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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러시아 소송, 한국과 이런 점이 다르다.
  • 외부전문가 기고
  • 러시아연방
  • 모스크바무역관
  • 2024-04-18
  • 출처 : KOTRA

인지대의 상한, 짧은 채권 소멸시효 등 한국법과 다른 점 다수

러시아 기업 대상 소제기시 반드시 전문가와 사전검토 요구돼

이승진 KL법률사무소 외국변호사(러시아)

 

들어가며


러시아 업체와 거래를 잘 해오다가 상대방의 채무불이행 등 우발적 상황으로 채권회수를 위해 갑작스레 현지에서의 소제기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이때 한국기업 시각에서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러시아 상사소송의 몇 가지 특이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러시아에 상법은 따로 없지만 상사법원이 별도로 있다.


러시아는 민상합일주의에 따라 상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민법에서 상법의 내용을 함께 다룬다. 그러나 법원조직적으로 일반법원 외에도 상사사건을 전담하는 상사법원을 두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다시 말해, 민사소송법과 상사소송법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상사법원은 상인(법인 및 개인사업자)의 경제활동에 관한 사건을 심리한다. 심지어 이들의 경제적 권익을 침해하는 행정처분에 관한 사건 역시 상사법원 관할이다. 상사소송은 사건처리의 신속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민사소송과 차이가 있다. 예컨대, 상사소송은 민사소송과 달리 전산화가 되어 온라인으로도 사건현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https://kad.arbitr.ru/), 상사법원에 소제기시 제출서류에 있어서도, 소제기에 앞서 상대방에게 소장의 사본을 등기우편으로 발송해 사적 통지한 사실(소장 수령사실 증명원)을 제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러시아 상사소송법 제125조 제3항).

 

러시아 상사소송의 인지대 부담은 비교적 적다.


어느 나라에서 소송을 하든, 소송비용 중에는 법률비용 외에도, 법정지 법원의 재판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로 선납하는 인지대라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 인지대는 소가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인지대의 상한이 세법에 정해져 있다. 상사소송의 인지대의 경우 소가가 아무리 높아도 20만 루블(약300만원)에 불과하다(러시아 세법 제333.19조). 참고로, 민사소송의 경우 인지대 상한액은 겨우 6만 루블(약 90만원)이고(동법 제333.21), 형사사건에는 무상주의 원칙이 적용된다.


한국에서는 인지대의 상한이 없기 때문에 재판비용이 상당하므로 신중하게 소제기를 결정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소제기 자체의 경제적 부담이 적어 소제기 결정을 비교적 쉽게 남발하는 듯하다. 또한, 러시아 기업들은 외국당사자와 계약을 체결할 때, 분쟁발생시 합의관할로 모스크바 상사법원을 재판관할로 약정하려는 계약상 관행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해 모스크바 상사법원에는 늘 러시아 전국의 상사사건이 몰려 만성적인 재판 지연의 문제가 있다.

 

러시아 채권은 소멸시효가 짧다.


소멸시효란, 권리가 침해된 자의 소송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간을 뜻한다(러시아 민법 제195조). 소멸시효 완성 여부는 권리의 존부와 관련한,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러시아에는 민법과 상법의 구분이 없으므로 민사(일반)채권과 상사채권의 구별 역시 없이 민법상 소멸시효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한다.


한국법상 일반채권의 시효기간은 10년(한국 민법 제162조), 상사채권은 5년(한국 상법 제64조), 나아가 단기소멸시효의 기간은 3년, 1년인 것에 비해, 러시아법상 소멸시효는 3년 내외로 비교적 짧다. 이 때문에 러시아 거래 건에 대한 채권관리에는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러시아에서 일반소멸시효는 기산일부터 3년으로 하되(러시아 민법 제196조 제1항), 그 적용의 대상인 권리가 침해된 날부터 10년을 초과할 수 없다(동조 제2항). 더불어, 특별한 종류의 채권에 대해서는 일반소멸시효의 기간보다 단기 또는 장기의 특별소멸시효가 적용된다(동법 제197조 제1항). 더 나아가, 소멸시효의 기산일과 관련해 법률로써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소멸시효의 진행은 당사자가 본인의 권리가 침해된 사실 및 본인의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소송의 피고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날부터 기산하는 것이 원칙이다(동법 제200조 제1항).


즉, 러시아법상 일반시효는 (1) 당사자가 ‘그 권리침해사실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하고, (2) ‘권리침해사실이 발생한 날’부터 10년이 경과한 때에도 마찬가지로 소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당사자가 권리침해의 가해자를 알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 가해자 특정이 가능한 시점부터 시효를 기산하도록 하기 위함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러시아법상 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병렬적 입법체계는 다소 난해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법에도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유사한 규정이 있다(한국 민법 제766조).

 

러시아에서 클레임 제기는 시효의 ‘중단사유’가 아닌 ‘정지사유’이다.


한국에서 내용증명은 강력한 무기로 인식된다. 특히 변호사 명의로 내용증명을 발송할 경우 상대방에게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내비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의 효과가 있다. 한국법적으로, 내용증명은 '최고'의 의사통지로서 내용증명 발송 후 6개월 내에 소송 등을 진행하면 시효 중단의 효력이 발생한다. 이렇게 시효진행이 중단하면 그때까지의 시효진행은 없었던 것이 되고, 소멸시효는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내용증명(클레임)은 러시아에서 시효의 중단사유가 아니라 정지사유에 불과하다. 즉, 상대방에게 클레임을 제기하더라도 소멸시효가 새롭게 시작하지 않고, 일정한 유예기간 동안 시효진행을 잠시 멈추게 할 뿐, 그 유예기간이 끝나면 시효의 나머지 잔여기간이 계속해서 진행된다.


러시아법 규정을 살펴보자. 분쟁의 당사자들이 법정된 재판외적 분쟁해결(조정, 알선, 행정심판 등) 절차를 개시할 경우, 시효진행은 해당 분쟁해결 절차의 법정된 유예기간 동안 정지되고, 이러한 법정된 유예기간이 없는 경우의 유예기간은 해당 분쟁해결 절차의 개시일부터 6개월로 본다(러시아 민법 제202조 제3항). 이에 러시아 판례는,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클레임을 제기한 사실로써 양 당사자는 재판외적 분쟁해결 절차를 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Постановления Пленума ВС РФ от 29.09.2015 N 43). 


이때 시효진행은 클레임 제기로 개시된 재판외적 분쟁해결 절차가 '실제 행해진 기간' 동안만 정지한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상대방에게 클레임을 제기한 시점에서부터 상대방이 클레임을 불인정(거절)하는 내용의 답신을 수령한 시점까지 정지한 것으로 본다. 만약 상대방이 클레임에 불응하였다면 시효정지의 유예기간은 최대 30일까지로 보고, 만약 분쟁의 당사자 간 계약상 특정한 클레임 절차상 유예기간이 있다면 그 특정한 절차상 유예기간 동안만 유예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채권자로서 러시아 채무자를 상대로 클레임을 제기할 때에는 이처럼 첨예한 채권의 소멸시효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압류/가처분 신청을 하려면 본안소송을 함께 제기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가압류나 가처분을 집행한 뒤 채권자가 3년간 본안의 소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채무자나 이해관계인은 가압류/가처분의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한국 민사집행법 제288 제1항 및 제301).


하지만 러시아에서 장래의 소에 대해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처분, 가압류 등 잠정적 보전처분의 집행을 허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이를 사전보전처분(предварительные обеспечительные меры)이라 총칭한다.


민사사건에서는 저작권보호 목적 하에서만 사전보전처분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사전보전처분의 신청인은 피신청인에게 사전보전처분 명령일을 기준으로 15일 내로 본안소송을 제기할 것과, 만약 15일 내로 본안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게 사전보전처분을 취소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러시아 민사소송법 제144.1조).


상사사건 역시 마찬가지로, 사전보전처분의 신청인은 피신청인에게 사전보전처분 명령일 기준 5일 이내로 본안소송 제기 전에 재판외적 분쟁해결 절차(클레임 제기 등)를 진행하거나, 이러한 재판외적 분쟁해결 절차가 불필요한 경우에는 사전보전처분 명령일 기준 15일 이내로 본안소송을 제기할 것을 규정하며, 만약 신청인이 해당 법정된 절차를 따르지 않을 경우 상사법원은 사전보전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러시아 상사소송법 제99조).


즉, 러시아 상대방에게 현지에서 가처분/가압류를 걸어 압박을 가한 후 본소제기 없이 사적 해결을 도모해보겠다는 심산은 러시아 실정에 비추어 터무니없는 전략일 것이다.

 

마무리하며


이 기고에서는 한국기업이 러시아 소제기를 결정할 때 전략적, 실무적으로 고려해볼 사항을 다뤄봤다. 기고에서 다룬 것 외에도, 러시아와 한국 간 소송법제의 차이점은 상당하다. 특히 세세한 부분에서의 차이점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러시아 법원에 소제기 하거나 또는 반대로 피소를 당할 경우에는 반드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대처를 하길 바란다.



해당 원고는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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