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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유럽(EU)과 아프리카 시장진출의 교두보, 이집트
  • 외부전문가 기고
  • 이집트
  • 카이로무역관 이하늘
  • 2014-03-13
  • 출처 : KOTRA

 

유럽(EU)과 아프리카 시장진출의 교두보, 이집트

홍성민 교수 (중동경제연구소장)

 

 

 

□ 경제적 잠재력은 크지만 정세불안이 암초(暗礁)

 

이집트 경제의 잠재력은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에 있다. 약 8500만 명에 달하는 인구 가운데 60%가 30세 미만의 젊은 노동 인구다. 특히, 대졸 실업률이 40%나 되어 저렴한 인건비로 우수한 인력 채용이 가능한 시장이다. 여기에 국가가 에너지 가격을 통제하고 원자재 조달도 양호한 편이어서 사회간접자본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에 있어서 이집트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이유 중 하나는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오일머니’로 무장한 걸프 산유국들의 부상에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 경제가 쇠퇴한 가장 큰 이유는 이집트에서 계속된 정세 불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만 하더라도 이집트는 동서교역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였다. 중동의 교역과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시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경제는 수천 년을 거슬러 물자교역에서도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시작된 4차례의 ‘중동전쟁’의 후유증으로 이집트 경제는 황폐화되었다. 1978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주선하에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양국 간 평화협정에 조인한 캠프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이 이루어졌다. 다음해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국은 평화조약에 서명하였고 이집트는 아랍연맹(Arab League)에서 ‘아랍의 배신자’라는 수모를 당하며 제명당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통화기금이 외국인 투자유치의 대가로 정부에서 지급하는 빵값에 대한 보조금 폐지를 요구하자 보조금 폐지가 빵값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폭동이 일어났다. 정치적으로는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조약이 화근이 되어 사다트 대통령이 1981년 10월 카이로 근교에서 행해진 군사 퍼레이드 도중 이슬람 과격 근본주의자의 총탄에 암살되기도 했다.

 

사다트를 이은 무바라크 대통령 이후 이집트 경제는 온갖 정치적 시련을 겪으며 경제개발과 관광객 유치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행위와 정세불안은 이집트 경제를 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와중에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Arab Spring)’은 무바라크 장기정권을 몰락시키고 곧바로 무르시 정권이 들어섰지만 이집트의 군부는 이 사태를 그대로 좌시하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군부의 역할을 간과하고 정국안정을 바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울러 이집트 국내정치는 국제사회와도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그 이면에는 ‘석유자원 확보’라는 강대국들의 이권이 개입돼 있고, 수에즈 운하가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유럽(EU)과 아프리카 진출 교두보, 수에즈 운하

 

이집트 경제는 막대한 인구 잠재력 이외에도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다름 아닌 168㎞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해양운하인 수에즈 운하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며 인도양과 지중해를 잇는 중요한 교역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해상교역량의 7.5%가 이 운하를 통해 운송되며 유럽 원유의 2/3 정도가 이 운하를 매개로 운송된다.

 

4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수에즈 운하는 나폴레옹도 탐을 낸 곳이다. 나폴레옹은 1798년 5만 대군과 함께 직접 기술자를 동반하여 이곳을 점령하고 동방원정의 꿈을 실현하려 하였다. 그만큼 수에즈 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관문(關門)이다.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 중왕국 제12왕조의 파라오 세누스레트 1세때부터 시작된 운하 공사는 기원전 600년경 네카오 2세가 전체 길이 약 25㎞ 운하를 파서 함수호만을 연결하였다. 알렉산더의 이집트 정복 이후 트라미트 계곡과 평행한 운하를 파서 수도와 연결하고 로마제국은 이 사업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그러나 5세기 말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운하는 황폐화되었다. 황폐화된 운하를 구한 것은 7세기 중반 이집트의 총독 ‘암르’이며, 현재 카이로와 수에즈 사이에 로마시대의 운하를 복원하여 아라비아와 연결하였다.

 

이처럼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수에즈 운하는 우여곡절 끝에 ‘동양과 서양의 결혼식’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니며 1869년 개통되었다. 1956년 제2차 중동전쟁도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조치에 의해서 발발한 사건이다. 그만큼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경제에 있어서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다.

 

최근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선박이 늘어나 항로확장을 비롯한 해운 및 항만 부분에서 커다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남중국과 동남아에서 미국의 동안(東岸)으로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경우 경쟁력이 있는 ‘올워터서비스(all water service’)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의 증가와 함께 인접 항만의 건설과 운영도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홍콩의 ‘허치슨 포트 홀딩스’는 2005년 알렉산드리아 항만청과 컨소시엄으로 참여하여 알렉산드리아항 건설 및 운영에 참여하였다. 이와 같은 항만개발과 경영권 참여확대는 향후 주변 지역의 컨테이너 터미널 확보경쟁이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의 중요성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아프리카, 특히 마그레브(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와 거대시장 유럽(EU)의 길목에서 ‘교역의 교두보’ 역할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확대하며 유럽과 아프리카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그 어느 중동국가들보다 중요성을 갖는 나라로 이집트를 들 수 있다. 특히, 오일머니가 풍부한 아랍산유국과 유럽의 연계로 오랜 금융의 역사를 갖고 있는 카이로 금융시장의 부활도 예상되는 곳이다.

 

□ 아랍 산유국들의 경제적 지원이 이집트 정국안정의 열쇠

 

지난 3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 UAE 및 바레인 3개국은 카타르에 주재하는 자국 대사를 전격 소환했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의 지원에 대한 걸프협력협의회(GCC) 회원국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이들 3개국 2013년 11월 말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서명한 안보협정을 카타르가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매우 이례적으로 GCC 6개 회원국간 대사 소환조치를 취했다.

 

카타르는 ‘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의 국가에서 무슬림형제단의 반정부시위를 적극 지원하며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카타르를 제외한 나머지 걸프 산유국 GCC 회원국들은 온건한 왕정국가체제를 택하고 있어 과격한 무슬림형제단의 부활을 반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13년 7월 이집트 군부의 무르시 전 대통령이 축출됐을 때 카타르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당시 터키와 이란은 이집트 군부의 무르시 축출을 쿠데타로 명시하며 강력 비난했고, 카타르가 GCC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들 국가에 동조하였지만 경제적 원조에서는 GCC 회원국들과 이견(異見)을 보였다.

 

무슬림형제단은 다원주의를 표방하며 1979년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조약은 재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무슬림형제단의 노선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 온건 이슬람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대규모의 경제지원 약속한 GCC 국가들의 행위는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현대판 파라오’로 불린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 난지도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1월 군부의 권한이 확대된 새 헌법의 통과로 군사정권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민주주의 후퇴라는 평가도 나온다. 2013년 7월 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아직도 이집트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이집트에서는 근로자들의 월급 인상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 계속되고 있으며 물가 인상, 실업증가 및 치안악화 등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무르시 전 대통령의 복권을 촉구하는 시위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러한 틈새를 노린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테러행위도 멈추질 않아 불안한 정정(政情)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지난 2월 2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한국인 관광객 테러사건도 이집트 정국의 불안에서 촉발된 사태다.

 

지난 3월 1일 이집트 과도정부가 새 내각을 구성하고 공식 출범했다. 올해 4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엘시시 국방장관도 새 내각에 포함돼 있다. 향후 이집트의 미래는 이번 선거에 의해 좌우될 전망이지만, 궁극적인 안정은 해외의 경제적인 원조에 달려있다. 따라서 서방과 주변 아랍국가들의 지원이 이집트 미래에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며, GCC 산유국들이 막대한 경제원조를 제공하며 경제협력에 응한다면 이집트 경제는 탄력을 받을 것이다.

 

한국의 대이집트 수출은 2012년 기준 18억676만 달러로 민주화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집트의 정국 안정이 필요조건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이 승용차, 자동차부품, 합성수지, 난방기 등 산업자본재와 중화학제품인 점을 고려하면 이집트 내수시장에서 수출회복은 이제 ‘시간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여기에 수에즈 운하가 갖는 유럽, 아프리카 교역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이집트 시장은 미래의 수출 잠재력을 위해서라도 위험요인(risk)을 감내할 필요가 있는 곳이다. “위험한 곳에 더 큰 이익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선견지명을 발휘하여 미리 뛰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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