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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기고]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에 첨단산업이 발전한 이유는
  • 직원기고
  •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무역관 이다연
  • 2025-02-18
  • 출처 : KOTRA

조세핀 리 코트라 암스테르담 무역관 차장


풍차의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네덜란드의 푸른 들판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풍경 뒤에 숨겨진 혁신의 역사를 아는 이는 드물다. 바람이 길들인 네덜란드의 지혜가 첨단 산업의 씨앗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때는 1594년. 코넬리스 코넬리스존이 바람의 힘을 빌려 목재를 자르는 기술을 발명했을 때, 그는 네덜란드의 미래를 바꿀 혁명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이 혁신적인 발명으로 대형 선박의 제작이 가속화되어, 네덜란드는 세계를 누비는 해상 강국으로 거듭났다.

같은 시기 또 다른 혁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현미경용 렌즈와 튜브의 탄생이었다. 1666년 안토니 반 레이운후크의 손끝에서 태어난 최초의 현미경은, 당시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과학계를 뒤흔들 혁명적 발명임이 입증됐다.

오늘날 네덜란드는 글로벌 혁신 지수 세계 5위를 자랑하는 기술 강국이다. 네덜란드 기업인들은 혁신이 그들의 DNA에 새겨져 있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자부심의 근원은 2024년 12월 은퇴를 앞둔 네덜란드 첨단산업협회 회장인 마크 핸드릭서의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브라반트 지방이 필립스와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기업 ASML 등 기술 거인들의 요람이 될 수 있었던 세 가지 핵심 요인을 꼽았다.

첫째, 네덜란드의 수평적 사회 구조가 창의적 협력을 촉진했다. 둘째, 척박한 브라반트의 땅이 협동의 정신을 키웠다. 셋째, 천주교의 가족 전통이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브라반트는 혁신의 온상이 됐다.

1891년 필립스의 설립 이후 이 지역은 연구·개발(R&D)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90년대 하이테크 캠퍼스(HTC) 설립과 2003년 이후의 개방 정책은 오픈 이노베이션의 새 장을 열었다. 2004년 브레인포트의 출범과 함께, 국가 R&D 예산의 3분의 1이 이곳에 투자되었다. 2023년부터 ‘NXTGEN 하이테크 프로그램’을 통해 네덜란드의 첨단 기술 장비 산업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연간 60억에서 110억 유로의 GDP 추가 기여를 목표로 야심 찬 계획이 진행 중이다.

1975년부터 갖춰지기 시작한 첨단산업 가치사슬은 2010년 이후 더욱 세분화 돼 발전했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생산 세계 1위 기업 ASML을 비롯하여 시스템 반도체 생산기업 NXP 등 필립스에서 분사된 기업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네덜란드의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 그리고 깊이 뿌리 박힌 협력 정신은 이러한 밸류체인의 혁신적이고 신속한 발전을 가능케 했다.

화학과 엔지니어링 분야의 활발한 교류, 생산직과 사무직 간의 원활한 소통은 네덜란드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오늘날 네덜란드는 첨단산업 장비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네덜란드 첨단 산업 기업들이 한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며 문화적 차이를 이해 하려 노력하듯, 우리 기업도 네덜란드의 혁신 정신을 파악하고 협력의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풍차의 날개처럼 끊임없이 돌아가는 혁신의 바람이 양국의 기술 협력을 통해 더욱 강하게 불어오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헤럴드경제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42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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