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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동서양 무역의 통로, 루마니아- 무역의 역사와 상관습
  • 외부전문가 기고
  • 루마니아
  • 부쿠레슈티무역관 이길범
  • 2014-09-17
  • 출처 : KOTRA

 

동서양 무역의 통로, 루마니아- 무역의 역사와 상관습

 

김병수 Micmarket 사장

 

 

 

루마니아는 아시아와 유럽의 길목에 자리잡은 나라로서 지난 2000여 년 동안 동서양 교역의 교량역할을 해 올 수 있었다. 흑해와 카르파티아 산맥을 중심으로 동과 서의 지리적 접점지역으로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방어코자 하는 기독교 국가의 최동단 접경지역으로, 주변국가와 민족과 늘 상호작용이 불가피한 지정학적 특성은 루마니아에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루마니아는 유럽 민족의 특징을 규정할 수 있는 ‘언어’와 ‘종교’라는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라틴어’와 ‘동방정교’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축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발칸 바다의 라틴 섬’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루마니아 민족의 기원은 다치아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다치아 민족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은 비옥한 토지, 금, 은 그리고 철 등 풍부한 광물을 비롯, 동서의 길목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주변민족의 최대 관심 지역이었다.

 

다치아는 이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로마인과 융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시기가 실질적으로 오늘날 루마니아의 정체성이 형성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로마 민족의 찬란했던 과거에 대한 자긍심 및 로마민족의 후예로서 루마니아라는 민족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이 철수한 3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슬라브 민족 등 여러 이민족의 침략을 받았다. 루마니아의 삼국 시대(왈라키아, 몰다비아, 트란실바니아 공국, 13~14세기) 이후 19세기 후반까지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루마니아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나라가 됐다.

 

루마니아는 역사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동서 문물의 전달통로이며, 무역을 위한 유럽의 세관이 됐는데, 주요 지형지물은 다뉴브 강과 카르파티아 산맥이다.

 

비잔틴 제국시대에는 다뉴브강 이남 지역에서 동양과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금, 은 등 광물과 장식품, 말이 루마니아의 주요 교역 물품이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으로 전해졌다는 금과 은, 명마가 루마니아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루마니아 남동부지역에서 고대 비잔틴 제국의 화폐가 발견됐고 14세기에는 환전을 위한 은행이 있었을 정도로 14세기까지 루마니아를 통한 동서의 주요 교역지는 다뉴브강 이남 지역이었다.

 

15세기 이후 동쪽으로 향하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자락에 위치한 브란성(드라큘라 성)은 작센 상인과의 교역 중심지로 세관의 역할을 했으며 그 주변지역이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을 막는 방어지였던 것처럼 카르파티아 산맥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요충지가 됐다.

 

중세시대 루마니아 공국별 주요 교역지역은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시비우, 브라쇼브, 비스트리챠였고 삼국간의 교역은 브라쇼브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트란실바니아 상인의 힘과 역할이 커졌고 중부 유럽과의 교역이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 활발했는데 금과 은, 소금 등이 주요 교역품목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와 합스부르크가 카르파티아 산맥과 접경을 이루기 시작한 뒤로 왈라키아와 몰도바 공국의 교역은 주로 오스만 투르크와 이루어져 유럽을 주 교역대상으로 한 트란실바니아(현재 트란실바니아에는 헝가리계, 독일계, 세르비아 계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와는 다른 행보를 걷게 된다. 당시 그들의 주요 교역품은 꿀, 섬유, 가축이었는데 섬유는 트란실바니아를 통해 서유럽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트란실바니아의 바나트지역은 세르비아 민족과의 교역에 큰 역할을 했다.

 

1859년 왈라키아와 몰도바와, 1918년 트란실바니아까지 통일해 현재의 루마니아라는 국가가 형성되기까지 3개 공국은 지역별 특성에 맞는 무역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켰다.

 

루마니아라는 국가가 형성되기까지 지역별로 발전하게 된 교역 특성에 따라 일률적으로 상관습을 규정하기가 어렵다. 흔히 루마니아의 상관습을 말할 때 상대방의 지위를 중요시하고 웃고 즐기는 상황에 만족하며 약속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오스만 투르크의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루마니아어는 정중과 친근, 직접적인 소통과 간접적인 소통이 같이 나타나는 언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의 많은 부분이 중세기 루마니아를 지배했던 이슬람문명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의 삶과 교육 배경을 가진 젊은 세대의 루마니아인은 직접적이고 친근감을 강조하는 소통방식을 선호한다.

 

루마니아 무역의 역사는 과거 중부 유럽을 주요 교역국으로 가지고 있던 트란실바니아 지역과 그리스, 터키를 상대했던 왈라키아, 몰도바 지역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전통적 관습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 공산주의 시스템하에서 무역을 진행했던 전근대적 전통도 남아있을 수 있다.

 

다양한 주변 민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중세기와 근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루마니아인의 관념에 비추어 볼 때, 이들 역시 현대의 보편적인 상도덕 내지 전통을 수용했겠지만 그래도 좀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상대의 역사적 맥락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출신지역이나 교육배경 혹은 회사의 설립 지역 등을 사전에 조사하고 적절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불과 5~6년전까지도 루마니아 사람은 상담에 필요한 에티켓이 다소 부족해 명함을 던지거나 기본적인 행위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었고 약속 시간에 늦거나 통보없이 불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 장난스런 태도로 거래 형태나 가격에 대해 엉뚱한 흥정을 해서 한국 기업과 궁합이 맞지 않다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유럽연합의 일원으로서의 품위를 가지고 기본적인 에티켓도 지키고 진지한 모습으로 상담에 응하고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겠지만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완벽한 준비를 통해 신의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루마니아와의 거래는 상당히 긴 호흡이 필요함으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며 거래의 질을 높이는데 노력해야 함을 우리 기업에 전하고 싶다. 또한 대기업에 비해서 정보력이 부족한 중소 수출기업의 경우 앞서 말한 루마니아의 지리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함을 덧붙여 말한다.

 

수입, 유통업체 선정에 있어 독점 거래가 유리하나 장사가 잘 되는 물건이라면 주변 유럽으로부터의 병행수입이 워낙 쉬워 오히려 독점거래 업체에 독으로 변해 예상치 못한 경쟁으로 모두가 손해보는 상황이 될 수 있으므로 계약시 수입, 유통업체의 권리와 의무 등 법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와 준비도 필수적이다

 

루마니아가 주변 유럽 수준의 고속도로를 갖추었다면 경제 위기에서도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루마니아는 유럽 최대의 물류 요충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정치, 경제에 만연한 부패와 불안한 노동 환경이 그것을 가로 막았다. 과거 동양과 서양의 교역에 있어 상당한 역할을 했던 그들의 교역로와 비슷한 루마니아의 고속도로 프로젝트(1966년 챠우세스쿠 정권 시절 최초 계획, 2004년 재정비)가 완성돼 물류의 허브가 되는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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