계는 1989년 11월 1일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폴란드는 1989년 4월 원탁회의를 통해 무혈혁명으로 자유노조가 정권을 잡으면서 민주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해 11월에 우리나라와 외교관계가 수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 공식적인 수교 이전부터 우리 국내와 폴란드 현지에서는 양국 교류의 바탕을 갈고 닦고 있었다. 그 시작은 바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폴란드어과의 신설인 것이다. 아직 외형의 교류가 전혀 없던 시절, 폴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미래를 예측한 획기적인 발상이었다고 생각된다. 삼성물산의 경우는 86년부터 바르샤바에 현지인 관리자를 둔 삼성 사무실을 운영했으며 이는 앞서나가는 기업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수교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대기업 상사(삼성, 엘지, 대우, 현대, 효성 등) 사무실이 개설되고 한인의 수도 천천히 많아지게 됐다.

 

그러나 민주화가 시작된 1990년대 초반은 지금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전후 4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곳곳에는 2차 대전의 상흔을 볼 수 있었고 Marriot Hotel이 바르샤바의 유일한 현대식 건물일 정도로 도시는 세련미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서방의 풍부한 물자와 환경에 살다가 당시 폴란드 환경에 접하다 보니 한국인은 살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인플레이션이 자고 일어나면 몇 십%로 뛰었으며 자동차 도난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물건이 없어 돈이 쓸모가 없을 정도였으니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어려운 환경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대부분 독신으로 사무실 운영만을 위한 한인 주재원의 진출이 있었던 것이다.

 

1991년 7월에 관세가 도입되고 1993년에 VAT(부가가치세)가 생겼으며 1994년 1월에는 '0'을 네 자리나 지우는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그 사이에 바르샤바에는 한인이 폴란드의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환경에 서서히 자리매김해 갔다. 1993년에는 바르샤바 근교에 최초로 대우 텔레비젼 공장이 세워졌는데 당시만 해도 한인은 20여 가구, 50여 명에 불과했다. 이와 더불어 Kraków의 Jagelloński 대학 학부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 늘어나면서 지방에도 한인이 진출하게 됐다. 1993년 3월에는 우리의 기술로 Opole지역에 통신교환기 교체를 위한 대규모 건설공사가 착수됐다. 이 사업은 한-폴 수교 시 체결된 EDCF 차관을 바탕으로 , 삼성정보통신의 '폴란드 프로젝트'였다. 당시 전체 주재원과 그 가족 40여 명은 Opole지역에 거주했으며 현지 지역민에게 한국인의 문화와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최초의 건설 프로젝트였다.

 

1994년도부터 대형 슈퍼마켓이 바르샤바에 매장을 개설하면서 생필품 부족은 일부 해소가 됐지만 1994년 이전에는 바르샤바에 거주하는 한인은 1~2주에 한 번씩 베를린으로 생필품 쇼핑을 위한 방문을 해야했으며 심지어 아이 분유를 사러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물자 부족으로 열악하고 불편한 생활환경이였다.

 

그러다 1995년 상반기, 대우자동차가 FOS(폴란드 승용차 제조업체) 공장을 인수하게 됐으며 이 시점으로 1996년부터 바르샤바에는 한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였다. 장단기 출장자와 가족을 포함해 전체 약 1000명 가까운 한인이 1998년까지 꾸준히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늘어나게 됐다. 그 당시에는 주택이 부족해 부동산에 웃돈을 주고 집을 구하는 상황까지 가게 됐다. 이렇게 대우자동차의 폴란드 진출은 한인의 본격적인 폴란드 진출의 신호탄이 됐고 폴란드 경제와 금융, 투자환경 개선, 국가적인 신용 등에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외국계 은행이 자동차 금융지원을 위해 폴란드 행을 택했으며 자동차 리스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은 삼성전자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에 투자하고 대우는 폴란드에 투자를 집중한 시기였는데 폴란드 어디를 가더라도 동양인에게는 대부분 “대우에서 일하냐”고 묻는 것이 당연시됐던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국내 IMF 금융위기로 대우가 철수했을 때는 폴란드 현지인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으며 폴란드 자존심을 인수한 기업의 좌초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하지만 1995년 4월 Gazeta Wyborcza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제2의 징기스칸이 폴란드를 침공하다'라는 글귀처럼 대우자동차 진출은 폴란드인이 한국인과 한국 기업의 기동성과 추진력에 감탄하게 했으며 한국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음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폴란드에서의 한인사회는 대기업의 주재원을 중심으로 시작됐고 한인사회가 서서히 커짐에 따라 한인을 위한 단체와 역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으로 1994년 말경에 한글학교와 한인 교회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한글학교는 1996년부터 실질적인 운영을 해나갔는데 바르샤바에 한정돼 운영됐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바르샤바의 한글학교에는 100여 명(최대 110명)이 주말 한글교육을 받았으며 본인도 한글학교 교무주임과 3학년 교사를 맡기도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인회가 주재원 중심에서 개인사업을 준비하는 분의 관심과 노력으로 성장, 발전됐다. 한인회 첫 모임은 1995년 12월, 바르샤바의 포럼호텔(현 Novotel)에서 참가자 60여 명으로 연말 송년회를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1996년부터 한인회란 이름의 소식지도 발간됐으며 1997년 6월에 최초로 바르샤바 근교 군인 휴양소에서 한인 체육대회도 개최됐다. 1998년 국내의 금융위기 이후 대우자동차의 철수와 많은 중소 섬유수출업체의 지사 철수 등으로 거주 한인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이로써 한인회와 한인 모임도 퇴보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폴란드 한인회는 2005년 한인회 재결성까지 약 5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됐다.

 

2004년 슬로바키아에 기아 자동차 공장과 이후 체코에 현대 자동차 공장이 설립돼 폴란드에 대우자동차 공장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재건하기에는 현재의 조건과 환경이 요원해졌음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엘지전자의 무와바, 브로츠와프 지역 공장 진출은 한인에게 새로운 희망과 폴란드와 관계증진에 이정표를 찍은 계기가 됐다. 이는 한인사회에도 비약적인 발전의 기회가 됐는데 이로서 지방에서도 한인의 폭넓은 거주가 시작됐다.

 

브롱키의 삼성전자 백색 가전공장, 삼성의 유럽 R &D 센터, 포스코 건설의 소각플랜트 프로젝트와 KT의 인터넷망 구축사업, 자동차 부품 업체 남부지방 진출 등 무수히 많은 기업의 각 지역 투자와 진출은 일일이 파악도 힘들 정도 많아진 지금으로선 20여 년 전의 폴란드 한인사회 진출의 초창기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2000여 한인이 거주하는 폴란드에서 우리 한인이 폴란드 진출 초창기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고 그 역사는 어떠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2013년 코모로브스키 폴란드 대통령 방한으로 양국은 ‘전략적 동맹자 관계'란 진전된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 더욱 발전된 상호 신뢰를 확인했다. 지난 25년은 양국 상호 간에 필요성을 확인한 시기였다면 이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진정한 동맹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이는 한인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우리 한인의 역할 또한 점진적인 확대를 통해 폴란드 사회에 뿌리내리고 굳건한 믿음과 신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곧 폴란드에 살고 있는 우리가 좀 더 많은 이해와 참여로, 이 사회에 동화돼 가야만 완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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