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현철 Indian Institute of Management Bangalore 교수

기고를 시작하며

한국의 미디어에 비춰지는 인도의 모습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사회심리학 연구자들은 1970년대부터 인간이 부정적인 정보와 극단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잘 받아들인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해왔다. 미디어 콘텐츠 소비자들은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신문 기사를 읽을 때 부정적이거나 극단적인 내용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이것을 잘 아는 미디어 콘텐츠 제작자들은 인도를 소재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 때, 부정적이거나 극단적인 내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도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이야기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 남성에 비해서 낮은 여성 인권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인도의 성평등 수준

사실, 성평등에 있어서 인도는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이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성 격차 (Global Gender Gap) 순위에서 2022년 인도는 146개 나라 중에서 135위를 차지했다. 2021년 140위에 비해서 여섯 계단 상승했지만, 2014년 114위와 비교하면 인도 전체를 평균적으로 볼 때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순위 뿐 아니라 성평등을 고려하여 세계은행이 만든 여성, 경영, 법률 지수 (Women Business and the Law Index) 그리고 조지타운 인스티튜트가 발표하는 여성, 평화, 치안 지수 (Women, Peace, Security Index) 등 지표에서도 인도는 전세계 최하위권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 청년층 그리고 중산층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 인도에서는 도시화와 경제 성장으로 인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청년 중산층이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엄격한 성역할 구분과 성차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적극적으로 관련 사회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의 숫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그 결과 IT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 고소득 산업에 여성의 참여가 늘고 있다. 즉, 구매력을 갖춘 여성들의 경제활동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인도의 기업들도 이런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거나 따라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글로벌 세탁세제 브랜드인 아리엘 (Ariel)의 ‘쉐어 더 로드 (Share the Load)’ 캠페인을 들 수 있다. 2015년에 시작한 이 캠페인은 남성과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의 차이가 현격하게 나고 있는 인도의 현실을 통계자료로 제시하면서,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특별히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이 여전히 남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에 쓰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이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도에서 큰 성공을 거둔 ‘쉐어 더 로드’ 마케팅 캠페인은 2022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인도 대표 건강 식용유인 사폴라 브랜드도 광고에서 성차별 문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기업이 사회적 변화 혹은 변화에 대한 갈망을 빠르게 포착해서 중요한 이슈를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중산층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서 이와 관련된 제품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 패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식품 산업을 예로 들어 보자. 인도의 국민간식이라 불리는 인스턴트 라면 매기 (Maggi)는 1980년대에 인도 진출하였으나 초반에는 고전을 면하지 못 했다. 과거보다 더 바빠진 여성들을 타겟으로 ‘아이들에게 간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간식’이라는 컨셉으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에는 인도 여성들은 집에서 여러 가지 향신료를 직접 갈고 섞어서 가정용 마살라 (혼합 향신료 가루)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마살라를 상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과거의 이런 변화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인도에서는 밀 키트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인도에서는 가정식이 더 건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의 퍼져 있는데, 그 영향으로 집에서 만들어 먹는 간편식 밀키트식품도 건강식이라는 생각이 있다.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 건강식’인 밀키트는 바쁜 대도시 중산층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인도 대표 식품 기업인 ITC는 발빠르게 여러 간편식을 출시하였다.

여성의 고소득 산업 진출 증가는 음식 뿐 아니라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도시의 사무직 여성들은 과거보다 전통의상을 덜 입는다. 서구적인 사무직 복장의 의료 판매가 늘고 있다. 구루그람 (구, 구르가온) 같이 변화 따른 도시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인도 사회에서 금기시 되었던 반바지, 짧은 치마, 민소매 상의 등을 입는 여성들도 눈에 많이 띈다. 이런 패션의 변화는 옷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성용 가방, 신발, 악세사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통 의상에 어울리던 가방, 신발, 악세사리 중에는 바뀐 서구적 의상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 및 피부 관리도 과거와는 달라진다. 그 결과 인도에서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높아가고 있다.

시사점

현재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사회적 변화는 인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변화가 아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산업화와 여성 사회진출 증가를 경험한 많은 나라들이 이미 겪은 것이다. 그리고 인도의 이런 변화는 일부 보편적인 성격과 함께 인도만의 특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저녁을 늦게 먹기 때문에 오후 간식이 중요한 점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이미 겪은 사회적 변화 경험을 토대로 인도 사회의 변화와 이에 따른 소비시장의 변화를 어느 정도 예측할 있다. 여기에 인도에 대한 이해를 곁들이면 식품, 의류 등 패션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성장과 성공을 기회를 인도에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가공식품 산업과 패션 산업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이기도 하다. 우리 기업들이 인도에서 사회적 변화 및 소비시장의 변화를 잘 예측하고, 인도의 독특성을 잘 이해한다면 앞으로 인도 시장에서 더 많은 성공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한국 식품, 의류, 패션 브랜드가 인도에서 활약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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